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 21세기로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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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21세기로 오다!
  • 이현우 한양대학교·커뮤니케이션학
  • 승인 2022.11.20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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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말하다_ 『설득의 쓸모: 아리스토텔레스부터 현대 과학에 이르기까지』 (이현우 지음, 더난출판사, 256쪽, 2022.10)
    

아리스토텔레스를 빼고 설득을 이야기할 수 없다. 새로 개업하는 집에 가면 ‘시작은 미미하나 끝은 창대하리라’라는 성경 구절이 담긴 액자를 종종 보게 된다. 하지만 ‘설득’이라는 학문의 시작은 절대 미미하지 않았다(수사학의 현대식 이름이 바로 설득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금부터 무려 2300년도 전에 고대 그리스에서 활동했던 사람이지만 ‘수사학’이라는 책에 담긴 그의 가르침은 현대 과학에 비춰 봐도 전혀 미미하지 않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뭔가를 주장하는 것은 설득이 아니라고 단언하고 있다. 누구나 자기가 옳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설득이 되기 위해서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proof)가 있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주장을 근거를 통해 증명할 때 비로소 설득에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수사학의 목적은 그러한 근거를 가진 설득 수단을 찾는 데 있다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수사학의 목적이라고 말한 설득 수단의 3가지, 즉 에토스, 로고스, 파토스가 바로 필자가 집필한 『설득의 쓸모』의 핵심 내용이다. 이 3가지 설득 수단이 현대 과학자들의 연구로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를 세세히 밝히는 것이 이 책의 집필 목적이다. 『수사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간헐적으로 3가지 설득 방법의 상대적 우위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만, 실제 설득 상황에서 어떤 순서로 사용해야 하는지는 전혀 언급한 바가 없다. 필자는 기존의 설득 연구를 바탕으로 에토스, 로고스, 파토스의 순서로 사용될 때 설득의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여 그 순서대로  『설득의 쓸모』를 구성했다.

필자가 번역해서 국내에 소개한 『설득의 심리학(Influece)』의 저자 치알디니 교수는 최근 저서 『초전 설득(Pre-Suasion)』에서 설득 전 단계의 전략적 준비가 설득의 성공 여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화자(話者)의 에토스 역시 설득 상황이 벌어지기 전에 갖추어야 할 설득의 요소에 해당한다. 『손자병법』에서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것이 가장 훌륭한 전략이라고 말한 것처럼 에토스는 굳이 설득하지 않아도 설득에 성공하는 능력이다.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필요한 작업은 상대방이 화자를 인정하게 만드는 것이다. 메시지가 아무리 훌륭해도 말하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으면 설득에 성공하지 못한다. 에토스는 굳게 닫힌 상대방의 마음을 활짝 열어서 설득하려는 사람의 메시지를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준비 작업이 끝났으면 이제 본 게임으로 들어가야 한다. 2022년 월드컵을 위해 영입된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벤투 감독은 ‘빌드업 축구’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빌드업은 상대방의 압박과 수비를 뚫고 나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골키퍼가 상대 진영을 향해 ‘뻥차기’를 하는 대신 골키퍼부터 시작해서 수비수, 중앙 미드필더, 공격수까지 점차적으로 상대방의 골문을 향해 올라가는 모든 전개를 뜻한다. 설득 역시 빌드업 과정이 필요하다. 로고스는 빌드업에 최적의 역할을 맡고 있다. 

파토스는 설득을 완성하는 마지막 단계다. 다시 한 번 축구에 비유해서 설명해보자. 축구에서는 골을 넣는 것이 최종 목표다. 상대방의 장단점에 맞춰 적절하게 대응하는 빌드업 과정이 아무리 훌륭해도 골을 넣지 못하면 승리할 수 없다. 손흥민 선수처럼 뛰어난 골잡이가 없으면 경기에서 이기기 힘들다. 설득의 궁극적인 목표는 상대방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현대 과학에 의하면 상대방을 행동하게 만드는 힘은 감정이다. 하지만 모든 감정이 행동을 유발하는 ‘골잡이’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설득 커뮤니케이션 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어떠한 감정이 인간의 행동을 유발하는가에 대해 많은 학문적 성과를 쌓아 놓고 있다.  

오랫동안 설득은 일종의 예술 영역이었다. 현대 미술품처럼 이해하기도 힘들고, 따라 하기도 쉽지 않은 영역이었다. 그런데 과학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지난 60여 년 동안 설득 커뮤니케이션 학자들은 다양한 이론으로 설득이 발생하는 과정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이 모든 과정의 출발점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서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덕분에 우리는 설득을 과학으로 이해하는 관점을 갖게 되었다. 현대 과학은 설득의 쓸모를 엄청나게 확장시켰다. 계속해서 에토스, 로고스, 파토스에 관해 보다 자세하게 설명해보도록 하자.


에토스

배우 전지현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새벽 배송 서비스를 최초로 시작한 ‘마켓 컬리’라는 스타트업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대부분의 신생 회사처럼 마켓 컬리 역시 인지도 부족이라는 고민을 안고 있었다. 그런데 배우 전지현이 마켓 컬리의 광고 모델이 되고 나서부터 마켓 컬리는 새로운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주문이 폭주하여 고객의 수요를 어떻게 따라잡느냐 하는 것이었다. 매출은 창업 5년 만에 54배로 늘어났다. 마케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이런 현상을 ‘전지현 효과’라고 부른다. 설득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을 ‘에토스 효과’라고 부른다. 미국의 금융 서비스 회사인 E. F. 허튼(Hutton)의 광고 카피는 “When Hutton talks, people listen(허튼이 말하면, 사람이 듣는다)”이다. 배우 전지현이 말하면 사람들이 듣는 이유는 왜일까?

에토스(ethos)는 본래 ‘성격’이나 ‘관습’ 등을 의미하는 고대 그리스어였다. 수사학에서 에토스는 화자의 고유한 성품을 뜻한다. 위키피디아는 에토스가 화자의 체형, 자세, 옷차림, 목소리, 단어 선택, 시선, 성실, 신뢰, 카리스마 등 많은 것을 포함하고 있는 단어라고 정의하고 있다. 에토스는 현대 과학에 의해 공신력(source credibility)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된다.

뿐만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의 에토스 개념은 현대 과학에 의해 훨씬 광범위하게 확장되었다. 현대 과학은 화자에 대한 호감도 역시 에토스의 범주에 포함하고 있다. 미국의 레이건 전 대통령의 선거 캠페인 참모를 역임했던 로저 에일리스(Roger Ailes)는 “개인의 설득력을 높이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상대방에게 호감을 얻는 능력에 있다”라고 말했다. 화자의 권위는 에토스의 세 번째 범주에 속한다. 화자의 권위는 화자의 공신력이나 호감도와 상관없이 화자가 담당하는 사회적 역할과 기능에 의해 만들어진다. 정리하면, 21세기의 에토스는 세 마리의 말이 끄는 삼두마차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로고스

아리스토텔레스는 로고스를 ‘논리적인 추론(reasoned inference)’이라 정의했다. 수사학에서는 절대적인 논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수사학에서 설득은 본질적으로 ‘상대적인’ 개념이다. 설득력이 있다는 것은 특정의 ‘누군가에게’ 논리적이고 설득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사학에서 로고스의 영향력은 청중과의 상호작용에서 결정된다. 나에게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주장이어도 상대방이 그렇게 동의하지 않으면 나의 주장은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인 주장으로 인식될 수 있다. 내가 논리적으로 상대방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상대방이 합리적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가 전달하는 메시지가 그들에게 합리적으로 인식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라디오에서 흔히 듣던 60계 치킨의 CM송 가사를 예로 들어 설명해보자.

  매일 새기름
  60마리만
  60계 치킨

이 광고에서 주장하는 논리적 추론은 무엇일까? 매일 새 기름으로 60마리만 튀기니 자사의 닭은 매우 위생적이라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 광고를 듣는 사람이 하루에 60마리만 튀기는 깨끗한 닭이라는 논리적 추론을 받아들이고 60계 치킨을 주문했다면 로고스를 통해 설득에 성공한 것이다. 이 광고가 모든 사람을 설득하지는 못한다는 점에서 로고스는 상대적이고, 이 광고 카피처럼 60마리만 튀기는 기름은 깨끗하다는 주장이 ‘사실’ 여부와 상관없다는 점에서 로고스는 추론적이다. 바른 치킨은 전용유 1통으로 딱 58마리까지만 튀긴다고 광고하고 있다. 60계 치킨보다 두 마리 적다. 


파토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파토스는 쾌락이나 고통이 따르는 모든 상태를 일컫는데 그러한 결과는 분명 감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수사학에서 특히 감정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의 판단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슬플 때와 기쁠 때, 우호적일 때와 적대적일 때 우리가 내리는 판단이 똑같지 않다”고 말했다. 따라서 청중이 어떤 감정 상태에 있느냐는 화자가 고려해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이다. 청중의 감정 상태가 본인의 설득 목적에 적합하지 않다면 담론을 통해 그들의 감정 상태를 변화시켜야 한다. 감정의 변화가 판단의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설득 커뮤니케이션 학자들은 지금까지 어떤 감정을 연구해왔을까? 감정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인간에게 보편적인 기본 감정이 있다고 주장해왔다. 아리스토텔레스도 2000여 년 전에 인간의 기본 감정으로 분노, 공포, 수치심, 혐오, 시기심, 행복 등을 언급했다.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대부터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 유형을 분류하거나 감정의 차원 구조를 밝히는 연구들이 시작되었다. 연구결과 보고에 의하면 한국인들은 기쁨, 긍지, 사랑, 공포, 분노, 연민, 수치, 좌절, 슬픔 등 9개의 보편적 기본 감정을 지녔다고 한다. 기본 감정의 연구에서 확연히 드러난 한 가지 사실은 긍정적인 감정보다 부정적인 감정이 더 많다는 점이다. 당연히 기존의 설득 커뮤니케이션 연구도 주로 부정적 감정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긍정적 감정에 대한 연구 성과는 최근 들어 활발하게 성장하고 있다. 

설득이라는 단어는 그 안에 엄청난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말씀 ‘설(設)’과 얻을 ‘득(得)’이라는 이름은 세상살이에 대한 인류의 지혜를 담고 있다. 자신이 원하는 무엇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말씀의 힘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말씀이 사람을 움직이고, 말씀이 세상을 움직인다는 사실을 고대 그리스인들은 명확히 깨닫고 있었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변호사’라는 직업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토지 소유권을 증명하는 것처럼 자신의 이해관계와 관련한 다툼이 벌어졌을 때 그리스 시민은 법정에서 스스로 자신의 입장을 변호해야 했다. 그러므로 당시에는 말로 사람을 설득하는 ‘수사적인 능력’이 그리스 시민이라면 누구나 갖추어야 할 핵심 덕목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수사학』에서 “자신의 육체를 스스로 방어할 수 없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한다면, 말로 자신을 보호할 수 없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역시 불합리한 일이다”라고 쓰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설득하는 능력은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핵심 덕목이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친해져야 21세기를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이현우 한양대학교·커뮤니케이션학

한양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 미국 미시간주립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웨이크포레스트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를 지냈다. 한양대 언론정보대 학장, 언론정보 대학원장 등의 보직을 맡았으며, 한국광고홍보학회장, 한국PR학회장을 역임했다. 설득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서 갈등, 협상, 설득 그리고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등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인에게 가장 잘 통하는 설득전략 24』,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설득심리』, 『오메가 설득 이론』, 『광고와 언어』, 『거절당하지 않는 힘』 등 다수가 있으며, 『설득의 심리학』, 『체인징 마인드』, 『한 마디 사과가 백 마디 설득을 이긴다』 등의 책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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