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의 지도를 읽기 위한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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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의 지도를 읽기 위한 가이드
  • 문규민 중앙대·철학
  • 승인 2022.11.27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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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책, 나의 테제_ 『신유물론 입문: 새로운 물질성과 횡단성』 (문규민 지음, 두번째테제, 263쪽, 2022.10)

 

『신유물론 입문: 새로운 물질성 횡단성』의 주제는 신유물론이다. 신유물론을 일반화해서 서술하는 일에는 언제나 단순화의 위험이 따른다. 신유물론은 이질적인 기원에서 유래한 사상적 조류들이 ‘우연히’ 만나 만들어진 하나의 사건이자 사유의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다른 것 같으면서도 같고, 같은 것 같으면서도 다른 것이 스타일이다. 한 사상은 몇몇 테마에 의해 일관적이게 되지만, 또한 다양하게 변형됨으로써 이질적이게 된다. 마치 블루스나 재즈의 잼 세션에서 공통의 테마들이 생성되고 변주되듯이 말이다. 이 책은 신유물론을 유물론적 사유의 새로운 스타일로 간주하고, 테마와 변주의 양태를 파악하고자 한다. 다양한 신유물론을 가로지르는 테마들은 무엇일까? 그리고 베테랑 연주자들은 그 테마들을 어떻게 연주하고 있을까? 
   

1. 먼지 날린다, 먼지가 날아다닌다: 새로운 물질성 

첫 번째 테마는 새로운 물질성이다. 들뢰즈가 나무를 대체하는 뿌리줄기, 즉 리좀이라는 새로운 사유의 이미지를 제시했다면, 신유물론은 수동적이고 무력한 물질을 넘어선 능동적이고 활기찬 물질이라는 새로운 물질의 이미지를 제시한다고 할 수 있다. 흔히 ‘재에서 재로, 먼지에서 먼지로’라고 할 때, 거기서 먼지는 스스로 어떤 힘이나 역량도 발휘하지 못하는 물질 부스러기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그 먼지가 자체적인 역량을 발휘하여 행위할 수 있다면 어쩔 것인가? 

좀 꺼림칙하겠지만, 방구석에 부옇게 쌓인 먼지를 한 번 훅 불어보라. 순식간에 먼지는 사방팔방으로 겉잡을 수 없이 날리기 시작할 것이다. 멈춰 있던 먼지는 숨결에 의해 몰려온 공기 분자들과 충돌하여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고, 움직이는 와중에도 다른 분자들과 끊임없이 부딪힐 것이다. 그러나 먼지가 움직이는 속도와 경로가 오직 그런 충돌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외부에서 충격이 주어졌을 때 특정한 속도와 경로로 움직이는 능력을 갖지 못했더라면, 먼지는 그렇게 날리지 않았을 것이다. 누구도 그렇게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먼지에게 불어넣어 주지 않았다. 그것은 먼지가 먼지로 존재할 때부터 타고난 것이다. 누구도 충돌이 발생했을 때 그렇게 움직이라고 프로그래밍한 적 없다. 먼지는 자기가 알아서, 자기 깜냥껏 움직일 따름이다. 외부에서 가해지는 충격은 먼지가 자신의 운동 능력을 발휘할 기회나 조건을 제공할 뿐, 능력대로 움직이는 것은 먼지의 소관인 것이다. 물론 먼지의 무작위적 움직임이 어떤 법칙을 따를 수도 있지만, 그 법칙이 먼지와 무관하게 외부에서 부과된 규칙성인지, 아니면 먼지가 자신의 행위성을 규칙적으로 발휘하면서 생성한 것인지는 더 따져 볼 일이다. 어쨌든 먼지는 자강불식, 쉬지 않고 스스로 힘써 행한다. 방구석에 쌓여 있는 먼지는 잠자코 움직일 기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지, 마냥 죽어 있는 게 아니다. 바람에 날리는 먼지는 둥둥 떠다니면서 이리저리 휩쓸리는 게 아니라, 훨훨 날아다니면서 어슬렁거리고 있는 것이다. 

한낱 먼지조차 그렇게 적극적으로 실력발휘를 하고 있다면, 다른 물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물질은 전적으로 외부의 영향에 의해 일을 하게 되기보다는, 언제나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여 일이 되게 한다. 물질은 더 이상 그저 수동적이고 무력하기만 한 무기물일 수 없다. 그것은 때와 장소에 맞춰 자신의 능력과 역량, 행위성을 스스로 발휘하는 능동적 존재다. 이것이 신유물론이 제시하는 물질의 새로운 이미지다.

 

2. 먼지는 언제나 선을 넘는다: 물질의 횡단성

두 번째 테마는 횡단성이다. 물질은 횡단적이다. 횡단성이란 경계를 가로지르는 것, 경계에 걸치는 것, 한 쪽에 머무르지 않고 다른 쪽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둘 사이를 가로지르기에 한 쪽이 전부라고 말할 수 없지만, 둘이 한데 뒤섞이는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한데 뒤섞이지만 한쪽이 전부라고 말할 순 없는 상황을 이 책에서는 “총체성 없는 통일성” 또는 “종합 없는 구성”이라는 용어로 표현했다. (p.81) 그렇다면 물질은 무엇을 횡단하는가? 

물질은 우선 자연과 문화의 경계를 가로지른다. 때 되면 세상을 뒤덮는 황사, 즉 누런 흙먼지는 사막화된 지표에서 유래했다는 점에서 자연적이지만, 그 사막화를 가속한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의 무분별한 목축과 경작이라는 점에서 문화의 산물이기도 하다. 흙먼지는 자연적이면서 동시에 문화적지만, 또한 완전히 자연적이지도 순전히 문화적이지도 않다. 그것은 자연과 문화 사이를 횡단하는 ‘자연문화’인 것이다. 흙먼지가 자연과 문화만 가로지르는 건 아니다. 황사는 바람에 실려 오는 미세한 흙먼지지만, 사람들은 그 흙먼지를 보고 바깥에 오염이 진행 중임을 읽어내고 야외활동을 줄인다. 황사는 바람에 실린 흙먼지로 작용함으로써 오염이라는 의미를 실어 나르는 기호로도 기능하는 것이다. 그것은 흙먼지이지만 그저 흙먼지에 불과한 것은 아니고, 오염을 의미하는 기호이지만 단지 기호이기만 한 것도 아니다. 흙먼지는 물질과 기호를 가로지른다는 점에서 ‘물질-기호적’이다. 자연과 문화, 물질과 기호는 흙먼지 속에서 서로를 구성한다. 자연적인 사막화는 목축과 경작이라는 문화적 활동에 의해 구성되고, 그렇게 구성된 자연적 사막화는 다시 목축과 경작을 문화적으로 관리하고 규제하게 만들 것이다. 황사의 흙먼지 농도가 올라갈수록 오염을 인식하는 이들이 많아질 것이고, 흙먼지를 보고 오염을 운운하는 이들이 많아질수록 흙먼지 농도를 낮추기 위한 다양한 개입이 물질적 차원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흙먼지는 자연적 구성과 문화적 구성, 또는 물질과 담론 사이의 선을 넘나든다.

이렇듯 물질은 자연과 문화를 횡단하는 자연문화이자 물질과 기호를 가로지르는 물질-기호다. 횡단성은 범주 간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운동일 뿐만 아니라, 범주들을 얽히게 만드는 운동, 범주들이 서로를 구성하는 운동이기도 하다. 이러한 얽힘 또는 공-구성은 정신과 물질, 주변과 중심, 개체와 환경 등 모든 이원론적 범주들로 일반화되면서 범주들 사이의 경계를 유동적이고 불안정하게 만든다. 횡단성은 경계를 가로지르는 탈이원론의 운동이자, 서로가 반대쪽이 되어가는 교차-생성의 운동인 것이다. 그래서 책의 2장 ‘횡단하는 물질성’에서는 이 운동을 “교차성 존재론”이라는 용어로 요약했다. (p.96) 


3. 그게 인간과는 무슨 상관입니까?: 신유물론과 포스트휴머니즘

신유물론의 횡단성에 함축된 탈이원론은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까지 뒤흔든다. 여기서 신유물론은 물질의 존재론을 넘어 인간 이후의 인간, 인간 조건의 재구성에 주목하는 포스트휴머니즘의 존재론이 된다. 포스트휴머니즘은 인간을 총체적으로 대표하는 인간형을 상대화하고 탈중심화한다는 점, 인간과 비인간의 지위가 그리 다르지 않음을 폭로한다는 점에서 구조주의와 탈구조주의로부터 유래한 반인간주의의 흐름을 잇고 있다. 구조주의/탈구조주의의 무기가 인류학, 언어학, 계보학 등이었다면, 포스트휴머니즘은 거기에 기술과학의 현실과 성과, 그에 대한 과학학의 연구를 추가한다. 포스트휴머니즘은 ‘득템’한 반인간주의인 셈이다. 포스트휴머니즘은 반인간주의를 현재의 상황에서 반복하고 미래로 투사하지만, 그 와중에도 ‘우리는 우리 자신을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는가’라는 주체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을 결코 놓지 않는다. 신유물론의 횡단성이 함축하는 탈이원론은 다채롭게 펼쳐지는 비인간과 인간의 복잡한 얽힘과 횡단을 포착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점에서 신유물론은 포스트휴머니즘의 형이상학이나 존재론이며, 반대로 포스트휴머니즘은 신유물론의 인간학 내지 주체 이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포스트휴머니즘의 인간학을 “교차성 휴머니즘” 또는 “이형-인간주의”라는 말로 포착하려고 했다. (p.108)


4. 신유물론 사중주: 네 명의 신유물론 사상가들 

테마가 있다면 그 테마를 연주하는 연주자들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의 2부 ‘물질-연주자들’에서는 어떤 신유물론 연주자들이 있는지, 그리고 그들이 신유물론의 두 테마를 어떻게 변주하는지를 정리했다. 수십 년 간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말이 이질적인 이론과 사상들을 뭉뚱그림으로써 온갖 혼란과 착각, 오해를 고질적으로 양산해왔는데, 현재의 다양한 사상적 조류들을 ‘신유물론’이라고 싸잡아 이르는 것도 비슷한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 객체지향존재론의 창시자 그레이엄 하먼이 ‘비유물론’을 천명하면서 신유물론에 대해 분명하게 선을 긋고 있고, 사변적 유물론의 퀑탱 메이야수가 대표적인 신유물론 이론가들을 비판적으로 다루는 상황에서 신유물론은 더욱 그러하다. 이런 문제의식 하에 이 책에서는 네 명의 사상가, 마누엘 데란다, 제인 베넷, 로지 브라이도티, 캐런 바라드를 선택하여 그들의 신유물론을 소개하고, 이들에게서 새로운 물질성과 횡단성이라는 테마가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보고자 했다. 거칠게 요약하면, 새로운 물질성은 데란다에게서는 비선형 인과성으로 드러나는 물질의 잠재성으로, 베넷과 브라이도티에게서는 비유기적 생명 또는 생기적 물질성으로, 바라드에게서는 수행성으로서의 물질로 드러나고 있다. 횡단성은 데란다에게서는 자연과 사회를 가로지르는 디아그람으로, 베넷에게서는 추상기계로, 브라이도티에게서는 동물-되기, 지구-되기, 기계-되기 등 각종 포스트휴먼 되기들로, 바라드에게서는 물질-담론적 내부작용으로 나타난다. 같은 테마가 연주자의 개성에 따라 창조적으로 변주되는 것을 보는 것이야 말로 잼 세션의 매력일 것이다. 이 책의 2부는 독자들이 그와 같은 매력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며 쓴 신유물론 사중주다. 

신유물론은 단지 또 다른 지적 유행이 아니며, 그래서도 안 된다. 이미 신유물론에 영감을 받은 수많은 퍼포먼스와 예술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국외는 물론 국내 사회과학에서도 신유물론에 기반을 둔 시의적절한 현장 연구들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신유물론이 그저 좁은 인문학 학술장 내부에서만 통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한 현재의 원자력 문제, 인공지능의 폭발적 성장, 팬데믹, 기후위기 등을 진지하게 고려한다면, 물질의 행위성과 역량이 단지 이론적인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적 개입을 요하는 중대한 사안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물질은 스스로 힘써 행하는 만큼 위험하고 불온하다. 물질이 인간의 예측과 통제를 끝없이 받아들이기만 하는 수동적이고 무력한 존재라면, 인간은 왜 팬데믹과 기후위기에 그토록 쩔쩔매면서 좌절하고 있는 것일까. 이 모든 물질적 위험들은 도대체 어찌 된 일일까. 신유물론은 이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물질의 양상과 분포에 대한 지도를 그리는 작업이고, 『신유물론 입문』은 그 지도 읽기를 돕기 위한 ‘지도 해설 가이드’다. 가이드를 통해 감을 잡은 독자들은 국내에 번역된 신유물론 관련 책들을 꼭 직접 읽어 보길 바란다. 독자들이 신유물론의 스타일을 파악한다면, 어쩌면 ‘재에서 재로, 먼지에서 먼지로’라는 말이 이전과는 다르게 들릴지도 모를 일이다.


문규민 중앙대·철학

중앙대학교 인문콘텐츠연구소 HK 연구교수. 경희대학교에서 동양철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인도불교학으로 석사 학위를,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 의식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학교와 서울시립대학교 등에서 강의하고 연구했다. 주로 분석철학 계통의 형이상학, 심리철학, 인식론의 주요 문제들을 연구한다. 전문 분야는 의식의 과학과 형이상학이다. 베이즈 뇌(Bayesian Brain)를 연구하면서 <나를 바로 보는 뇌과학> 강의 시리즈를 진행하고 있으며, 관련 북클럽인 클럽 갈라파고스를 운영 중이다. 최근에는 현대 인류학과 존재론의 새로운 흐름들, 임상심리학 등으로 연구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 제대로 된 문제라면 반드시 답이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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