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적 인간, 이타적 인간, 보살적 인간의 호명과 소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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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적 인간, 이타적 인간, 보살적 인간의 호명과 소환
  • 고영섭 동국대·불교학
  • 승인 2023.02.05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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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말하다_ 『한국의 불교사상: 실천적 지성인 혹은 지성적 실천가의 사상』 (고영섭 지음, 박이정출판사, 640쪽, 2022.12)

             

이 책은 한국의 불교사상을 ‘실천적 지성인’ 혹은 ‘지성적 실천가’의 사상으로 구명한 저술이다. 대개 ‘철학’과 ‘사상’이 추상과 관념을 넘어서려면 ‘철학자’, ‘사상가’, ‘지성인’의 앎과 삶에 접속해 구현해야 한다. 대개 지성은 “사물을 개념에 의해 사고하거나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판정하는 오성적 능력이나 그러한 정신의 기능”을 가리킨다. 동시에 지성인은 “사물을 개념에 의해 사고하거나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판정하는 오성적 능력을 갖춘 사람”을 가리킨다. 이 책은 한국의 철학과 사상을 한국의 ‘실천적 지성인’ 또는 ‘지성적 실천가’를 중심으로 참구한 저술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불교의 ‘실천적 지성인’ 혹은 ‘지성적 실천가’ 27명을 중심으로 궁구한 저술이다.

한국의 사상은 종합적(원융)이고 통합적(조화)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한국사상은 천신[天] 산신[地] 무속[人] 신앙의 원류를 풍류(風流)로 통섭한 불교사상이 본류로 자리하여 다시 도교사상과 유교사상과 기독사상의 지류에 흘러내려 주면서 형성되었다. 특히 불교사상은 고유신앙 즉 토착신앙의 원류인 삼재(三才) 사상을 통섭하여 본류가 된 이래 다시 도교 유교 기독교 삼교의 지류에 흘려보냄으로써 한국사상을 풍부하게 하고 넉넉하게 하였다. 이처럼 한국사상이 풍부함과 넉넉함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은 불교사상의 포용과 관용의 특성, 광대한 외연과 촘촘한 내포의 지형에 의해서였다고 할 수 있다. 

붓다는 중도를 깨우쳐 각자(覺者)가 된 뒤 해탈의 자유와 열반의 행복을 역설하였다. 또 그는 연기를 발견해 견자(見者)가 된 뒤 무상의 비실체성과 무아의 비고유성을 역설하였다. 붓다의 지성성은 무아(無我)와 공성(空性)에 대한 연기적 통찰로 나타났으며, 붓다의 실천성은 발고(拔苦)와 여락(與樂)을 통한 중도적 나눔으로 드러났다. 그리하여 상호존중행으로 표현되는 자비의 중도행과 상호의존성으로 표현되는 지혜의 연기법은 ‘실천적 지성인’과 ‘지성적 실천가’로 인격화되어 한국사상사에서 호명되고 소환되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불교적 인간, 이타적 인간, 보살적 인간의 지향으로 나타났다.

붓다는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 하늘 위 하늘 아래 내 무한성만이 존귀하다)의 연기적 통찰을 ‘삼계개고 아당안지’(三界皆苦 我當安之, 현실 세계는 모두 괴로우니 내가 그들을 편안케 하리라)의 자비적 실천으로 전개하였다. 상호의존의 통찰은 존재가 지닌 ‘무아’(無我) 즉 비고유성과 ‘공성’(空性) 즉 비실체성에 대한 일깨움이며, 상호존중의 실천은 ‘발고’(拔苦) 즉 고통을 뽑아주고, ‘여락’(與樂) 즉 기쁨을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호존중행의 자비와 상호의존성의 지혜는 종교적 삶과 철학적 앎으로 펼쳐져 한국사상사를 풍부하고 넉넉하게 하는 기반이 되었다. 고타마 붓다는 현실 속에서 ‘고통 받는 생명체’를 ‘기뻐하는 생명체’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온 삶을 던졌다. 그가 편안케 하려는 것은 상호의존의 앎을 일깨워 상호존중의 삶을 살게 하려는 것이었다.

불자 즉 불제자는 붓다의 온 앎에 대해 물으려 하고 붓다의 온 삶에 대해 배우려 한다. 붓다의 지혜를 알려고 하고 붓다의 자비를 살려는 사람을 우리는 ‘실천적 지성인’ 혹은 ‘지성적 실천가’라고 한다. 이들은 앎과 삶의 거리를 최소화(아라한적 인간) 내지 무화(보살적 인간)시키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이러한 ‘실천적 지성인’ 내지 ‘지성적 실천가’의 모습을 한 편의 시로 써 보았다. 

                       
눈앞에 셀 수 없이 널린 길들도
내 정작 마음먹고 나가려 할 땐
너 댓 길 서너 길 두어 길 되다
한 길로 줄어들기 마련이듯이
 
지상에서 제일로 부지런한 건
나의 손과 또 나의 발이라지만
머리에서 가슴으로 못 옮기고선
가슴에서 발끝으로 못 이르고선
 
세상에서 제일로 머나먼 길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나아가는 길
발끝에서 온몸으로 못 나가고선
마지막엔 자기조차 못 버리고선
 
눈앞에 널려 있는 길들 중에서
마음 둘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나
지상 위에 남겨진 오직 한 길은
내 온 몸을 던져서 열어가는 길. 

                  고영섭, 「길 - 사랑의 지도」
 

『한국의 불교사상』에서는 한국 고대와 중세 및 근세와 근대 및 현대의 실천적 지성인 혹은 지성적 실천가 27인의 삶과 생각에 대해 조명해 보았다. 고대에는 중생의 성불가능성과 보살의 선교방편행을 인정하는 일승유식가인 원측, 현실적 인간의 차별상과 평등성을 아울러 중층적으로 통섭한 원효, 법성성기의 사상에 입각해 성기취입적인 횡진법계관을 제시한 의상이 대표적인 실천적 지성이었다. 

이후에 전래된 선법을 통해 함이 없이 자유자재한 종지를 펼친 도의, 닦되 닦음이 없음을 닦고 깨치되 깨침이 없음을 깨쳐 조작함이 없이 이익되며 다투지 않고 이기는 법을 설한 홍척, 말이 없는 말과 법이 없는 법을 설한 혜철-도선,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기술을 설한 현욱, 일심이 군주라는 가르침으로 유교의 통치술과 불교의 통심술을 부합시켜 세간과 출세간의 균형적 시각을 제시한 무염, 화엄과 선법의 통로에 대해 고민한 도윤, 진귀조사설을 통해 선과 교의 차이가 어디에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범일, 조동선풍을 이어 묵조선의 살림살이를 펼쳤던 이엄, 북종선에 맥을 대어 화엄과 선법의 접목을 도모하면서도 다시 청원 행사계의 석상 경저계의 남종선을 수용한 긍양이 구산선문을 연 이들이다. 이들 이외에 고려 중기에 교종과 선종의 갈등을 선교일원으로 돌파해간 지눌, 경초선풍을 제창한 인각(일연)이 대표적 실천가였으며, 조선 중기에 (간화)선 중심의 선교 통합의 길을 열은 청허(휴정), 수많은 사찰 불사와 도총섭으로서 축성사업을 이끈 벽암(각성) 등이 조선조의 대표적 지성들이었다. 

대한시대에는 수선결사로 불교 선풍을 중흥시킨 경허, 삼장 역회와 대각교 운동으로 대중포교의 선두에 선 용성(진종), 동국대학교 전신인 중앙학림과 중앙불교전문학교를 반석 위에 올려놓은 영호(석전), 한국학과 조선불교연구의 기반을 닦은 상현(이능화), 고대 이래 이 땅의 독자적인 살림살이를 열어온 조계종을 회복시킨 한암, 불교의 대중화에 초석을 놓은 만해(한용운), 새로운 불교학 방법론을 모색한 뇌허(김동화). 한국사상사 기술의 기원을 연 열암(박종홍), 불교서지학과 불교문화사의 기반을 닦은 효성(조명기), 장좌불와의 수행으로 조계종의 품격을 높여온 퇴옹 성철, 초기불교의 중요성과 한국불교 연구의 품격을 높여온 병고(고익진)에 이르는 27명이 저술과 사상 및 이론법과 실천행을 통하여 보여준 실천적 지성인과 지성적 실천가로서의 면모를 살펴보았다.

붓다의 중도 연기적 세계관 속에서 살았던 ‘실천적 지성인’ 혹은 ‘지성적 실천가’들은 도자와 유자와도 소통하면서 삶의 길을 높여 왔다. 이들은 붓다의 중도행과 연기법에 기반하여 특수성(한국성)과 보편성(세계성), 종합과 통합, 원융과 조화의 기호로 한국불교사상을 일구어왔다. 이들은 불교와 도교와 유교가 공존하는 사회에 살았지만 저마다 붓다의 중도 연기를 자신의 세계관으로 삼아 불교적 인간, 이타적 인간, 보살적 인간으로 살고자 하였다. 고대와 중세 및 근세와 근대에 이들이 보여주고 이들이 성취해낸 결과는 적지 않았다. 이들이 보여준 앎과 삶의 세계는 한국의 불교사상을 굳건하고 넉넉하게 하였다. 이들은 모두 ‘온 몸을 던져서’ 그 길을 ‘열어갔다.’ 그것은 ‘사랑의 길’ 위에 그려낸 ‘사랑의 지도’였다.


고영섭 동국대·불교학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교수.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거쳐 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를 역임했다. 논저로는 『한국불학사 1~4권』, 『한국불교사연구』, 『한국불교사탐구』, 『분황 원효의 생애와 사상』, 『원효탐색』, 『삼국유사 인문학 유행』, 『불학과 불교학』, 『한국사상사』, 『한국불교사궁구 1 ・ 2』, 『한국의 불교사상』 등 다수가 있다. 현재는 동국대학교 세계불교학연구소장 및 한국불교사학회 한국불교사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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