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언어와 과학적 언어: 소통과 상호이해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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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 언어와 과학적 언어: 소통과 상호이해를 위하여
  • 한상훈 연세대·법학
  • 승인 2022.12.05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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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쿠스]

자신의 주전공인 학문영역에서 벗어나 다른 학문에 관심을 갖고 접근하다 보면, 무엇보다 언어의 장벽에 부딪치게 됨을 종종 느낀다. 마치 다른 언어를 배울 때의 장벽 비슷한 느낌이라고 생각된다. 법학(형사법) 전공자로서 철학이나 심리학 등 사회과학을 접할 때에도 그런 어려움을 갖곤 한다. 예를 들자면, 먼저 ‘타당성’(validity)이 떠오른다. 

우리 법학에서 타당성은 주로 ‘구체적 타당성’이라는 용어로 사용되는데 이때 타당성의 의미는 어떠한 법을 적용한 결론, 결과가 적절하고 받아들일 만하다는 의미로 주로 사용된다. 즉 결과의 적절성을 나타낸다. 이런 선(先)이해를 갖고 논리학 책을 읽을 때 추론의 타당성 부분에서 이해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논리학에서 타당성이란, 어떠한 추론이 논리법칙에 맞아서 참인 전제로부터 거짓인 결론이 도출되지 않는다는 성질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나중의 일이다. 그제서야 추론의 타당성이 결과와는 전혀 다른 단지 과정, 절차의 문제라는 것을 알고는 허탈한 적도 있었다. 사회조사방법론에서 설명하는 타당성은 실험조사 또는 시험의 내용이 측정하고자 하는 요소를 정확하게 측정하는 정도라고 하며, 기준 타당성, 내용 타당성, 구성 타당성으로 나뉘어진다고 하는데, 그 의미가 무엇인지는 아직도 알 듯 모를 듯하다. 이외에도 보편타당성, 객관적 타당성 등 여러 타당성이 있지만, 그 의미가 동일하지는 않은 것 같다. 이러한 전철을 학생들이 다시 밟지 않게 하려고, 요즘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이미 다양한 학부를 졸업한 학생들 앞에서 강의할 때에는 구체적 타당성의 의미가 전공에 따라서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게 되었다. 사실 법학 내에서조차 validity는 유효성으로 이해될 때도 있음을 덧붙이기도 한다. 

사실 법학에서 타당성은 결과와 관련된 개념이고, 논리학에서 타당성은 과정에 관한 것이므로 어찌 보면, 상반되는 용어이다. 같은 용어의 의미가 이렇게 다를 수 있다니 놀랍기도 하였다. 이는 독일어를 공부하면서 겪었던 경험과도 유사하다. 영어와 독일어는 같은 어족에 속해서인지 유사한 단어가 무척 많다. 아버지(father, Vater), 어머니(mother, Mutter)처럼 발음이 유사한 경우, 집(house, Haus)처럼 발음이 같은 경우도 많다. 그러니, 독일어 명사인 ‘Gift’, 그 동사형인 ‘vergiften’을 봤을 때 철자와 발음으로 보아 뭔가 ‘선물’(gift, present)이 연상되었음은 당연하였다. 하지만, 그 독일어의 의미가 각 ‘독’(poison)과 독살(poison, verb)임을 알게 되었을 때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음은 능히 상상이 될 것이다. 사람을 독살하였는데 번역은 선물을 주었다고 오역하기 십상인 것이다. 

‘입증의 기준’도 그러하다. 형사법에서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하여 처벌하기 위해서는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의 증명’(proof beyond a reasonable doubt)이 필요하다. 이 원칙은 영미법에서 확립되어 우리나라 법률과 판례로 인정되고 있다. 형사소송법 제307조(증거재판주의) ②항은 “범죄사실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러야 한다.”고 규정한다. 일단 피고인은 무죄로 추정되지만, 이러한 무죄추정을 깨고(기각하고) 유죄를 인정하기 위해서 요구되는 입증의 정도라고 할 것이다. 민사소송과 달리 형사소송에서의 입증정도는 이처럼 상당히 높은 편이다. 이로 인하여 형사소송에서는 무죄인 사람이 민사소송에서는 패소하여 손해배상을 하는 경우도 꽤 있다. 미국에서는 O. J. 심슨 사건이 대표적이고,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사례가 종종 있다. 고의의 살인은 물론이고 과실범에서도 이 입증원칙이 적용되므로 피해자나 유족의 입장에서는 억울하고 화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국가형벌권의 남용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 있기에 가슴 아프지만 어찌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최근에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 이러한 아픔을 느끼기도 하였다. ‘내 몸이 증거다’는 피해자의 외침이 먹먹하지만, 인과관계의 문제도 엄격한 증명을 거쳐서 입증되어야 한다는 법원칙과 법의 언어도 포기될 수 없기에 더욱이 그러하다. 

모든 과학에서와 마찬가지로 형사절차에서의 목표도 진실의 발견이다. 적법절차와 인권보장, 신속한 재판도 언급되지만, 궁극의 이념은 실체적 진실의 발견이라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존재하는 것에 대해 존재한다고 말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참이다. 거꾸로 존재하는 것에 대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존재한다고 말하면 거짓이다.”(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고 한 것이나, 공자가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그것이 참으로 아는 것이니라(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라고 한 말[논어(論語), 위정편(爲政篇)]도 같은 의미로 볼 수 있다.

사실과 합치하지 않는 재판을 오판(誤判)이라고 하는데, 이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과 같이, 적극적 오류와 소극적 오류의 두 종류가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범죄가 존재하지 않음에도 과잉, 편파수사를 하거나 유죄라고 판단하는 잘못은 적극적 오류(1종 오류)이고, 반대로 범죄가 발생하였음에도 과소수사를 하거나 무죄로 판결하는 잘못은 소극적 오류(2종 오류)이다. 과학에서의 오류와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런데, 형사법에는 ‘10명의 범죄자를 방면하더라도 1명의 무고한 자를 처벌하면 안 된다’는 법언이 있을 만큼 적극적 오류를 더 치명적으로 본다. 이는 유의수준 α를 따지는 과학적 방법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학문분과에 따라서 유의수준을 더 높게 설정하기도 조금 낮게 설정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형법은 사람의 생명과 신체, 자유가 걸려 있기에 높게 설정한다. 무죄추정, 즉 피고인은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하는 귀무가설을 기각하기 위해서는 보다 엄격한 증거가 요구된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 PHMG를 원료로 한 경우 이미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것(대법원 2018. 1. 25. 선고 2017도12537 판결)과 달리, CMIT/MIT를 이용한 사건에서는 2021년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었다.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 성분 가습기 살균제가 폐질환이나 천식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이다. 재판부는 나름 고심 끝에 무죄추정과 합리적 의심의 여지없는 증명의 법리에 입각하여 판결하였을 것으로 짐작한다. 그럼에도 과학계가 재판부에 대하여 ‘과학에 무지하다’거나 ‘과학을 무시했다’고 비판한다면, 법학과 법원칙에 대한 충분한 성찰의 결과라고 할 수 있는지 걱정되기도 한다. 과학계의 비판과 CMIT/MIT의 연구결과를 종합하여 법적으로 판단해 볼 때,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사망과의 인과관계까지는 인정하기 어려워도 천식과의 인과관계는 인정할 여지도 있어 보인다. 

다시 언어의 문제로 돌아와 보자. ‘결과를 야기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거나 포퍼의 반증주의에 입각한 잠재적 진실 주장만으로 형사법에서 유죄를 입증하기는 어렵다고 생각될 것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단지 결과를 야기하였을 가능성 또는 개연성이 있다는 정도로는 무죄추정을 깰 수 없기 때문이다. 법실무와 과학계의 상호이해가 요청되는 대목이다. 사망과 상해(천식)와의 인과관계를 구별하여, 천식과의 인과관계를 보다 명확하게 일반적 규칙에 따라 개별사건에서도 영향을 미쳤음을 입증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유죄가 입증되기 위해서는 과학과 달리 일반적 원인성뿐 아니라 구체적 원인성도 입증되어야 한다.

영어와 독일어가 대부분 유사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는 것처럼 과학과 법학도 대부분 유사하지만 다른 부분이 있다. 어느 쪽이 맞고 다른 쪽이 틀린 것이 아니라 단지 서로 다를 뿐이다. 상호 이해와 소통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민사소송과 형사소송에서 유무죄가 엇갈린다고 하여 어느 한쪽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듯이, 과학과 법학도 서로 소통하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하나만 덧붙이자면, 우리 국가나 공무원 조직은 무능하다고까지는 몰라도 대형 참사의 예방에 충분히 효과적이지 않다는 점이 다수의 사건에서 드러났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뿐 아니라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 세월호 사건, 최근의 이태원 사건까지 국가 조직과 공무원은 참사를 방지, 예방할 수 있다는 충분한 신뢰를 주지 못한다. 이로 인하여 개인의 현명함과 과학적 인식이 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그대로 있으라’는 선장의 방송이나 해경의 과오, 경비인력을 충분히 배치하지 않은 경찰의 태만으로 볼 때 우리 국민은 권위나 국가를 무작정 믿고 있기보다 스스로 의심하고 진리를 탐구하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주체가 되어야 한다. 깨어 있는 시민이 사회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것이다. ‘Nullius in verba’ 즉 ‘누구의 말도 그대로 믿지 말라’, 의심하고 검증하라고 하는 영국왕립협회의 모토는 이제 우리의 모토가 되어야 하고, 지식인 사회는 모든 국민이 비판적이고 능동적으로 진실을 추구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를 위하여 법학과 과학, 여러 학문 간의 소통과 이해는 더욱 불가결할 것이다. 


한상훈 연세대·법학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서울대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형사법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법학전문대학원에서 형사법을 강의하며 법심리학, 법철학, 사회학 등에 관심이 있다. 사법개혁위원회와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에서 국민참여재판 제도설계, 형사소송법 개정 등에 참여했다. 최근에는 법과 제도의 개혁 구조에 관하여 “법은 패러다임이다”라는 명제하에 ‘법 패러다임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인권, 정의, 법적 안정성 등과 같은 전통적인 법의 이념을 넘어서 “법학을 통하여 사람들의 행복을 증진한다”는 모토하에 행복과 법을 접목시키려고 모색하고 있다. 《법과 진화론》, 《법학에서 위험한 생각들》, 《법의 딜레마》, 《법의 미래》, 《형법개론》을 저술했고(공저 포함), 《법심리학》을 공동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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