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교수 재임용제도, 누구를 위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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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교수 재임용제도, 누구를 위한 것인가
  • 박지현 인제대/전국교수노동조합
  • 승인 2023.03.13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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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평]

사립학교법은 제53조의2는 대학의 교원을 "계약조건을 정하여 임용할 수 있다”고 하여 계약임용제를 규정하고 있다. 계약임용제 자체는 대학 교원이 연구와 교육 능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도록 유도하는 순기능도 있으므로 그 자체는 문제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을 반드시 법률로 강제할 필요가 있었는지, 나아가 더 크게는 악용가능성을 차단할 보호 조항을 구비했는지 여부에 있다. 우리나라처럼 노동기본권 보장 수준이 취약한 나라에서, 그리고 사학 재단의 건전성 수준이 매우 낮은 나라에서 그것이 어떻게 기능할지를 염두에 두었어야 한다. 인구감소와 대학위기의 시대에 들어선 상황에서 이는  손쉬운 해고를 위한 수단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쉬운 해고 앞에 대학교원들은 본연의 역할과 책무보다 고용주의 눈치와 입맛에 맞추는데 온 힘을 다 써야할 판이 되었다. 계약임용제는 근본적으로 재고되지 않으면 안 된다.

교수노조의 법률지원팀은 근 몇 년 간의 상담 과정에서 너무나 안타까운 사건들을 다수 접했다. 어떤 대학은 호봉제를 연봉제로 일방적으로 변경하고 재임용 계약을 요구했다. 연봉 책정 기준 규정을 두거나 그를 공지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어떤 대학은 종전의 연봉금액을 삭감하여 재임용계약을 강요했고 그에 불응하는 교원들은 재임용을 거절했다. 어떤 대학은 재임용 업적기준을 일방적으로 강화하고  재임용계약을 강요했다. 어떤 대학은  강화된 업적 기준을 심지어 소급적으로 적용해서 재임용을 탈락시켰다. 어떤 대학은 종래 2~3년이었던 재임용기간을 1년단위로 단축시켰다. 어떤 대학은 정년계약이었던 정교수 임용 기간을 1년제로 바꾸기도 했다. 어떤 대학은 9to5 정시출퇴근제를 도입하여 이를 준수한다는 합의를 포함한 계약서를 강요했다. 어떤 대학은 책임시수 미달시 급여를 일정률 감액한다는 조항을 넣고 싸인을 강요했다. 또 어떤 대학은 교육, 연구 외에 행정업무도 담당하기로 한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이러한 근로조건 변경은 교원의 교육 및 연구능력의 보존이라는 계약임용제의 명분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오로지 노동강도의 강화, 비용삭감, 쉬운 해고, 길들이기를 목적으로 한 것이다. 교수가 이렇게 시달리는데 어떻게 긴 안목의 연구를 하고 학생들을 안정적으로 돌보고 가르칠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계약임용제라고 하여도 제도의 본질을 생각하면 위와 같은 횡포들은 허용된다고 보아서는 안 된다. 계약조건을 정하여 재임용하라는 것이 대학측에 급여와 근로조건에 관해 무소불위의 재량을 부여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계약임용제 규정은 교원에게는 일정한 성취를 조건으로 재임용 받을 권리, 재임용 기대권을 부여한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잊고 있다. 종래에는 대법원조차 그를 잊고 ‘대학 규정상 재임용의무 규정이 있다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재임용되었더라도 종전의 근로관계의 연속성은 부정된다’는 식의 판결을 내렸다. 법원도 대학을 망치는 공범이다. 다만 최근에는 조금 완화된 판결도 보인다. 2022년 초 대법원은 광주의 어느 대학의 사례에서 ‘재임용 의무 규정’이 없는 대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7년 간 재임용이 거절된 사례가 거의 없었다"는 사정을 거론하며  ‘연속성을 인정할 특별한 사정이 존재한다’고 본 것이다. 이 기준이 모든 대학에 분명히 적용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거기서 더 나아가야 한다. 일일이 대학마다 구체적으로 ‘특별한 사정’이 있는지 재판을 통해 인정받으라는 것은 가혹하다. 일부 하급심 판결에서 이미 적용되었듯이, 재임용 기준만 충족하면 대학이 재임용을 해줄 의무가 있다고 분명히 선언해 주어야 하고 재임용계약의 근로관계의 연속성을 선언하여 주어야 한다.

근본적인 문제는 법률에 있다. 교수들이 피곤한 재판싸움에 시달리도록내버려 둘 것이 아니라 국회는 조속히 사립학교법을 개정하여야 한다. 재임용제를 강제하는 규정을 삭제하여야 하고 개별 대학이 재임용제를 유지하려 하는 경우 재임용기준 충족시 재임용의 의무를 진다는 단서 규정을 삽입해야 한다. 또한 교원지위법은 부당한 재임용거부에 대해서는 단지 취소할 수 있게 할 것이 아니라 당연히 재임용된 것으로 본다는 간주 규정을 두어야 한다. 저질 사학의 횡포 현실을 고려해 소청심사청구와 재판에 관해 교원에게 국비 또는 국가책임 재단의 지원으로 재판비용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부당해고의 습성을 고치지 않는 대학에 대해서는 국고지원을 끊고 소속 교원들을 국립대학 교원으로 재배치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보다 근본적으로 공사립 막론하고 교원의 기본 급여 수준을 국가가 책임지도록 하여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고등교육 담당자로서의 자질과 능력이 보존되는 고용안정이 달성되기 때문이다.


2023년  3월  13일

전/국/교/수/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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