‘문학 철학’을 꿈꾸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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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철학’을 꿈꾸며 2
  • 박유정 대구가톨릭대·철학
  • 승인 2023.03.19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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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에게 듣는다_ 『문학의 깊이와 철학: 문학과 철학의 해석학적 만남』 (박유정 지음, 인간사랑, 300쪽, 2023.02)

 

바슐라르는 인간의 몽상을 분석하여 물질적 상상력을 발견하였다. 이는 고대의 4원소에 해당하는 물, 불, 흙, 공기의 물질적 이미지에 대한 상상력으로서 인간의 무의식을 담보하는 상상력의 보고라는 것이다. 이를 통해 그는 문학작품 속에 드러나는 물질적 이미지와 그것이 품고 있는 무의식의 세계를 분석하여 작품의 내적 자아를 제시한 ‘몽상의 시학’을 전개하였다. 이는 프루스트에서 시작된 현대 신비평의 전통을 계승하는 것으로서 프랑스 테마 비평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철학적으로는 이른바 ‘문학 철학’의 전형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이 책은 바로 바슐라르의 이러한 문학 철학의 길을 해석학을 통해 제시하고자 한 작은 시도이다.

이 책에서 눈에 띄는 단어는 ‘깊이’이다. 문학의 깊이, 예술적 깊이, 영혼의 깊이, 인간적 깊이 .... 깊이란 우리의 일상적 독서 경험에서 맞닥뜨리는 존재이다. 즉 우리의 독서 경험을 돌이켜 보면 소위 고전 명작이라고 추천되는 작품들 앞에서 우리가 종종 독서의 괴로움을 갖는 것을 발견하는데, 이때 우리는 이러한 작품을 두고 “예술적 깊이가 있다”라고 말하곤 한다. 이는 그 작품이 단순한 문학이 아니라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지평을 드러낸다는 의미인데, 여기서 문학과 철학은 만난다고 이 책은 본다. 즉 문학이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 인간 정신의 깊이를 노정할 때 그것은 이미 종교이고 철학이 된다고 규정한 것이다.

보다 자세히 말해서 현상학적으로 우리의 독서 경험을 기술해 보면, 우리가 고전 명작 앞에서 독서의 괴로움을 갖게 됨을 발견할 수 있다. 이를 우리의 일상언어는 ‘예술적 깊이’라고 명명하는데, 이러한 깊이는 인간 정신의 깊이로서 문학이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인간 정신의 지평을 노정한다는 의미이다. 즉 문학이 일상적 이해를 넘어 인간 실존의 보편적인 체험을 제시할 때 그것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철학이고 종교가 되며, 거기서 문학과 철학은 만난다고 규정될 수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이 책은 프루스트가 생트-뵈브의 구비평을 비판하면서 제시했던 ‘우리 마음속의 깊이’(Moi au fond) 혹은 ‘참된 삶’(La vrais vie)이라는 신비평의 언어를 인간 실존의 체험이라고 해석학적으로 규정하고, 이를 통해 문학과 철학이 만나는 정신의 깊이 혹은 영혼의 깊이를 탐구하는 이른바 문학 철학을 제시하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문학 철학은 해석학과 신비평의 학제적 융합으로서 철학 편에서의 박이문 교수와 문학 편에서의 조동일 교수가 제시한 문학과 철학의 만남보다 진일보한 것으로 생각하고, 나아가 신비평의 원조인 프루스트를 계승한 바슐라르의 문학 철학을 나름대로 수용하고자 한 시도임을 이 책에서 다루었다. 그리고 이러한 영혼의 깊이로서의 문학 철학의 관점에서 시, 소설, 수필, 시나리오의 장르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작품들을 분석하였고, 이와 아울러 ‘문학 속의 삼각관계’, ‘문학 속의 광기’, ‘문학 속의 음악’과 같은 테마 아래에서 거론될 수 있는 문학 작품들로부터 문학의 깊이를 드러내는 작업을 수행하였다. 이로써 이 책에는 문학이 드러내는 영혼의 깊이가 실존적 체험으로서의 정신의 깊이임을 증명하는 작업이 한편에 있고, 다른 한편에는 그러한 문학의 깊이가 여러 장르의 문학 작품들에서 어떻게 실현되는지를 고찰하는 작업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렇게 해서 문학과 철학은 서로 다른 학문성을 갖지만, 문학이 깊어져 인간 정신의 깊이와 그 실존적 지평을 노정할 때 문학과 철학은 만난다고 해석학적으로 규정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를 통해 하나의 문학 철학을 꿈꾸었고, 이 책이 제시하는 이러한 깊이의 문제는 경험이나 교육 혹은 상식의 일상성을 넘어선 정신의 지평으로서 우리에게 실존적 결단을 촉구한다. 이러한 결단 앞에서 우리가 도망가지 않고 자신을 직시하는 반성의 힘을 가질 수 있을 때 우리는 자본주의와 과학기술 문명 속에서 물상화되는 우리 시대의 가난을 치유할 작은 실마리라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박유정 대구가톨릭대·철학

부산대학교 철학과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동대학원 인문학 연구소에서 Post-Doc.과정을 연수했으며,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에서 강의전담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현재는 대구 가톨릭대학교 프란치스코 칼리지의 조교수로 재직 중이고,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서 방문교수로 연구하였다. 주요 논문으로는 한국연구재단으로부터 우수논문 사후 지원을 받았던 「하이데거 예술론의 헤겔 수용과 비판」이 있고, 문학과 예술 및 철학의 해석학적 탐구에 관한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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