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과 빈곤·기아: 식량 문제와 생물종 다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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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과 빈곤·기아: 식량 문제와 생물종 다양성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2.11.26 1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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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연단 〈자유와 이성〉 제28강_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의 「불평등과 빈곤·기아: 식량 문제와 생물종 다양성」


네이버문화재단의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아홉 번째 시리즈 ‘자유와 이성’ 강연이 매주 토요일 서울의 네이버 스퀘어 종로에서 진행되고 있다. 자유는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자기실현의 원리라고 할 수 있으며, 그간 인류가 걸어온 길은 자유 실현을 위한 투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합리성의 증대는 자유의 신장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여섯 섹션 총 44강으로 구성된 이번 시리즈는 고전 시대로부터 근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자유 담론을 검토함으로써, 자유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확장하고 미래 사회를 위한 새로운 비전을 열어보고자 한다. 자유의 이념과 지향에 관한 동서양의 지적 자산을 통시적으로 고찰하는 네 번째 섹션 ‘생존의 자유와 지구적 위기’ 제28강 이덕환 명예교수(서강대 화학과)의 강연을 발췌 소개한다.

정리   고현석 기자
사진·자료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불평등과 빈곤·기아: 식량 문제와 생물종 다양성


이덕환 교수는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의 총회 연설을 빌려 ‘식량 격차(food divide)’가 “오늘날 세계 평화(peace)와 안보(security)를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요인”이며, 그에 따라 유엔이 추구하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의 “첫 두 과제가 빈곤(poverty)과 굶주림(hunger)의 퇴치”가 되는 처지에 이르렀음을 지적한다. 관련하여 구체적 상황 인식을 위해 ‘인구 증가와 반복되는 굶주림’의 역사를 되짚어보고 ‘식량의 새로운 사회적 가치’에 주목하며 한국 사회의 ‘식량 안보’ 문제를 돌아본다. 이어서 인류는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소재를 확보해서,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변환, 가공, 활용하고, 최종적으로 자연으로 되돌려 환원시키는 모든 과정”에 대해 반드시 “적지 않은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합리적인 식량의 생산, 유통, 소비”를 강조한다. 끝으로 식량 산업의 미래와 생물종 감소 문제, 그리고 불평등과 빈곤 해소 문제를 살피면서 “과도한 증식으로 참혹한 공멸의 운명을 맞이하는 부영양화(富營養化)의 길을 회피할 수 있는 제도를 갖춘 사회”의 구축과 함께 “자연과 인간에 대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자연을 최대한 효율적이고 지혜롭게 활용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우리의 능력”을 다시 한 번 신뢰할 것을 이야기한다. 

 

지난 11월 05일, 이덕환 교수가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자유와 이성>의 28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사진제공=네이버문화재단

“세계가 심각한 곤경에 빠져들고 있다. 격차가 심각해지고, 불평등이 악화되고 있다. ... 올해의 식량 사정은 넉넉하지만, 분배에 문제가 있다. 당장 비료 시장을 안정화시키지 못하면, 내년에는 심각한 식량 부족을 걱정하게 될 것이다.” - 안토니우 구테흐스 사무총장

식량 생산에 따른 부작용도 심각해지고 있다. 식량의 생산과 소비가 지구촌의 기후 환경과 생물종 다양성에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다. 인간과 지구 환경과 생태계 모두를 지켜줄 수 있는 혁명적인 기술 혁신이 요구되고 있다. 그러나 식량의 합리적이고 공정한 분배와 소비를 위한 노력이 훨씬 더 절박한 상황이다.

1. 세계 평화와 안보를 위협하는 식량 문제

안토니오 구테흐스 UN 사무총장이 총회 연설에서 지적했듯이 ‘식량 격차(food divide)’는 오늘날 세계 평화(peace)와 안보(security)를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요인이다. UN이 추구하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의 첫 두 과제가 빈곤(poverty)과 굶주림(hunger)의 퇴치이다. 

1) 풍요 속의 빈곤

전 세계의 식량 생산량이 20세기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누구나 안정적으로 충분한 양의 식량을 소비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니다. 식량 사정은 국가와 계층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식량의 생산은 농지와 인력을 갖추고, 기후와 환경이 좋은 일부 지역에 극도로 편중되어 있다. 

애써 생산한 식량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낭비도 심각하다. 저개발 국가에서 식품을 신선하게 저장하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기반 시설이나 지식이 부족해서 생기는 일이다. 식량 유통 시스템의 비효율성도 식량 낭비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잘못된 식습관에 의한 영양 불균형으로 비만, 당뇨, 심혈관계 질환을 걱정하는 소비자도 늘어나고 있다.

식량 문제의 미래 전망이 밝은 것도 아니다. 산업화와 도시화 때문에 식량 생산에 필요한 농경지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식량 생산에 필요한 노동력을 확보하는 일도 어려워지고 있다. 나날이 심각해지는 기후 위기와 환경 파괴, 그리고 생물종 다양성의 감소도 미래의 식량 생산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2) 인구 증가와 반복되는 굶주림

오늘날 지구촌의 인구는 80억 명을 넘고, 평균 수명은 72.6세이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지구상 인구가 폭발하기 시작했다. 1918년의 인구는 16억 명이었고, 평균 수명은 34.1세였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지구상 인구가 5배나 늘었고, 평균 수명은 2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① 반복되던 기근의 역사

인류의 역사는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재앙적인 기근(饑饉)의 아픈 기억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식량을 안정적으로 생산하는 일도 어려웠고, 생산한 식량을 적절하게 분배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식량의 생산에 필요한 넓은 토지와 많은 노동력을 확보하는 일부터 만만치 않았다. 가뭄이나 폭우와 같은 궂은 날씨나 병충해에 의한 흉작(凶作)도 잦았고,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인 사회 제도가 기근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단순히 인구 증가에 따라 식량 수요 폭증을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② 21세기의 굶주림

식량 생산량이 크게 늘어난 지금도 굶주림의 문제는 여전하다. 과거의 굶주림과 기아는 식량 생산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20세기 말에는 전 세계 식량 생산량 증가율이 인구 증가율을 넘어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 수입이 2달러를 넘지 않는 소비자들은 남아도는 식량을 구입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21세기의 굶주림은 단순히 식량 생산 기술의 혁신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새로운 문제이다. 불평등과 가난이 굶주림을 악화시키는 직접적 요인이다. 세계 경제의 침체에 의한 굶주림이 세계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3) 식량의 새로운 사회적 가치

현대의 과학기술 시대에는 식량 생산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했다. 식량이 단순한 생존의 수단이라는 인식을 넘어서게 된 것이다. 이제 식량은 누구나 건강하고, 자유롭고, 평등하고, 민주적인 삶을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실현시켜주는 수단으로 자리를 잡았다. 

자유와 평등이 단순히 사회적, 제도적 혁신만으로 실현되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해주는 물질적 풍요가 반드시 필요하다. 현대 민주주의가 고도의 과학기술 역량을 갖춘 선진국의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생존에 필요한 물질적 풍요가 보장되지 않은 저개발 국가에서 자유와 평등은 여전히 분에 넘치는 사치로 남아 있는 것이 현실이다.

 

2. 합리적인 식량의 생산, 유통, 소비

1) 거칠고 위험한 자연으로부터의 자립

자연이 우리에게 안전하고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해줄 것이라는 기대는 순진한 착각이다. 우리의 생존에 필요한 식량은 모두 식물, 동물, 미생물에서 유래된다. 살아 있는 생물을 희생시켜야만 우리가 식량을 생산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약육강식(弱肉强食)과 적자생존(適者生存)이 지배하는 생태계에서 우리에게 안전하고 건강한 식량을 생산하는 일이 절대 쉬울 수가 없다. 동물과 식물도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진화하기 때문이다. 결국 인류는 생존을 위해 필요한 식량을 스스로 생산하여 자연 생태계로부터 자립하기 위한 농경목축의 기술을 확보함으로써 화려한 문명 생활을 하게 되었다.

2) 화학비료에 대한 인식

오늘날 우리가 100억 명이 소비할 수 있는 식량을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은 화학비료와 농약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화학 농업’ 기술 덕분이다. 그런데 현대 화학 농업의 핵심인 화학비료를 환경과 우리 건강에 해로운 것이라는 위험한 인식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화학비료는 인공적으로 생산된 것이므로 물을 더럽히고 흙을 산성화시킨다’는 것이다. 

현대인은 ‘보건 위생’을 핑계로 자연에서 일어나는 질소 화합물의 재활용을 차단시키고 있다. 수세식 화장실이 그 주범이다. 인공적으로 합성한 질소 화학비료는 수세식 화장실에 의한 생태계 파괴를 되돌릴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화학비료야말로 우리 스스로 저지른 생태계 파괴를 우리 스스로 책임지고 바로잡는 길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 사실을 외면한 채 무작정 화학비료를 거부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환경 보호와 거리가 멀다. 

3) 가공식품에 대한 인식

식품은 자연 상태에서 쉽게 부패하고, 변질되는 고약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식품의 가공은 어렵게 생산한 식품의 활용 가치를 개선하고, 소비자의 취향을 만족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그러나 가공식품이 오히려 소비자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가공식품에 사용되는 양념인 ‘식품첨가물’에 대한 소비자의 불신도 심각하다. 식품첨가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가공식품이나 음식점의 음식에 대한 거부감으로 확대되기도 한다. 오늘날 가공식품은 선택의 대상이 아니다. 가공식품을 완전히 외면한 삶은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식품의 가공을 단순히 소비자를 현혹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여길 수는 없다. 

 

3. 식량 산업의 미래와 생물종 다양성

1) 식량 증산을 위한 첨단 육종과 스마트팜

식량 증산을 위한 현실적인 방법은 단위 면적당 식량 생산량을 향상시키는 일이다. 잡종교배와 인공선택에 의존해서 유전자를 변형시키는 전통적인 육종도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 전통적인 육종은 작물이나 가축의 외형적 특성을 개선하는 데에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자연에서 드물게 나타나는 유전적 특징을 가진 품종을 만들기 위해서는 더욱 적극적인 유전공학적 기술을 동원해야 한다. 현재의 기술 수준에서는 박테리아 파지(phase)가 가지고 있는 제한효소를 활용해서 원하는 유전자 부위를 삽입시키는 유전자 재조합이 가장 가능성이 높다. 

20세기에 등장한 정보통신 기술(ICT)과의 융합도 외면할 수 없다. 특히 식량 생산에서 소비에 이르는 전 과정에 인공지능(AI)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스마트팜’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ICT를 이용한 원격ㆍ자동화 기술로 작물과 가축의 생육 환경을 관리하는 것인데, 광범위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식량 생산의 지능화와 자동화를 추구하는 것이 핵심이다. 

2) 생물종 다양성 감소

지구촌의 인구가 빠르게 늘어나면서 야생 생태계가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지구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섯 번째 대량 멸종은 인간에 의한 것으로 비가역적인 ‘인류세 멸종(Anthropocene extinctio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생물종 다양성 감소를 중단시키는 노력도 UN이 추구하는 지속가능발전목표 중 하나이다. 

우리의 생존을 위한 식량 생산은 필연적으로 자연 생태계의 생물종 다양성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식량의 상업적 생산에서는 소비자의 선택을 무시할 수 없다. 결국 소비자의 선택을 통해서 식량 생산에 활용되는 농작물, 가축, 양식 어종의 품종이 제한될 수밖에 없게 된다는 뜻이다. 특히 식량 수요 증가에 따라 경작과 목축의 면적이 늘어나면서 상황은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다.

 

4. 불평등과 빈곤의 해소

불평등과 빈곤의 완벽한 퇴치는 비현실적일 정도로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자연 생태계로부터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일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 식량 생산에 활용하는 농작물, 가축, 어패류의 품질을 개량하기 위한 유전자 변형 기술과 정보통신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밖에 없다. 식량의 저장, 유통, 소비 과정에서의 낭비를 줄이고, 식품을 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의 개발도 절박하다.

식량 생산에 심각한 영향을 주는 기후 변화, 환경 변화, 생물종 다양성 감소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나날이 심각해지는 극한 기상 현상에 충분한 내성을 가진 품종이 필요하고, 빠르게 진행되는 기후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신품종도 개발해야 한다.

우리가 소비하는 식량에 대한 인식의 변화도 필요하다. 육식이 채식보다 더 낭비적이고, 반(反)환경적이라는 주장은 확실한 근거를 찾기 어려운 것이다. 또한 식품을 반드시 자연 생태계에서 살아 움직이는 생물에서 생산해야 한다는 전통적 인식을 포기할 준비도 필요하다. 어쩔 수 없이 비(非)생물 유래 대체 식량을 소비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편 식량의 생산, 유통, 소비를 합리적으로 관리하는 전 지구적인 제도가 필요하다. 국제 사회에서는 식량의 무기화를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 국가 차원에서의 합리적인 식량 정책도 중요하다. 

궁극적으로는 지구상의 인구를 합리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사회의 팽창을 전제로 하는 사회ㆍ경제적 제도만으로는 인류의 안정적인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과도한 증식으로 참혹한 공멸(共滅)의 운명을 맞이하는 부영양화(富營養化)의 길을 회피할 수 있는 제도를 갖춘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자연과 인간에 대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자연을 최대한 효율적이고 지혜롭게 활용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우리의 능력을 믿을 수밖에 없다.


☞ 강연 바로보기: [열린연단]_ 불평등과 빈곤·기아: 식량 문제와 생물종 다양성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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