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의 소멸을 걱정할 시간에 살펴봐야 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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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의 소멸을 걱정할 시간에 살펴봐야 할 것들
  • 양승훈 경남대·사회학
  • 승인 2022.12.1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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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2016년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겼다.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메시지는 다보스 포럼의 ‘일자리의 미래’ 보고서에서도, 인공지능과 자동화를 다루는 문헌들에서도 단골이 됐다. 이른바 ‘숙련편향적 기술진보.’ 대체되지 않는 전문성 혹은 고도의 숙련이 필요한 일자리는 지속된다. 아예 숙련 같은 게 필요 없(다고 여겨지)는 저임금 돌봄 일자리도 지속된다. 그런데 공장의 오래된 생산직 일자리나, 단순 사무직 업무 등 중숙련 일자리는 사라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대학의 관점에서는 ‘대체되지 않는 사무직’을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가가 고민이었다.

대학과 산업계에는 ‘빅데이터’ 바람이 불었다. 인문사회계열의 학생들이 통계를 공부하면 보통 ‘사회조사분석사 2급’ 자격증을 따는데, 빅데이터를 다루는 기술인 ‘데이터 분석’ 역량이 강조되면서 ‘데이터분석준전문가(AdSP)’ 자격증이 신설되었다. 대학의 각종 ‘방법론’과 ‘통계’ 수업들은 좀 더 유행을 반영하여 ‘데이터분석’이라는 이름을 달게 됐다. 나 역시 지방대 현장에서 데이터분석을 강의하고, ‘업계’로도 학생들을 취업시킬 수가 있었다. 통계도, 코딩도 익숙하지 않고 심지어 교재를 읽기 위해 필요한 영어도 힘들어하는 학생들도 ‘아주 기초부터(from scratch)’ ‘실습 위주로(hands-on)’ 과제를 하고 공모전을 나가다보니 잘 할 수 있게 됐다. 모르면 다음 학기에 또 들으면(재수강) 된다.

몇 년 새 일자리의 상황은 드라마틱하게 변하고 있다. 산업 측면에서 보자면 한동안 높은 임금과 스톡옵션을 통해 대졸자 노동시장의 선망직장 역할을 하던 IT업계의 시기가 저물어가고 있다. 고금리 유동성 축소 국면에서 업계는 ‘부르는 게 값’이라던 스톡옵션을 축소하거나 연봉 인상폭을 줄이거나, 개발자들을 해고하는 흐름도 벌어지고 있다. 재무관리와 준법경영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 회사들은 상장폐지도 겪는 상황이다. IT업계로 갔다가 ‘겨울’이 올 것에 대비해 다시 제조대기업의 문을 두드리는 엔지니어들도 늘어나고 있다. 스톡옵션보다는 당장의 높은 기본급과 고용보장을 받는 게 훨씬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의 시대에 가장 ‘섹시한 직업’으로 손에 꼽혔던 데이터분석가들의 일자리 역시 축소되고 있다. 일단 데이터분석 기술이라는 것이 ‘특수 기술’이 아니라 ‘범용 기술’로 탈바꿈되었다. 초중고 전 과정에서 코딩을 배우듯이, 이미 코딩 열풍은 5년을 넘게 지속되고 있다. 데이터시각화, 텍스트마이닝, 요약통계처리, 간단한 기계학습 알고리즘 적용 등은 ‘이공계의 향기가 나는’ 소수 인문사회계열 혹은 상경계열 학생들의 ‘특기’가 아니라 일반적인 사무자동화 기술이 되어버렸다. 2000년대 초중반까지 열풍이 불었던 MOS(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활용 능력)처럼 되어버린 셈이다. 한동안 눈 밝은 취준생들이 미국의 MOOC(대규모 온라인 공개 과정) 영어 강의를 먼저 발견해 수강하면서 자격증을 따서 Linkedin 같은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서 취업의 기회를 갖기도 했었다. 이제 높은 수준의 한국어 강의도 흔하고, 기업들의 관심이 구직자의 데이터 분석 역량에 가 있지도 않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섹시한’ 기술을 찾아서 취업교육의 트렌드로 삼아야 할 것인가? 데이터분석이 범용기술이 된 순간, 제 몫을 해내며 노동시장에서 좋은 일자리를 찾는 청년들은 ‘기본’이 되어 있는 친구들이다. 대학을 졸업해서도 틈틈이 챙겨 읽는 전공지식이 생각보다 쓸모 있다고 현업에 있는 한 제자들이 이야기한다. 그렇다고 문과 학생들에게는 취업교육 말고 인문학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다. 반대로 인문학과 사회과학 학부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그게 직업전망과 어떻게 연결되고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를 충실하게 교수들이 전달해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장기 트렌드까지 생각해보면 해결할 문제는 더 복잡하다. 학령인구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구직보다 구인이 늘어날 시기가 머지않았다. ‘좋은 일자리’에 대한 경합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일자리 숫자보다는 일자리의 질이 중요해지고 있다. 최저임금도 올라가 생계비는 어떤 방법으로든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청년들은 직업과 관련해 ‘미래 전망’을 가장 중요시 한다. ‘미래 전망’은 트렌드를 빠르게 찾는 기민함을 통해 발굴할 수도 있지만, 스스로의 진지로서의 전문성을 갖추면서 중심을 잡고 탐색할 수도 있는 것이다. 대학은 어떤 진지를 학생관점에 서서 제공할 수 있을까? ‘취업 교육센터’로 전락했다고 비난 받는 대학이 교육 수요자 관점에서 고민해봐야 할 점이 아닌가 싶다.


양승훈 경남대·사회학

경남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사회조사방법론, 데이터분석, 과학기술사회학을 강의한다.
조선소에서 5년 정도 근무했고, 학교에 와서 6년을 근무했다.
제조업 벨트인 동남권의 노동과 산업, 그리고 청년에 대해서 연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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