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한국종교의 다양한 사상자원을 인류세 철학 내지는 생태사상으로 재해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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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한국종교의 다양한 사상자원을 인류세 철학 내지는 생태사상으로 재해석하다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12.05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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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현대 한국종교의 생태공공성과 지구학적 해석 | 허남진·조성환·김봉곤·김석근·김재명 외 5명 지음 | 모시는사람들 | 320쪽

 

한국에 도래한 서구의 근대는 이성의 강조와 자연과 인간, 자연과 문화를 분리시키는 이분법적 사고에 바탕하는바, 이 책은 그 결과로 오늘의 인류와 지구가 마주한 ‘인류세’의 시점에서 근대 한국종교의 다양한 사상자원을 인류세 철학 내지는 생태사상으로 재해석하는 시도를 담고 있다. 즉, 서구적 근대 사상의 기조인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인간과 만물의 조화와 공생을 도모하는 새로운 종교로서의 한국종교의 개벽운동인 생명평화운동의 전개 과정과 그 사상적 맥락을 검토하여 〈한국종교의 생명평화운동〉, 〈한국종교의 지구학적 해석〉, 〈기후위기 시대의 종교생태사상〉의 세 단계에 걸쳐서 논구한다.

인간의 활동이 인간의 거주 환경인 대기권과 유기체의 생존 근거인 지질학적 차원에까지 그 영향을 끼치고 발자국을 남기는 시대를 일컬어 ‘인류세’라고 한다. 지구온난화, 남북극빙하 극북 지역 및 고산지의 만년빙하의 해빙, 시베리아영구동토층 해빙, 생물대멸종 등으로 대표되는 이러한 인류세의 징후는 결국 ‘인류 멸망’의 시나리오를 써 나가고 있다.

이러한 인류세의 위기에 대응한 인간의 필사적인 노력은 파리기후협약(신기후체제)으로 대표되는 국가-국제 정치 차원의 노력에 더하여, 민간 차원은 물론이고 학계, 경제계 등에 걸쳐 전방위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관적인 전망이 점점 높아지고 깊어지는 중이지만, 이 문제에 관한 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정신으로 할 수 있는 한의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사명이기도 하다.

인류세의 문제는 당면한 눈앞의 현상에 대한 대증적 요법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최근 300년간 과학혁명과 산업혁명, 에너지 혁명과 미디어 혁명 등의 수많은 혁명적 변화와 성장 일변도의 체제를 통해 구축해 온, 그리하여 오늘날 ‘전 지구적’으로 압도적인 것이 된 근대문명 자체에 대한 ‘대전환’을 요구하는 흐름으로 귀결되고 있다. 

한편에서는 여전히 과학주의에 의거한, 다시 말하면 제4차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신기술 발전, 지속가능한 성장 등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낙관론이 자리 잡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문명의 기저에서부터 근본적인 쇄신과 차원 이동이 요구된다는 의식도 점점 확장되고 있다. 예컨대 오늘날 SF영화나 소설 등에서 타임 슬립이나, 다중우주, 별(別)세계 등을 빈번하게 다루는 까닭도, 현재의 우리 인류가 처한 상황은 지금까지의 인류 상식이나 우주적 법칙을 넘어서는 수준의 대대적이고 근원적인 발상의 전환, 삶의 양식의 변화를 경유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식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공동 저자들은 이러한 문제에 대한 대안을 근대한국의 종교의 지혜에서부터 찾는 일을 해 오고 있다. 근대한국의 종교란 일찍이 ‘서세동점’으로 이야기되는 서구 세계의 압도적인 동래, 즉 자본주의의 세계화 국면에서 한국적 또는 동아시아적 지혜로써 이에 대응하고 또 이러한 ‘자본주의의 세계화’가 예고하는 전 지구적인 파탄에 대한 대안으로써 창도되고 창설되고 창안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후천개벽’이라고 하는 것이며, 특히 근대한국 종교 가운데서도 이러한 입장을 종교적 근간으로 삼는 일군의 종교를 일러 ‘개벽종교’라고 하는 것이다. 이들 개벽종교는 오늘날 ‘생명평화운동’이라는 것으로써 인류세의 종말적 위기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생명평화운동은 한국이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위치에서 오랫동안 구축해 온 지혜의 패턴을 그대로 따르는 가운데, 한국 고유의 사상적, 문화적, 종교적 자원으로서 빚어낸 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즉, 2차 세계대전 후 일본에서는 평화라는 말이 사회적 화두가 되어 원폭 투하의 도시 히로시마에 평화의 문(平和の門)을 세운 것을 비롯해서, 평화헌법 수호 시민운동, 학문적인 차원에서의 평화학의 활성화 등의 특징을 드러냈다. 반면에 중국학계에서는 생명에 대한 철학적 접근이 활발한바, 노자 또는 도교의 생명철학, 왕양명의 생명철학 등이 그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에서는 생명과 평화를 아우른 생명평화 담론과 운동이 뚜렷한 흐름을 형성해 왔다. 한국에서도 평화와 생명의 담론이 저류에 흐르고 있었으며, 그것이 개벽종교를 통해 근대적 발화를 하여 오던 중 1980년대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생명평화운동과 생명평화사상으로서의 자기인식을 하게 된다. 장일순 선생, 김지하 시인을 필두로 한 ‘원주그룹’과 2000년에 불교계를 중심으로 시작된 생명평화운동은 그 구체적인 실천 양상이다. 10여 년 뒤에는 그리스도교계에서도 생명평화운동이 전개되었고, 이후로는 한국사회 전반에 생명평화라는 말이 화두가 되었다. 이것은 결국 동학 이래의 한국 근대종교의 자원이 현대적으로 계승되고 개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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