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후반의 미국 미술…다양한 ‘문화적 차이’와 ‘타자들의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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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후반의 미국 미술…다양한 ‘문화적 차이’와 ‘타자들의 미술’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11.22 04: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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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 후반 미국 미술사 다시 읽기: ‘타자’로의 초대 | 김진아 지음 | 지식과감성# | 448쪽

 

20세기는 ‘미국 미술의 세기’라 불릴 정도로 미국 미술의 영향력과 위상이 드높았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뉴욕이 세계적인 미술 경향과 시장을 견인해 나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은 이러한 화려했던 미국 미술의 이면에 놓여 있는 타자 미술가들의 이야기이다. 

이때 타자란 구체적으로 흑인, 치카노, 라티노, 여성, 성소수자(LGBT), 아시아계 미국인 등의 소위 사회적 소수자를 가리킨다. 저자는 소수자들과 연계된 ‘타자’라는 용어가 문화적 정체성을 하나의 공동체로 일반화시키는 오해를 불러올 수 있음을 지적하면서, 이를 사용하는 것은 실제 ‘나’와 ‘너’를 분리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둘을 구별 지었던 역사를 일컫기 위함이라 밝힌다.

이 책은 세계를 제패한 1950년대 전후의 추상표현주의가 어떻게 타자 미술가들을 그늘에 머무르게 했는가에서 시작해서, 이들이 장차 미국의 문화적 정체성에 대해 어떠한 질문과 도전장을 던져 나갔는지, 그리고 마침내 이들이 주류 미술계에서 어떻게 부상했는지 추적해 나간다.

구체적으로 저자는 ‘타자’ 문화와 미술가들을 소외시켰던 추상표현주의 담론에서부터 시작하여, 추상과 흑인 미학 사이에서 고민했던 흑인 미술가들, 그리고 민권운동과 함께 등장했던 흑인 벽화 〈존경의 벽〉과 치카노 벽화 운동, 페미니즘 미술 운동과 『우먼하우스』전 등을 다룬다. 이후 1980년대에는 여러 여성 미술가들과 ‘라틴 아메리카/라티노’ 전시회들이 화려하게 등장하는 현상, 그리고 에이즈와 동성애, 미국중심주의 등의 쟁점을 둘러싼 미술계 문화전쟁으로 이어진다. 1990년대에는 다문화주의의 도래를 알렸던 『1980년대 결산 The Decade Show』전과 휘트니 비엔날레 역사상 가장 문제적인 전환점으로 기억되는 『1993년 휘트니 비엔날레』, 그리고 그 후의 휘트니 비엔날레의 추이(1995~2000)와 아시아계 미국 미술의 출현과 전시회들을 살펴본다.

이처럼 저자는 ‘미국의 세기’였던 20세기 후반의 미국 미술을 새로운 시각과 내용으로 엮어 내며, 자칫 소개로 끝날 수 있는 방대한 양의 작가, 작품, 전시, 운동 등을 이야기하면서도, 몇몇 사례를 중심으로 다양한 각도에서 심도 있게 논의하고 있어, 학문적인 스펙트럼과 깊이를 더하였다. 

저자는 미술 사례들을 하나의 연속적인 거대 서사, 즉 ‘역사(History)’로 엮어 내려 하지 않고 타자들이 서서히 부상해 온 각각의 스토리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깊이 있게 들여다본다. 나아가 개인 작품, 집단별 작업 또는 전시회의 의의를 밝혀 가면서도, 그 속에서 발생하는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관점 차이와 충돌의 국면도 들여다본다. 그럼으로써 이들을 종종 동질화된 현상이나 하나의 공동체로 이해하려는 통념에 도전하며, 때로는 뜻밖의 균열과 모순, 혼란까지 아우르는 비평적인 시선을 투사한다.

특히 성실한 역사적 추적뿐 아니라 강하게 드러나 있지 않으면서도 저변에 배어 있는 비평적인 시선이 주목할 만하며, 저자의 말대로, “우리 앞에 펼쳐진 미술, 나아가서 사회 현상을 어떠한 고정관념이나 관습적인 기준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맥락과 디테일을 자세히 살펴보며 뜻밖의 균열과 모순, 혼란까지 아우르면서 타자와 조우하는 계기”를 선사하고 있다. 이 책은 전시회, 미술가의 입장, 비평과 담론, 미술시장, 시대적·문화적 배경 등 사회적 맥락에 주목하면서도, 작품의 형식과 내용이 제기하는 쟁점에도 소홀하지 않는다. 형식주의적 입장과 사회학적인 입장 그 어느 한쪽에 닻을 내리지 않으며 끊임없이 경계를 넘나드는 방식에서, 연구자의 섬세하면서도 예리한 감각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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