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의 공간에서 취향의 공동체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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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의 공간에서 취향의 공동체까지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11.28 0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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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점의 시대: 지성과 문화가 피어난 곳, 그 역사를 읽다 | 강성호 지음 | 나무연필 | 264쪽

 

서점은 우리에게 어떤 곳이었을까? 언뜻 책을 파는 정적인 공간으로 인식되는 서점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빛깔을 가진 공간으로 존재해왔다. 저마다의 이유로 삶의 경험이 기억으로 축적되어 있는 서점은 시대마다 다른 얼굴로 많은 이들에게 활짝 열린 곳이었다. 이 책은 그러한 서점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다룬다. 

거슬러 올라가보면 근대 인쇄술이라는 새로운 기술 환경에 힘입어 이 땅에 태동한 서점은 문화산업의 선봉에 선 것은 물론, 출판업을 겸하며 출판산업의 단초를 열었다. 식민지, 해방공간, 군사독재 시대에는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이들이 함께 미래를 모색하는 아지트였다. 그 와중에 고서점, 전문서점, 대형서점, 온라인서점, 독립서점 등 다양한 형태의 서점이 모습을 드러냈다. 서점들은 거리 풍경을 바꾸고 시대의 문화를 변모시켰다. 그 한가운데에 참신한 시도를 해나간 서점인들이 있었다. 

근대 인쇄술의 유입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책은 새로운 상품 아이템으로 부상한다. 이 시대에 책 장사는 선도적이면서 전망 밝은 문화산업이었는데, 각종 종이를 유통하던 지물포가 서점업을 겸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때의 서점은 지물포의 주력 상품인 종이에 새로운 가치를 불어넣는 출판을 병행했다. 필자는 이를 ‘출판서점’이라 명명하는데, 이때는 출판사가 곧 서점이고 서점이 바로 출판사였다.

이렇듯 종이가 유통되던 곳에서 출발한 서점은 시대의 변화를 빠르게 인지한 이들이 일군 새로운 지식산업이었다. 시대를 앞서간 지식은 당대의 기득권인 권력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그러한 지식이 담긴 책들은 금서로 지정되어 권력의 탄압을 받았고, 탄압의 중심에는 서점이 있었다. 서점은 곧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자들과 이를 억압하는 권력 간에 문화투쟁이 벌어지는 장소였다. 

민주화운동의 역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1980년대에 전국 대학가를 비롯해 지역 곳곳에 등장한 사회과학서점들은 저항 공동체의 중심에 있었다. 수많은 대학생들은 이곳에 모여 함께 공부하며 어둠 너머의 미래를 꿈꿨다. 

우리 서점의 역사 속엔 고서점이라는 한 길을 뚝심 있게 걸어간 서점들도 있다. 판매 못지않게 수집이 중요한 이 분야의 서점인들은 옛 서적과 그림에 대한 식견과 전문성을 갖추고 있었다. 이들은 고서 수요가 감소한 일제 식민지하에서도 우리 문화재가 다른 나라로 유출되는 일을 막기 위해 사재를 털기도 했다. 

전문서점 영역을 개척한 서점인도 꾸준히 나왔다. 엄혹한 시절을 지나며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에는 더 많은 전문서점이 등장한다. 산업화 시대엔 과학기술 전문서점이, 1990년대에는 어린이 전문서점이 각광받았다. 사진이나 음악을 취급하는 예술 전문서점도 출현하여 서점 생태계는 더욱 다채로워졌다.

1963년 종로서적이 개점하여 독창적 서비스로 이용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또한 1972년에 한국출판금고(현 한국출판문화진흥재단)에서 국내 서적을 총망라한 중앙도서전시관을 열어 큰 호응을 얻었다. 이는 전국적인 서점 대형화의 물결로 이어졌고, 1981년엔 한국 최대 규모의 서점인 교보문고가 개점했다. 대형서점의 시대가 열리는 과정에서 대형서점과 소형서점의 갈등이 발생했으며, 지역의 도시마다 규모 있는 중형서점이 생기는 등 다방면에서 서점 지형의 변화가 찾아왔다.

인터넷 시대를 맞아 1990년대 후반에는 온라인서점이 등장했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으로 온라인서점이라는 플랫폼 사업이 가능해진 것이다. 온라인서점의 초기 전략은 할인판매였는데, 이로 인해 도서정가제가 붕괴되고 다시 지역서점이 폐업 위기로 몰리는 등 다양한 부작용도 발생했다.

변화하는 시대에 맞추어 책과 사람을 잇는 새로운 방법론을 찾는 서점들의 시도는 우리 서점의 풍경 속에 늘 존재해왔다. 오늘날 익숙한 북카페는 1970년대부터 필요성이 제기된 공간이다. 1990년대 이후로 청년이 서점을 운영하는 사례가 드문드문 생겼는데, 회원제 대여를 실시했던 부천의 소사책방이나 국내 최초의 여행 전문서점 신발끈은 기존 서점과는 확연히 다른 서점이었다. 현재까지 독립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여러 대표들은 해외 서점의 사례에 충격을 받고 서점을 개업했다고 밝힌 바 있다.

요즘 서점의 트렌드로서 독립서점을 거론하지 않는 이는 드물 것이다. 기존 출판의 틀과 형식에서 벗어난 독창적인 기획과 제작 방식으로 만들어진 독립출판물을 판매하는 서점, 그중에서도 특정 분야의 책만 전문 취급하는 서점, 직접 독립출판을 하거나 서점 운영자의 클래스로 꾸려지는 서점 등. 획일성을 벗어나 저마다 고유한 의미를 발산하는 독립서점들은 이제는 익숙한 풍경으로 여겨진다. 이들의 바탕을 이룬 참신하고 독특한 시도들은 그 훨씬 전부터 싹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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