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한 한국인, 옛날 우리나라 사람들은 7코스의 요리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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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한국인, 옛날 우리나라 사람들은 7코스의 요리를 즐겼다
  • 연호탁 가톨릭관동대 명예교수·영어학
  • 승인 2023.02.04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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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호탁 교수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_ 대단한 한국인, 옛날 우리나라 사람들은 7코스의 요리를 즐겼다


650년 전 쯤 그러니까 고려 말기 이 땅에서 쓰이던 말 즉 우리말 중세어를 21세기 한국인은 잘 모른다. 그렇다고 잘못은 아니다. 다만 인명이든, 지명이나 국명, 족명이든, 또 한자 명칭이든 고유어 명칭이든 오늘을 사는 우리는 관심도 없고, 명칭이 지닌 의미를 별로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꼬마라는 말이 예전에는 ‘첩’을 가리키던 ‘고마’의 된소리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알아갈수록 과거와 현재의 괴리가 커서 한숨이 절로 나오는 우리말 고어에 대한 관심을 끊어버리면 심신이 편하겠는데, 호기심이 강한 탓이라 그게 뜻대로 안 된다. 얼마 전부터는 ‘스면’이라는 말 때문에 머릿속이 어수선하다. 고려가요 <쌍화점>이 만두가게인지, 아니면 보석가게인지 궁금해서 여기저기 서적을 뒤지고 웹 검색을 하던 중 맞닥트린 말이다.

『朴通事』 초판본 上6의 구절을 예로 든 남광우 편 『고어사전』은 ‘스면’을 ‘응이’라 풀이하고 있다. ‘스면’이 무엇인지 몰라 사전을 찾으니 ‘응이’라는 역시 알 수 없는 우리말이 출현한 것이다. 도둑을 쫓다가 복병과 맞닥트린 셈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또 다른 알 수 없는 말이 등장했다, 한자어 道의 쓰임새를 하나 더 안 건 별도의 기쁨이다. 

중국 운남성 23개 소수민족 중의 하나로 大理 지방을 주거지로 하는 白族의 차 문화는 남다르다. 차를 한 자리에서 3종류를 마시는데 이를 三道茶라고 한다. 여기서 道는 영어의 course에 해당한다. 『老乞大』, 『朴通事』 등의 諺解에 옛적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상차림으로 음식을 먹기도 하지만 준비한 순서에 따라 한 가지씩 식사를 하는 상황이 묘사되어 있다. 이 경우 마지막 과정이 “第七道 粉湯饅頭(닐굽젯 미수엔 스면과 상화)”라 기록되어 있다. 그러니까 우리도 일곱 코스의 요리를 먹는 풍습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식사의 대미를 분탕과 만두로 마무리했음이다.

우리 고려 가요에 남녀 간의 야릇한 사정을 표현한 <雙花店>이라는 시가가 있다. 

雙솽花화店뎜에 雙솽花화 사라 가고신ᄃᆡᆫ
回휘回휘 아비 내 손모글 주여이다

쌍화를 사러 간 이와 회회 아비가 평소 알고 지내던 사이인지 생전 처음 보는 남남간인지 모르나 손목을 덥석 잡는 것은 불손한 일이다. 물론 이런 식의 남녀상열지사가 쌍화점에서만 이뤄지지 않는다. 4절로 전하는 가사에 남정네가 수작을 부리는 장소는 삼장사, 드레 우물터, 술도가집 같은 그저 아무 곳이라고나 할 일상의 장소이다.  

三삼藏장寺ᄉᆞ애 블 혀라 가고신ᄃᆡᆫ
그 뎔 社샤主쥬ㅣ 내 손모글 주여이다

드레 우므레 므를 길라 가고신ᄃᆡᆫ
우믓 龍룡이 내 손모글 주여이다

숨 ᄑᆞᆯ 지븨 수를 사라 가고신ᄃᆡᆫ
그 짓 아비 내 손모글 주여이다

앞에서 보듯 ‘분탕(粉湯)’을 ‘스면’, 만두를 ‘상화’라는 우리말로 적고 있는데, ‘가루 분(粉)’, ‘넘어질 탕(湯)’의 결합어가 ‘스면’이라 불린 까닭을 이해할 수가 없다. 그건 그렇다 치고 앞서 말했듯 ‘응이’라는 또 다른 명칭의 ‘스면’은 어떤 음식인가? ‘상화’라는 우리말이 번듯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만두에 밀려 소실 위기에 놓여 있는 건 분명하다. 친구라는 말 ‘동무’가 점차 잊혀져가는 것도 그러하다. ‘道’를 우리말로 옮긴 ‘미수’는 문맥상 ‘요리’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 타당하다.

사서를 보면 고구려 건국 시조 동명성왕(東明聖王)의 이름이 주몽(朱蒙), 추몽(鄒蒙), 추모(鄒牟), 중모(仲牟), 도모(都慕)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고어사전에 의거할 때 공통의 소리는 ‘즘’, 말뜻은 부여어로 ‘善射者’ 즉 ‘명궁’이라고 한다. 나는 음운대응을 통해 이들 동일인 이름의 이표기들의 공통 소리값을 ‘친구, 벗’을 뜻하는 고유어 ‘동무’임을 밝힌 적이 있다. 동무라는 말을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 그러니까 1960년대 중반까지는 자주 썼던 걸 기억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한 겨레이면서도 남한과 북한이 대치상태에 있는 때문에 친근한 마음 가득 담아 친구를 부를 제 사용하던 동무는 이제 거의 쓰이지 않는다.

‘분탕’과 ‘스면’을 서로 비교해보면 ‘분탕’ 즉 ‘스면’ 즉 ‘응이’는 곡물가루를 끓여 만든 음식으로 영어로 수프라 할 만하다. 국어사전에 의하면, 응이는 율무의 한자어 의이인(薏苡仁)의 충청도 방언이다. 아마 소화에 이로운 율무를 갈아 분말로 만들어 꿀물에 풀어 묽게 쑨 일종의 미음 또는 수프 같은 식품일 것이다. 산약(山藥)응이, 갈분(葛粉)응이, 녹말(綠末)응이, 녹두(綠豆)응이, 연근(蓮根)응이, 수수응이 등 소재를 달리한 한국식 수프가 많이 있다. 

재미있는 것은 서양인은 육류나 생선 같은 본 요리 전에 수프를 먹지만, 우리는 식후에 소화 목적으로 ‘스면’ 즉 ‘응이’를 먹는다는 점이다. 만두를 곁들여. 그러나 이 만두는 기름지거나 향신료가 많이 들어간 고기만두가 아니며 김치만두는 더더욱 아닐 것이다. 한자로 말해 교자나 포자가 아니다. 소를 넣지 않고 뜨거운 김에 쪄서 만든 찐빵 같은 만두라야 디저트로 어울린다. 필경 만두는 스면에 담그거나 적셔 먹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근래 우리나라 사람들이 탕수육을 먹을 제 찍먹, 부먹하는 식으로. 

‘여전히 놀라운 것은 한국인의 먹성이다. 七道까지 물림 없이 美食을 즐기는 여유는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건 아니다. 동서를 막론하고 민중들은 고달프고 늘 배고픈 상태에서 살았다. 구중궁궐에서나 돈 많은 상인의 저택에서나 연회가 가능하지 저잣거리 서민들은 그저 들은 얘기로나 잔칫상을 그려볼 뿐이었다. 


연호탁 가톨릭관동대 명예교수·영어학

한국외대에서 영어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명지대에서 중앙아시아사 전공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가톨릭관동대 관광경영학과 명예교수로 그동안 『중앙일보』에 ‘차의 고향’, 『동아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 등에 칼럼 ‘문명의 뒤안, 오지 사람들’, 『교수신문』에 ‘욕망의 음식: 음식문화사’를 연재했다. 저서로는 『문명의 뒤안 오지의 사람들』, 『차의 고향을 찾아서』, 『궁즉통 영어회화』, 『중앙아시아 인문학 기행: 몽골 초원에서 흑해까지』, 『문화를 여행하다: Travel, Culture&People』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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