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족 신화의 핵심은 창족의 민족 신앙, 민족 정신과 민족 의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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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족 신화의 핵심은 창족의 민족 신앙, 민족 정신과 민족 의지에 있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03.13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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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창족 신화와 전설 | 허련화 엮고 옮김 | 역락 | 372쪽

 

창족은 중국의 56개 민족 가운데서도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민족이다. 그러나 창족은 고대 은나라 이전 하나라 건국의 주요 세력이었을 만큼 오래된 민족이다. 한국어 발음으로는 ‘강(羌)’으로 부르는 종족인데 한자의 형상이 시사하듯이 중국의 서북 지역에서 양 유목을 하던 집단이다. 이 창족 중심의 유목민이 황하를 따라 세력을 확장하면서 하류 지역의 이(夷)와 부딪치는 과정에서 중국 신화의 상당 부분이 생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창족의 신화와 전설은 중국의 신화·전설, 나아가 동북아시아 서사를 이해하는 데 긴요하다.

그러나 창족을 모르는 만큼 그들의 신화와 전설도 낯설다. 예컨대 창세신이 두견화 꽃가지에 숨을 불어넣어 사람을 만들었다는 신화, 알에서 나온 거북이와 청판석으로 천지를 만들었다는 신화가 그렇다. 거북이의 네 다리로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을 삼았다는 창세신화소, 기둥이 된 거북이가 견디질 못하고 움직일 때 지진이 난다는 신화소는 여러 민족이 공유하고 있지만 그런 거북을 제압하기 위해 개를 귓구멍 속에 넣거나, 감시하게 한다는 신화소는 창족한테서만 발견된다. 반고라는 창세신도 여러 민족이 공유하고 있지만 반고왕이 개의 머리에 사람의 몸을 갖춘 형상이라는 신화소는 창족의 상상력이 새로 빚어낸 것이다.

이 책의 첫 부분 ‘창세신화’ 편에서는 세계에 대한 창족 사람들의 원초적인 사유를 엿볼 수 있다. 광대한 천지는 창족인이 신앙하는 천신 아뿌취꺼와 그의 아내 홍만시가 힘을 합쳐 만든 것이다. 즉 이 세상은 신이 창조한 것이다. 이러한 인식과 표현은 세계 각 민족들에게서 모두 비슷하게 나타난다. 중국 한족의 신화 중에도 “반고가 천지를 개벽”하고, “여와가 진흙을 빚어 사람을 만든다”는 창세신화가 존재하는데, 이런 신화에서 남자와 여자는 인간 사회의 음과 양의 근본적 소재이다. 창족과 한족 창세신화는 두 민족의 혈족, 인척에 대한 동일한 인식을 투사하기도 한다.

또 창족 신화에는 개가 자주 등장하는데, 창족 사람들에게 있어서 개는 옛날 유목시대나 현재 경작시대나 모두 양치기와 사냥의 좋은 조력자, 생활의 좋은 동반자로, 그 지위가 상당히 중요하다. 개는 창족 가정의 상징이기도 한데 이는 마치 한족 가정에서 돼지를 중요시하는 것과 같다. 이렇듯 오래된 이야기들은 모두 그들이 살아온 역사 문맥과 현실 생활과 민속 속에서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 것이다.

이 책의 자연신화, 홍수신화, 영웅신화, 민속전설, 인물전설들은 어느 것 하나도 창족이라는 민족의 역사적 심성, 원시적 인식, 문화적 인자, 개체적 전승 등의 요소가 공동으로 작용하여 시시각각 변화와 발전을 거치면서 대를 이어 전승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리고 이런 신화의 핵심은 창족의 민족 신앙, 민족 정신과 민족 의지에 있다. 오늘날 학문적 관점에서 보면, 이런 신화와 전설의 발생과 전승의 근원도 추적하고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

하지만 여기서는 우선 이런 신화 전설이 보여주는 창족 사람들의 세계에 대한 인식과 사고 방식, 사회적 암시와 관습 및 습관, 세대 간의 전승 측면에서, 다음은 민간인 전파자 개개인의 사회적 역할, 개인의 성격, 역사적 이해 측면에서, 세 번째는 청중의 입장과 기대, 수용과 반응 측면에서 이러한 신화와 전설을 이해하고, 감상하고, 분석해야 할 것이다. 창족의 신화와 전설은 그 자체로 독특함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여러 민족, 나아가서는 전 세계 많은 민족의 신화 전설과 마찬가지로 천지만물, 집단 신앙, 사회 구조, 문화 풍속 등에 대한 공통적인 인식과 이해를 담고 있다.

이 번역서는 중국 소수민족의 신화와 전설을 이해하고, 상호 비교를 통해 한국의 신화와 전설을 해석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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