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고독사 문제와 ‘죽어가는 자의 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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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고독사 문제와 ‘죽어가는 자의 고독’
  • 김명희 경상국립대·사회학
  • 승인 2023.01.08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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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지난해 12월 국내 최초로 국가 차원의 고독사 실태 조사 결과가 공식 발표되면서 신년의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고독사는 일명 ‘통계 없는 죽음’이라고 불릴 정도로 정확한 정의도 없고 사망원인에 포함되지도 않아, 사망 통계에서조차 오랫동안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그런 점에서 보건복지부가 지난 5년(2017∼2021)간 고독사 발생 현황과 특징을 조사해 발표한 ‘2022년 고독사 실태조사’는 고독사의 현황 진단과 해법의 모색에서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 보인다.

2021년 4월부터 시행된 고독사예방법(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선 ‘고독사’를 “가족‧친척 등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홀로 사는 사람이 자살‧병사 등으로 혼자 임종을 맞고, 시신이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에 발견되는 죽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비록 현상적 수준일지라도 이러한 정의는 고독사가 ‘사회관계의 단절’과 ‘고립된 죽음’을 주된 특징으로 한다는 점을 드러내 준다. 요컨대 고독사의 본질이 관계의 단절과 사회적 고립에 있다면, 그 명명 또한 “사회적 고독사”라 부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실태 조사 결과를 통해 사회적 고독사의 양상과 추이를 살펴보면 지난해에만 3천 3백여 명이 고독사로 생을 마쳤다. 하루에 9명이 넘는 생명이 외롭게 죽어간 셈이다. 이 같은 고독사는 뚜렷한 증가 추세를 나타낸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한다. 지난 5년 동안 고독사로 인한 사망자 수는 1만 5천여 명으로 40%나 증가했다. 고독사는 더 이상 독거노인의 전유물이 아니라 중‧장년층과 청년층까지 확대되는 양상을 보인다. 특히 고독사의 세대‧젠더‧계층별 패턴에서 두 지점이 주목할 만하다. 

첫째, 2022년 보건복지부의 발표에 따르면 고독사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연령은 50~60대로, 성별로는 남성이 여성에 비해 매년 4배 이상 많았고 2021년에는 5.3배로 늘어났다. 특히 전체 사망자의 절반을 넘어서는 50~60대 남성의 고독사는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두드러지는 ‘50~60대 남성의 위기’를 나타낸다.

50~60대 남성의 고독사가 높은 비율을 보이는 현상은 퇴직연령이 낮고 사회안전망이 취약한 한국사회에서 조기퇴직과 실업 등으로 발생한 경제적 위기에서 우선 비롯된다. 문제는 이런 부분이 남성 가부장의 역할 수행의 위기로 이어져 가족관계의 단절과 해체 등 관계의 위기로 나타나면서, 50~60대 남성을 고독사 위험군으로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실직하거나 은퇴한 한국 남성들은 경제력을 잃어버림과 동시에 자신의 가치를 상실한다고 생각해, 사회적으로 쉽게 ‘고립’되는 특징을 보인다. 이 점에서 50~60대 남성들의 고독사는 경제 위기와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에 기초한 가부장적 한국사회의 위기가 중첩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둘째, 30대 이하 청년 고독사 또한 세대와 계층 문제가 중첩되어 나타나는 양상을 보인다. 무엇보다 ‘청년 고독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는 절반가량으로, 다른 연령대에 비해 2배 이상 높다. 만성질환 등과 중첩되어 ‘병사’가 더 두드러지는 ‘노인 고독사’에 비해, ‘자살’에 의한 고독사가 더 두드러지는 청년 고독사를 이해하려면 청년들이 처한 구체적인 삶의 사회적 조건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청년 고독사의 경우 학업·취업 스트레스와 실업으로 인한 사회적 고립이 주된 원인이라 판단된다. 아울러 청년 고독사의 배경에는 사회적 빈곤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만성적인 취업난, 생활고 등이 20~30대 청년들을 원룸과 고시원 등 취약한 주거환경으로 내몰고, 그로 인해 가중되는 심리적‧물리적 고립과 인간관계 단절, 사회적 체념 등이 20~30대 청년들의 사회적 죽음을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조용한 사회적 참사’라 불릴만한 고독사 현상의 심각성에 비해 한국사회가 사회적 죽음을 다루는 방식은 일천하기만 하다. 두 가지 점이 특히 우려된다. 첫째, 증가하는 고독사의 원인을 1인 가구의 증가라는 인구학적 요인에서 찾는 피상적인 접근과 태도다. 하지만 1인 가구의 증가 자체는 한국만의 현상이거나 병리적 현상이 아니라, 연애-결혼-임신-출산으로 이어지던 표준적인 생애 모델이 해체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자칫 1인 가구의 증가라는 인구학적 배경을 인과관계와 혼동할 경우 고독사를 유발한 사회적 힘을 은폐하고 비가시화하는 데 일조할 우려가 있다.

둘째, 마찬가지로 고독사 관련 정책을 만들 때 사회의 위기에서 발생하는 사회문제를 개인의 문제나 심리적 문제로 환원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예컨대 자살을 개인의 문제로 접근하게 되면, 정신건강 차원의 심리 지원을 강화하는 미봉적이고 대증요법적 해법으로 나아가게 된다. 2011년 자살예방법 시행 이후 국가 차원에서 시도된 자살 문제에 대한 여러 입법적 대응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 자살률이 결코 줄어들지 않고 있는 이유다. 마찬가지로 앞으로 막대한 예산이 투입될 것으로 예상되는 고독사에 대한 정책적 해법이 자칫 개인화 되거나 의료화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따라서 고독사 예방을 위해서는 고독사가 “왜” 발생하는지를 판별하고 인과적 근거에 충실한 사회정책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고독사가 단순히 홀로 살고 혼자 임종을 맞이한다는 ‘공간적 고립’에 특성이 있다면, 그러한 물리적이고 공간적인 고립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이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고독사의 본질이 관계의 단절과 ‘사회적 고립’을 조장한 사회안전망의 위기에 있다면, 이를 해소하기 위한 보다 중장기적인 정책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사회적 약자에게 두드러지고 세대별로 다르게 나타나는 고독사의 양상과 원인을 면밀히 파악할 때, 각 세대별로 맞춤한 정책적 개입이 가능할 것이다. 예컨대 중장년층을 비롯한 청년층이 겪고 있는 일자리 문제와 노동사회에서의 배제, 이로부터 파생된 경제적 빈곤과 주거 배제, 노년층에서 더욱 중첩되어 나타나는 의료서비스에서의 배제와 소외 등 사회구조적인 차원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고독사”를 예방하기 위한 보다 입체적이고 실사구시적인 정책적 해법이 요청된다. 

죽음의 원인을 따져 묻는 작업은 그 죽음의 의미를 헤아리고 되새기는 작업과 사실상 다른 것이 아니다. 『죽어가는 자의 고독』에서 N. 엘리아스가 적절히 환기시킨 바 있듯, 죽음은 사망 증명서와 묘지의 문제가 아니라 산자와 죽어가는 자의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사회학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죽어가는 자의 고독이 그 죽음을 다루는 사회적 방식과 내밀한 연관을 맺고 있다는 점을 직시한다면, 죽음을 특정 영역에 가두려는 시도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 죽어가는 사람이 무엇을 경험하고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 그리고 그러한 경험과 필요가 그들의 삶의 방식과 자기 이미지와 어떤 연관을 맺고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우리 시대를 가로지르는 사회적 죽음의 사인(死因)과 맥락을 밝히는 작업에서부터, 한국 사회의 위기를 타개할 해법과 더 좋은 삶의 전제 조건에 대한 학제 간 연구가 시작되어야 할 때이다.  


김명희 경상국립대·사회학

경상국립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사회과학연구원장을 맡고 있다. 한국 사회의 사회적 죽음과 사회적 고통을 연구하며, 통합적이고 학제적인 시각에서 사회적 치유의 방법론을 모색 중이다. 주요 논저로 <통합적 인간과학의 가능성: 맑스와 뒤르케임의 실재론적 귀환>(2017)이 있고, <트라우마로 읽는 대한민국>(2014), <세월호 이후의 사회과학>(2016), <5.18 다시 쓰기>(2022), <경남 근현대사: 사건, 공간, 운동>(2023, 근간) 등을 함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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