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는 동성애를 어떻게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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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는 동성애를 어떻게 볼 것인가?
  • 민경국 논설고문/강원대 명예교수·한국자유주의학회 회장
  • 승인 2023.02.2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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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국 칼럼]

동성애, 어떻게 볼 것인가? 동성애의 원천이 본능이든 후천적으로 습득한 것이든 그것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분명히 다른 행동이다. 그런데 그런 행동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우리의 동료가 비록 합당하다고 생각한 것과는 다르게 행동하고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불법행위(tort: 행위자의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피해)가 아닌 한, 우리가 자유인이라면 마땅히 그런 행동을 감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만약 어떤 사람 또는 기독교 집단이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자유주의자는 그를 한심한 사람, 또는 종교집단을 한심한 집단 또는 반 자유주의자라고 비판하는 게 올바른 비판인가? 기독교가 동성애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히는 것 그 자체는 다분히 종교적 자유를 행사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한심하다거나 반(反)자유주의라고 말할 수 없다. 우리는 타인들의 모든 행위를 평가할 자유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평가를 수용하든 말든 이는 그들의 자유에 속한다. 동성애에 대한 종교적 비판과 평가도 다양하다. 그런 평가와 비판을 수용하든 말든 이는 전적으로 동성애자들의 자유다. 그렇다고 동성애의 자유에 제한이 없는 건 아니다. 공식·비공식적 규범에 의해 제한된다. 마치 이성애처럼 말이다.  

그러나 어떤 일이 불법행위가 아닌 한, 그것이 단순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즉시 경찰을 부른다거나 강제적으로 하지 못하게 하거나 입법을 통해서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이는 반자유주의적이다. 마찬가지로 기독교 집단이 종교적인 이유로 또는 일반인이 어떤 다른 이유로 강제를 통해서 동성애를 막거나, 경찰을 부른다거나, 동성애 금지 입법을 추진한다면 이는 반자유주의적이다. 

자유주의는 동성애자를 이성애자와 동일하게 취급해야 할 것을, 다시 말하면 그들에게 동일한 “권리”가 아닌 동일한 자유를 허용할 것을 요구한다. 이는 신분상 평등을 말한다. 인간은 이성(異性)만이 아니라 동성(同性)도 사랑할 자유가 있다. 자유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어떤 회사가 동성애자를 고용하든 말든 관계가 없다. 그 관계는 그들 사이의 계약에 달려 있다. 사랑과 고용 관계는 국가가 개입할 사항이 아니다. 

그러나 동성애를 자유가 아니라 소수자라는 이름으로 권리라고 보자. 그런 권리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자유로운 행동으로 취급하는 사회와는 전적으로 다르다. 가톨릭 학교라고 해도 권리의 평등이라는 이유에서 동성애자를 채용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자유와 권리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느 한 사람의 권리는 타인들에게는 그 권리를 충족해야 할 적극적 의무가 있다. 동성애자가 어린아이를 입양할 권리가 있는 사회에서는 그 입양기관이 가톨릭 단체라고 해도 동성 부부의 입양신청을 거부할 수 없다. 적극적 권리는 이를 충족시킬 의무만 있을 뿐 거부할 자유는 없다. 동성애의 권리는 종교단체의 자유를 제약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래서 종교단체가 동성애 권리를 부여하는 정책을 반대하는 것은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리고 만약 동성애자 또는 미혼부부가 모든 입양기관으로부터 입양할 권리가 있다고 한다면 입양을 거부하는 가톨릭 입양기관의 권리와 충돌한다. 그 결과 동성애를 반대하는 가톨릭 입양기관은 점차 줄어들고, 입양기관의 다양성이 축소된다.

자유사회에서 가톨릭 단체의 입양기관은 동성부부의 입양신청을 거부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거부할 자유가 있다. 가톨릭 입양기관은 자신이 선택한 사람이 누구든 그에게 입양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그래서 자유사회에서는 종교관과 관련 없이 동성 부부의 입양만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기관이 생겨날 수도 있다. 또는 가톨릭 기관처럼 이성부부의 입양만 다루거나 또는 종교적 이유에서가 아니라 심리적으로 동성애를 싫어하는 입양기관도 생겨날 수 있다. 동성부부가 입양할 자유는 타인들에게 그런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소극적 의무만 있을 뿐이다. 자유는 보편적 적용이 가능하다. 

그러나 적극적 권리는 일종의 특혜다. 좌파의 차별금지법은 일종의 특혜입법이다. 이는 타인들에게는 자유의 침해다. 더구나 차별금지법이 지배하고 있는 사회는 성 소수자의 권익도 보호받기 어렵다. 오히려 자유 사회만이 더 잘 보호받을 수 있다. 자유야말로 갈등 없는 사회의 윈윈전략이다. 16세기 종교전쟁을 해결하는 데 탁월하게 기여했던 것이 바로 자유주의와 종교의 자유였다.  


민경국 논설고문/강원대 명예교수·한국자유주의학회 회장

서울대학교 문리대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교 경제학 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강원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같은 대학 경제학과 명예교수이다. 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과 제도경제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사)한국자유주의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다. 주요저서로는 『하이에크, 자유의 길』, 『국가란 무엇인가: 자유주의 국가철학』, 『자유주의의 도덕관과 법사상』, 『자유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시장경제의 법과 질서』, 『하이에크 자유주의 사상 연구』, 『경제사상사 여행』 등 다수의 저서와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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