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스라엘의 보통 사람들은 진짜 어떻게 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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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스라엘의 보통 사람들은 진짜 어떻게 살았을까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11.08 0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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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 윌리엄 G. 데버 지음 | 양지웅 옮김 | 삼인 | 587쪽

 

이 책은 유물과 유적의 발굴을 통해 고대 이스라엘의 전반적인 사회체계와 생활상을 재구성해낸다. 특히 고대 이스라엘 사회 구성원의 대다수이며 그 사회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었던 서민이 살아가는 모습을 재구성해서 보여주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책의 원제는 『고대 이스라엘의 보통 사람들의 삶: 고고학과 성서가 교차하는 지점The Lives of Ordinary People in Ancient Israel: Where Archaeology and the Bible Intersect』으로, 저자는 시기를 특별히 기원전 8세기에 한정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 시기에 고대 이스라엘이 북이스라엘 왕국과 남유다 왕국으로 크게 번성했으며, 당시의 유물과 유적이 충분히 발굴되어 그 시대상을 규명하기에 용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세계적인 제국인 아시리아의 침략으로 더 이상 이스라엘 왕국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중동 지역의 고고학은 초기에는 성서의 내용을 증명하는 증거를 찾기 위한 것으로 성서주의 학자들이 주도했다. 이후에는 그에 대한 반동으로, 성서와 고고학적인 유물과 유적이 불일치하는 것을 문제 삼아 ‘이스라엘은 발명되었고 성서는 후대의 문학적인 창작물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수정주의 학자들이 등장한다. 저자는 이들이 이데올로기가 학문적인 진실을 압도하고 있거나 고고학의 방법론적 오류에 빠져있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성서를 무조건적인 진리로 받들거나 허무맹랑한 창작물로 무시하지 않고, 다른 기록 유물처럼 검증을 통해 받아들이되 유적과 유물이 우선이고 기본이라고 주장한다.

성서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에서 바다를 건너 탈출하여 사막에서 40년간 머물다가 여리고를 비롯한 가나안의 도시를 점령하면서 정착했다고 나온다. 그러나 저자는 이스라엘인들이 바다를 건너 탈출한 것도, 사막에서 머문 것도, 가나안의 도시들을 정복한 것도 고고학적인 근거를 찾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그들은 청동기 말의 혼란한 시기에 이스라엘의 중앙산지로 올라가 정착한 가나안 사람들이었다고 본다. 그 근거는 가나안과 같은 주거 형태와 도자기가 그 터에서 지속적으로 발굴되기 때문이다. 다만 이후에 이집트에서 건너온 소수의 이야기가 그들 공동체에서 퍼지고 건국신화처럼 받아들여지면서 가나안과는 구분되는 자신들만의 독특한 정체성을 갖게 된 것이라 추정한다.

저자는 이스라엘의 전반적인 사회구조와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여러 유적에서 왕궁과 행정기관, 성곽과 마을의 구조, 도시와 촌락의 관계를 재구성해서 제시한다. 왕궁에서는 사치스럽고 화려한 수입품과 귀금속, 상아와 같은 장식이 발견되고, 행정기관에서는 세금 영수증인 도편 조각이 출토되고, 외적에 대비한 성곽이 마을을 감싸며, 4방 구조인 이스라엘의 전형적인 가옥에서는 화로와 외양간, 도자기와 신상 등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성서에서는 지배계급을 비판하는 와중에 그 생활상을 드러내고 있지만 정작 민중의 일상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는 찾기 힘들다. 부자들에게는 가난한 이들의 맷돌이나 외투를 담보로 잡지 말고, 품삯을 당일에 내주며, 추수할 때 이들을 위해 곡식을 좀 남겨둘 것을 당부하는 것으로 미루어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절박한 형편에 놓인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대다수인 서민들은 이스라엘의 전형적인 가옥인 4방 구조의 집에서 살았으며, 남자들은 대개 농부로 계단식(테라스) 농업으로 밀과 포도, 올리브 등을 경작하고 들판에서는 목축을 했다.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 속하지만 몹시 건조한 지역이어서 수시로 극심한 가뭄에 시달렸다. 여자들은 식사를 준비하고 실을 자아 옷감을 짜고 도자기를 빚기도 했다. 여성들은 가정에서 제의의 중심에 있었으며 풍요와 다산을 관장하는 아세라는 주된 숭배의 대상이었다. 이는 고대사회의 초기 종교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형태이기도 하다. 유적지에서는 수많은 신상이 발굴되고 그 이름이 밝혀졌는데, 엘과 바알, 야훼와 아세라가 짝을 지어 나온다. 성서에서 이스라엘의 신은 사람들이 아세라 상을 세우고 경배하는 것에 몹시 노해서 신상을 찍어내고 불사르라고 명하는 장면이 40군데나 나오는데, 놀랍게도 야훼와 아세라가 부부 신이라고 기록된 항아리가 발견되었다. 이른바 ‘야훼에게 아내가 있었다’는 것이다. 적어도 당시에는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있었던 셈이다.

기원전 8세기에 이스라엘은 번영을 구가했지만 주변 강대국인 아시리아가 위협이 되자 전쟁을 대비해 수로를 팠으며 물자를 항아리에 비축해서 각지에 보내는 구조를 갖추기도 했다. 그러나 대제국인 아시리아의 침략에 성은 속절없이 무너지고 사람들은 죽임을 당하거나 노예로 잡혀갔다. 그 장면은 아시리아 센나케리브의 왕궁에 돋을새김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다가 발굴되었다. 

저자는 유적과 유물을 통해 밝혀낸 역사적 사실을 지속적으로 성서의 내용과 교차하여 제시한다. 성서의 내용과 다르게 유적과 유물로 본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집트에서 사막을 거쳐 와서 가나안을 점령한 것이 아니라 가나안에서 중앙산지로 올라가 정착한 가나안 사람들이었다. 또한 성서 속 이미지와는 다르게 목축보다는 농업이 주를 이룬 산업이었다. 성서에 등장하는 신들의 신상이 발견되었지만 당시 사람들이 믿었던 신들의 모습은 성서와는 사뭇 다른 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여성의 하체를 자세하게 묘사하지 않고 기둥의 모양으로 대략 만들었으며, 상대적으로 여성의 가슴만 부각되는 신상이었다. 이것은 기존의 성서가 말하는 음란 종교가 아닌, 안전한 출산과 건강한 양육을 바라는 어머니의 순전한 신앙으로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이렇게 성서에 언급되었던 유적과 유물이 무수히 발굴되어, 합리적인 해석을 통해서 고대 이스라엘 역사 서술의 빈 구석을 채우기도 한다. 무엇보다 성서에는 거의 언급되지 않은 보통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의 모습이 둔덕(텔)에 층층이 쌓여 있다. 저자는 그들의 집터와 일터, 손때 묻은 유물의 올바른 해석을 통해 악전고투하며 삶을 이어나가는 사회의 다수, 곧 그 시대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되었던 고대 이스라엘의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바람에 대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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