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가와 함께 읽는 현대의 고전 『율리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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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가와 함께 읽는 현대의 고전 『율리시스』
  • 이강훈 서원대학교·영문학
  • 승인 2022.11.27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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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옮긴이의 말_ 『조이스의 「율리시스」 입문』 (숀 쉬한 지음, 이강훈 옮김, 서광사, 208쪽, 2022.10)

 

누구에게나 친숙한 것은 편하게 느껴지고 이해하기도 쉽지만 시공간상으로 멀고 따라서 문화적으로 이질적일수록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소위 고전이라고 평가받는 작품들에 대해서 가지는 선입견 또한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친숙한 현실을 억지로 벗어나 시공간을 초월한 문화적 문맥을 찾아서 현재의 상황과 연결해야 하고 시대를 초월한 공감과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내야 하는 부담감이 선입견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고전 문학이 보여주는 총체적 삶의 비전 또한 급격한 변화와 세밀하게 파편화된 일상에 쉽게 적용되지 않는 듯한 인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인문학에서 고전 문학의 가치는 누구나 인정하듯 높고 확고하지만 일반 독자들의 이러한 선입견을 해소해 줄만한 노력이 충분했는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인문학의 위기 속에서 고전 문학작품들을 일반 독자와 학생들에게 최대한 쉽고 친절하게 소개하고자 하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동시에 맛보기 식의 예시와 과도하게 단순화된 친절한 해설이 오히려 독자의 참여와 상상력을 제한하고 고전의 풍요로움을 단순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도 있을 수 있다. 특히 현대의 고전이라면 현대문학 특유의 세밀한 묘사, 독특한 상상력과 기법, 쉽게 포착하기 힘든 주제와 비유 등으로 인해 독자를 위한 적절한 가이드가 필요하지만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면서도 작품의 특성과 독서의 즐거움을 독자 스스로 느낄 수 있게 해 줄 수 있고  작품의 이해를 위한 포괄적이며 동시에 세부적인 가이드를 제공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는 대표적인 현대의 고전으로서 영문학도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그 명성을 들어봤을 만한 작품이지만 정작 영문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조차 접근하기 부담스러운 작품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국내외에서도 『율리시스』에 대한 연구서가 어느 정도 출간되어 조이스와 작품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주로 일반적인 주제나 줄거리, 내용을 설명하거나 지나치게 학술적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숀 쉬한의 『조이스의 「율리시스」 입문』(Reader’s Guides – Joyce’s Ulysses)은 기존의 입문서와 달리 일반적인 독자와 전문적인 비평가의 시각을 동시에 고려한다. 작품의 배경이나 정보, 구조와 주제 외에 기존의 연구서들이 다루지 않았던 스타일상의 특징, 텍스트와 서술을 통해 암시되는 조이스의 미학적 세계관을 통합적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조이스 텍스트의 주된 특징인 복잡하고 불안정한 서술을 어떤 시각에서 즐겨야 하는지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책은 모두 6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장인 “작품의 배경”은 기존의 연구서와 크게 다를 바 없이 작가와 작품의 배경에 대한 소개로 이루어져 있다. 2장인 “언어, 스타일, 형식”은 『율리시스』의 핵심이 언어의 풍요로움과 스타일의 다양성에 있음을 본격적으로 보여준다. 기존의 연구서나 소개서들이 작품의 구조나 주제, 내용 해설에 집중되었음을 고려해 볼 때 쉬한의 책이 초기의 인문학적 접근에서 벗어나 후기 구조주의 이후의 논의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율리시스』 읽기”라는 제목의 3장은 이 책의 가장 중심이 되는 부분으로서 『율리시스』를 구성하는 18개의 챕터들의 주제와 언어, 스타일을 분석하는 “논제”는 쉬한의 꼼꼼한 독서와 비평적 안목을 확연히 드러내는 이 책의 주요 특징이다. 이어서 4장에서는 『율리시스』에 대한 기존의 비평과 출판의 역사를 다루고 있으며 5장인 “각색, 해석, 영향”은 『율리시스』가 다른 작가들의 문학에 끼친 영향 외에 영화, 음악, 회화 등으로 각색된 경우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는 조이스의 작품이 어떻게 다른 예술의 형태로 확장되었는지, 디지털 시대에 현대의 고전이 어떤 형식으로 재창조될 수 있는지를 암시해 준다. 마지막인 “추가 독서를 위한 가이드”는 다양한 분야의 대표적인 연구서들 뿐 아니라 영미권의 조이스 연구단체들과 그들의 활동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원서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3장에서 작품의 각 챕터마다 등장하는 “논제”들이다. “논제”들을 통해서 쉬한은 기존의 연구서들을 통해 잘 알려진 각 장의 기본적인 내용과 모티프, 서술과 주제를 꼼꼼한 독자 또는 비평가의 시각에서 매우 비판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일반적인 사항들을 소개하는 데에서 끝나지 않고, 그러한 사항들이 어떻게 조이스 특유의 독특한 서술 전략으로 이어지는지 추적하고 있으며 나아가 기존 연구들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최근의 비평적 경향까지 함께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쉬한은 「떠도는 바위들」 장에서 더블린 시내를 떠돌아다니는 인물들을 구심성과 원심성, 탈중심화된 도시의 이미지, 소우주와 대우주 등의 전형적인 접근에서 벗어나 언뜻 놓치기 쉬운 영국 식민주의에 대한 풍자라는 정치적 메시지까지 읽어낸다. 또한 「키르케」의 환각 장면에서도 기존의 프로이트식 독법 외에 일상 언어 속에 숨겨져 있는 식민주의의 문화적 흔적을 소개하고 있으며 당대의 영화 기법과의 유사성도 언급하고 있다. 

4장에서 쉬한은 『율리시스』에 대한 엘리엇의 고전적 비평에서 시작하여 모더니즘 작가들의 반응, 초기 조이스 비평가들의 비평, 후기 구조주의의 시각 그리고 최근의 후기 식민주의까지 『율리시스』 비평의 흐름과 핵심 사항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는 특정한 접근법만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의 연구서나 소개서와 다르게 조이스 연구의 다양성과 그 전반적인 흐름, 서구 문학비평의 역사를 통시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작품에 대해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비평적 시각의 흐름을 쉽게 이해하게 해 준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논제”를 이끌어가는 쉬한의 비평적 언급 방식이다. 각 장의 “논제”들은 쉬한 자신이 소개했던 『율리시스』 비평의 변천 과정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어 독자의 입장에서 쉬한의 논점들을 읽어 나가는 것만으로도 『율리시스』를 해석하는 각 시대의 독특한 시각을 함께 경험할 수 있다. 물론 쉬한이 논점들을 단순히 늘어놓는 것에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각각의 비평적 시각을 소개하면서 동시에 각 시각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으며 그러한 한계가 어떻게 이후의 대안적 비평으로 연결되는지를 자연스럽게 소개한다. 따라서 독자는 『율리시스』에 대한 다양한 접근 방식들 뿐 아니라 각 방식들의 장, 단점까지 함께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은 단순히 『율리시스』에 대한 기존의 정보만을 소개하는 책이 아니다. 비평서도 아니고 연구서도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일종의 비평적 소개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고전에 대한 독자들의 부담과 선입견을 덜어주며 작품 이해의 가이드를 제공하면서도 동시에 고전이 가진 깊이와 다양성, 그리고 이를 어떻게 독서의 즐거움으로 연결할 수 있는지를 비판적 독서를 통해 보여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는 고전의 과도한 단순화를 지양하면서 동시에 독자의 주체적인 독서행위를 자극한다는 의미에서 현대의 고전에 대한 적절한 비평적 소개서인 셈이다. 쉬한은 자신의 비평적 지식과 함께 꼼꼼한 독자의 입장에서 비판적 독서를 통해 『율리시스』라는 현대의 고전을 어떻게 즐길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으며 독자는 쉬한의 시각을 따라가면서 고전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함께 즐기게 된다.


이강훈 서원대학교·영문학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제임스 조이스의 스타일 연구 - 바흐친의 미학이론을 중심으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원대학교 영어교육과 교수이다. 저서로 『조이스와 바흐친 - 스타일과 미학의 만남』,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연구』, 옮긴 책으로 『타이탄의 미녀』, 『코란이란 무엇인가』, 『아이러니와 모더니티 담론』(공역), 『매저키즘』, 『마조히즘 - 권력의 예술』, 『의심의 역사』(공역), 『더블린 사람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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