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로서 계급에 대해 이야기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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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로서 계급에 대해 이야기하기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02.12 11: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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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페미니즘이 계급에 대해 말할 때 | 벨 훅스 지음 | 이경아 옮김 | 문학동네 | 312쪽

 

이 책은 제대로 해소된 적 없으나 담론의 자리에서 사라져버린 계급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저자는 빈부격차와 계급 갈등이 심화함에도 이에 눈감는 시대상을 지적하며 국가와 개인의 책임이라는 측면에서 계급 문제를 다룬다.

계급 문제는 점점 악화되고 있다. ‘금수저’와 ‘흙수저’로 대표되는 부의 대물림, 그에 따르는 주거, 교육, 건강 문제 등 부익부빈익빈의 굴레에 우리는 갇혀 있지만 놀랍게도 이를 이야기하는 자는 드물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현실부터 제대로 직시해야 한다. 저자는 지금 우리 각자가 어떤 계급에 속하는지, 왜 계급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지부터 깨달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비지상주의와 부를 향한 욕망은 탐욕의 정치를 만들어냈고, 계급차별은 페미니즘의 기반을 약화시켰다. 이러한 현실을 지적하는 한편 빈곤층과의 연대를 통해 어떻게 하면 모두가 부와 풍요로움을 누리는 사회로 나아갈지 해법 또한 제안한다.

많은 이가 오늘날 사회는 열심히 노력하면 누구라도 정상에 설 수 있는 ‘계급 없는 사회’라고 믿는다. 하지만 ‘신분제’ 대신 ‘돈’으로 계급이 구축되면서 계급은 어디서든 감지될지언정 제대로 보이지는 않게 됐다. 가난을 사회 구조보다 개인의 무능과 게으름 탓으로 돌리는 시대 속에서 가난한 이들은 오랫동안 침묵을 강요받았다. 많은 시민이 자신의 계급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고 인종을, 젠더를, 세대를 탓하며 엉뚱한 곳에 돌을 던졌다.

가난한 노동계급 가정에서 자라 가족 중 처음으로 대학에 진학한 저자는 그곳에서 특권계급의 가치관을 처음 접한다.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하지 못한 친구를 멸시하고 증오하는 동급생의 모습을 보며, 노동계급에 속한 사람에겐 가치관이 없다고 믿는 사람들을 보며 저자는 자신의 자리와 계급 문제를 각성한다. 그리고 이러한 계급 인식을 인간의 ‘탐욕’과 연결짓는다. ‘나’와 ‘내 것’만이 중요한 나르시시즘 문화, 쾌락을 추구하는 사치의 문화가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가난을 두려워하게 됐고 계급차별을 문제삼았다가 되려 자신이 몰락할까봐 겁먹었다. 그렇게 정의와 사회복지에 관한 관심은 점점 사라지고 개인의 책임과 이기적인 물질만능주의를 좇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여기에 언론의 사회화까지 더해져 중산층뿐 아니라 대다수의 빈곤층과 노동계급도 물질적 풍요를 추종하고 부자를 동경하며 복지 정책의 수혜자는 ‘놀고먹으려는 게으름뱅이’라고 폄훼하게 됐다. 부와 권력에 동조해야만 앞서갈 수 있다는 인식이 끊임없이 주입된 결과 풍족한 생활을 누리는 사람들조차도 자신이 ‘가난하다’고 믿을 지경이다. 저자는 이렇게 탐욕에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지금 바로 계급 문제에 눈을 떠야 한다고,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각성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저자는 페미니즘 운동 이후, 특권계급 백인 여성과 계급 상승에 성공한 다른 인종의 여성에게 끊임없이 착취당한 수많은 노동계급 여성의 삶에 주목한다. 페미니스트도 노동계급, 중산층, 특권계급 등 각자 입장이 다르다. 가부장제 타파라는 공통의 목표로 나아가려면 먼저 자신의 계급부터 이야기해야 한다. 계급 문제를 전면에 드러내야만 모든 여성이 힘을 모으고 단합된 자매애도 이룰 수 있다면서 저자는 노동계급 출신 페미니스트로서 자기 고백을 이어간다. 

백인과 흑인 혹은 남자와 여자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은 이제 그만 멈춰야 한다. 부자는 백인, 거지는 흑인 같은 스테레오 타입으로 인식해서는 인종차별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할 수 없다. 그 모든 것에 계급이 앞선다. 부유한 흑인과 가난한 백인처럼 미국 사회가 애써 눈 감아온 모습을 지적하며 인종을 넘어선 계급 문제를 논의한다. 중산층에 완전히 수용되지 못한 흑인 여성으로서의 삶을 바탕으로 저자는 인종 연대를 통해 계급 엘리트주의 종식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한편 흑인 빈곤층과 백인 빈곤층의 인종을 넘어선 화합을 강조한다.

노동계급과 특권계급을 모두 겪어본 저자는 계급 타파 수단으로 연대 의식 회복을 내세운다. 가난한 사람을 동정하듯 일시적으로 돕는 식으로는 우리 공동체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없다. 어떻게 돈을 벌며 가진 것을 나눌 것이냐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만 계급 억압과 착취가 벌어지는 현실을 뒤엎을 수 있다. 계급을 초월해 모두가 연대해야 한다. 저자는 계급을 불문하고 노동하는 사람과, 돈은 우리의 행복을 강화해주는 만큼만 쓸모가 있다고 믿는 사람과 연대할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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