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건축은 식민 지배의 핵심 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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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건축은 식민 지배의 핵심 네트워크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12.24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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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지 건축: 조선·대만·만주에 세워진 건축이 말해주는 것 | 니시자와 야스히코 지음 | 최석영 옮김 | 마티 | 288쪽

 

저자 니시자와 야스히코는 19세기 말 20세기 초 일본이 식민지, 조차지, 철도 부속지, 괴뢰정권에 의한 간접 지배 등으로 통치했던 지역에 건립한 건축물을 “식민지 건축”이라 부른다. 그는 건축물은 시대를 총체적으로 반영하기에 건축을 통해 역사를 말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식민지 건축으로 일본의 지배 이데올로기와 네트워크를 분석한다.

일제강점기 시절에 지어진 건축물은 전국 도시 곳곳에 남아 있다. 서울도서관(구 경성부청사), 한국은행 화폐박물관(구 조선은행 본점), 문화역284(구 경성역), 군산 근대건축관(구 조선은행 군산지점), 목포 근대역사관1, 2(구 일본영사관과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 임시수도기념관(구 경남지사 관사) 등 각 도시의 오랜 역사를 증명하는 문화자원으로 변모해 있다. 그러나 이 시기 건축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는 부족하다. 한옥으로 대변되는 조선시대 전통 건축과 평평한 지붕, 유리와 콘크리트로 지어진 해방 후 현대 건축 사이에 자리 잡은 근대 건축, 서양 고전주의 양식이 변형된 근대건축의 한 유형으로 뭉뚱그려져 이해될 뿐이다.

식민 지배를 받았던 기간보다 더 긴 시간이 흐르면서 이 건물들은 새로운 생명을 찾아가고 있지만, 이 건물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는 여전히 어려운 숙제로 남아 있다. 이들은 한국 땅에 있으니 한국 건축인가, 일본인이 지었으니 일본 건축일까 같은 근본적인 질문에서부터, 누가, 어떤 목적에서, 왜 이런 형태로, 어떤 지식과 정보, 재료를 동원해서 지었을까 같은 구체적인 물음에 이르기까지 충분히 답하지 못한 질문이 산적해 있다. 나아가 이런 건축물이 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일본이 지배한 아시아의 다른 나라에도 있다면 이들 사이에는 무슨 관계가 있는가 같은 의문도 제기될 수 있다. 

저자는 각 지역의 총독부 청사는 식민 지배 시작과 동시에 건립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일본은 1895년부터 대만을 지배했지만, 청사건립은 1907년에야 본격적으로 추진된다. 일본 건축 역사 최초의 현상설계로 대만총독부 청사 건립은 시작된다. 1등 안을 선정하지 않는 등 우여곡절 끝에 다쓰노 긴고의 안으로 확정된다. 다쓰노 긴고의 안은 빅토리아 시대 영국에서 유행하던 퀸 앤 양식을 근간으로 한 것이었다. 

조선총독부는 신바로크 양식에 ‘칸 시스템’이라 불린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지어졌다. 당시 이 구조로 지어진 최대 규모의 건축물이었다. 외관은 다르지만 평면은 대만과 조선의 청사가 비슷하다. 철거의 원인이 되기도 한 조선총독부의 위치는 건립 당시에도 논란이 되었다. 저자는 조선총독부 청사 건립에서 가장 중요한 고려 사항은 “위용”이었다고 설명한다. 건물의 외관뿐 아니라 설비, 조망과 시선까지 일본 통치의 도구이자 상징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그 ‘위용’은 단지 신바로크 양식의 외관만이 아니라, 양질의 화강암으로 마감한 외벽, 건물 정면과 맞닿는 광화문 거리와 축선을 일치시킨 배치, 청사 앞에 있던 광화문의 이전, 내부에 설치한 거대한 홀이나 옥좌, 대리석 등을 사용한 마루나 당시 최첨단 디자인을 반영한 스테인드글라스 등의 내장, 그리고 매우 정교하게 배치된 난방 장치나 상시 온수를 제공한 급탕 설비, 오수 정화 장치, 벽에 묻어 넣은 소화전 등의 설비 등 많은 점이 중첩되어 연출되었다. 

만주국의 주요 도시 건설 방식, 여러 청사와 철도역사 건물의 특징 들을 구체적으로 다루는 이 책은 제도와 법률 등에 초점을 맞춘 기존 연구와 완벽한 짝을 이룬다. 이어 저자는 정치나 사법과 함께 식민 지배의 또 다른 중추였던 경제와 관련된 건물을 추적한다. 식민지 경제를 일본에 복속시키기 위해 설립한 대만은행, 만주중앙은행, 조선은행, 요코하마정금은행을 누가 어떤 양식으로, 어떤 최신 설비를 동원해 지었는지를 다룸으로써, 건축이 식민지 지배의 직접적인 도구였음을 다시 상기시킨다.

이 책의 독보적인 지점은 청사, 은행본점 등 식민지 통치의 도구였다는 통념을 재확인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한걸음 더 깊숙이 들어가 각 지배 기구의 건축조직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었는지, 인사이동과 개인적 야심 등의 이유로 건축가들이 지배 지역을 어떻게 이동해갔는지 등을 낱낱이 밝힌다는 것이다. 여기서 도드라지는 점은 도쿄제국대학 건축과 출신들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이다. 목구조 중심의 전통적인 건축교육을 탈피하고 서구 건축을 모델로 삼아 만들어진 도쿄 제국대학의 건축가들은 문자 그대로 ‘제국’을 ‘건축’하는 데 복무했다. 또 다른 정보는 식민지 건축에 동원된 재료의 향방이다. 식민지 건축은 동아시아 건축의 전통적인 재료로 지은 것이 아니라 벽돌, 시멘트, 철 등 20세기의 재료로 지어졌다. 때문에 이 재료의 생산과 이동은 그 자체로 시대를 상징한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이 재료들의 생산량을 소개할 뿐 아니라, 만주, 조선, 일본, 대만 사이를 오간 시멘트와 철의 물량을 분석해 지역별 건축 생산의 특징을 추론한다. 나아가 각 지역에 설립된 건축단체의 정관과 주요 인물들을 살피고 이들 사이의 관계를 분석한다.

이 책은 식민지 건축을 따로 떨어진 하나의 대상으로 보기보다 식민지 권력, 지식, 인물, 재료의 네트워크로 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동아시아 곳곳에 남은 흔적으로 함께 조망할 때 식민지 건축의 실체가 더 분명히 드러난다는 것이다. 일본의 식민지에 세워진 초기 건물들은 대만과 만주, 조선을 가릴 것 없이 모두 서양식 외관을 지닌다. 그 이유로 저자는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의 근대화가 서구의 모델로 했기 때문이며, 당시 일본의 지배가 서구 여러 국가의 협조와 인정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런 상황은 1930년대 후반 급변한다. 대만, 조선, 만주에서 일제힌 그 지역 전통건축 지붕을 닮은 지붕이 올라간 청사나 역사가 준공된다. 저자는 만주사변 발발과 함께 일본이 유럽의 동아시아 지배틀을 벗어났음을 증명하는 사건으로 해석한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 시절 한국에 세워진 건축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제공한다. 아시아 전역을 시야에 포함했을 때 드러나는 사실들을 통해 20세기 한국 건축의 역사, 나아가 한국사 서술에서 비어있는 자리를 충실하게 메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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