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이라는 “믿음의 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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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라는 “믿음의 벨트”
  • 최유준·전남대 교수/음악평론가
  • 승인 2020.03.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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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유준의 樂談

“‘내 자식도 봉준호처럼’ … 돌잡이에 등장한 오스카 트로피.”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영화제 수상 직후 국내의 반응 가운데 한 가지를 소개하고 있는 뉴스 기사의 제목이다. 돌잡이 용 오스카상 트로피가 완판 매진이라나. 가십성 기사지만 “내 자식도” 운운하는 기사제목에서 한국인의 유별난 자식 사랑을 엿볼 수 있는데, 수년 전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했을 당시에도 비슷한 제목의 신문 기사가 있었다. “대견한 ‘21세 쇼팽’ 내 아들도 저렇게 컸으면….”

영화 <기생충>에서 상징적인 여러 장면과 대사, 소품들까지 치밀하게 분석되고 있지만, 영화 속 음악의 상징성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않는 듯하다. 가령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야외 생일 파티 장면에서 클래식 음악이 연주되는 것은 맥락상 그다지 개연성이 없어 보였다. 폭우 때문에 야외 캠프가 취소되어 실망한 어린 아들을 달래주기 위해 마련한 생일 파티에서 헨델의 오페라 아리아라니. 영화 속 아이의 아빠는 아이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한참 인디언 놀이까지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요컨대 이 영화 속 장면에서 시청각적으로 재현되는 클래식 음악은 사실적이기보다 ‘상징적’이다.

한국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전형적으로 삽입되곤 하는 클래식 연주 장면은, 영화 <기생충>의 인상적인 대사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믿음의 벨트’에 바탕을 둔 영화적 재현이다. 선입견적으로 형성된 허구적 이미지라는 뜻에서인데,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에서 구사한 클래식 장면도 이 점에서는 예외가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봉감독이 최고의 작품으로 손꼽는 김기영 감독의 영화 <하녀>(1960)에서부터 이 ‘믿음의 벨트’가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봉감독 자신이 여러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기생충>에는 <하녀>에 대한 오마주 장면이 여럿 있다. <기생충>의 클래식과 관련된 시청각적 이미지 또한 그 오마주 목록에 추가되어야 할 것이다.

▲ 하녀_1960 스틸컷
▲ 하녀_2010 스틸컷

김기영 감독의 영화 <하녀>에서 주인공 동식이 연주하는 피아노는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신분상승 욕망과 관련한 영화 전체의 서사를 좌우하는 주도적 상징물로 쓰인다. 물론 영화 속 동식이 전형적인 클래식 레퍼토리를 연주하는 것은 아니지만 피아노 방 벽에 걸려 있는 베토벤 두상 등을 통해서 클래식의 장르 기호를 분명히 하고 있다. 임상수 감독의 2010년 리메이크 작 <하녀>를 보면 영화 속 클래식의 상징이 반세기 동안 진화한 결과를 목격할 수 있다. 동식의 21세기적 페르소나인 훈(이정재)은 자신의 대저택에서 더 이상 업라이트가 아닌 그랜드 피아노 앞에 앉아 프로급 실력으로 베토벤의 소나타를 연주하며, 그의 아내와 어린 딸과 함께 자신의 일상에서 초고가 하이엔드 오디오 시스템으로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것이다.

영화 속 클래식의 진화가 상당히 드라마틱한데, 한편으로 궁금해진다. 한국의 경제적 최상류층들의 일상이 과연 저럴까? 그들이 전형적으로 그와 같은 클래식 아비투스를 갖고 있을 거라는 예단, 그 ‘믿음의 벨트’는 과연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1960년의 <하녀> 이전까지 한국 영화에서 클래식이 상류층(혹은 신분상승의 욕망)을 재현하는 상징적 기호로 쓰인 일이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영화 <하녀>가 당시의 어떤 징후적 현실을 담고 있다고 짐작해볼 만하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 대중들에게 모던한 음악, 상류층의 ‘자유’를 상징하는 음악은 오히려 미군부대와 고급 유흥시설에서 흘러나오는 댄스 음악이었고, 이러한 현실은 정비석의 대중 소설을 각색한 영화 <자유부인>(1956)에서 적나라하게 묘사되었다. 1950년대의 문화 상황에 대한 최근의 여러 연구 성과들을 통해 보면, 이 시기에 대학제도를 중심으로 한 지식의 제도화가 이루어지는 동시에 검열 권력을 행사하는 정부 주도의 문화제도권이 형성되었다. 이에 따라 이른바 제도권 문화와 ‘저속한’ 대중문화 사이의 뚜렷한 이분법적 시각이 형성되어 갔다. 1950년대는 한국전쟁의 여파로 국민 전체가 절대빈곤 상태에 빠져 사회 전체의 계급 재구성이 필요한 상황이었고, 대학 제도와 제도권 문화에 진입하여 ‘교양’을 얻는 것이 곧 신분상승을 위한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것을 의미했다.

이 과정에서 ‘제도권 서양예술음악’으로서 ‘클래식’이라 불리게 된 음악은 점차 ‘학력 엘리트’가 보유하고 있다고 전제되는 교양의 상징적 기호로서 자리매김하게 된다. 결국 한국에서 클래식은 듣고 경험하고 창조하는 예술이라기보다 많은 이들에게 계급적 신분상승을 위해 갖추어야 할 교양과 지식의 한 가지로 인식되었다. 클래식은 현실에서조차 음악이 아니라 하나의 상징이었던 셈이다. 1960년대로의 전환기에 김기영의 <하녀>가 예민하게 포착했던 현실의 지점이 여기에 있다

▲ 〈기생충〉의 생일파티 장면
▲ 〈기생충〉의 생일파티 장면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음악감독인 작곡가 정재일에게 ‘클래식 양식’을 노골적으로 주문했다는 사실은 인터뷰 기사 등을 통해 알려져 있다. 그것도 바로크 음악 양식을 특정해서 요청했다고 하는데, 상대적으로 대중화된 고전주의 양식이나 낭만주의 양식에 비해 ‘구별짓기’의 효과가 있을 거란 계산에서였을 것이다. 그리하여 현대성이 가미된 바로크풍 신고전주의 양식의 영화음악이 만들어졌고, 이 음악은 영화 속 기택의 가족이 가정부 문광을 내쫓기 위해 치밀한 협동 작전을 실행하는 인상적인 시퀀스에서 대사 없이 무려 8분 가까이 이어서 연주된다. 영화의 서사, 시각적 이미지들과 대위법적으로 얽혀가는 이 음악의 탁월한 청각적 효과는 <기생충> O.S.T에서 붙인 이 작품의 제목 ‘믿음의 벨트’로 적절히 수식될 만하다.

한국사회에서 클래식을 둘러싼 취향의 정치는 음악대학 설립이 포화상태에 이르던 1980년대 말에 정점을 찍은 이후로 조금씩 약화되어 왔다. 재즈와 대중음악(실용음악)의 대학 제도권 진입과 함께 1990년대에는 일시적이나마 ‘차인표 색소폰’의 고급화된 재즈 이미지가 상류층 재현의 기능을 대신할 조짐까지 엿보였다. 이러한 재즈의 이미지 역시 클래식의 이미지와 마찬가지로 실제의 음악적 경험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갖지 못한다는 점은 새삼 재론할 필요가 없다. 한국의 경제적 최상류층이 자신의 일상에서 이정재처럼 피아노를 치거나, 차인표처럼 색소폰을 불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한국의 실제 클래식 팬들은 세대나 계층 면에서 다양성을 보여 왔고, 그러한 다양성에서 촉발되는 활력과 역동성이 유럽이나 미국의 전반적으로 노령화된 클래식 청중과 대비되어 주목받아 오기도 했다. 21세기 경제적 신자유주의화와 맞물려 새로운 신분사회로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한국사회에서, 클래식을 둘러싼 속물적 취향의 정치가 귀환하는 징후를 영화 <기생충>이 예민하게 포착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짐짓 ‘내 자식도…,’ ‘내 아들도…’를 외치는 이글거리는 사회적 욕망, ‘사교육-상류층-클래식’의 무의식적 이미지의 연쇄는 한국의 문화사에서 음악적 상상력과 공공성에 대한 토론을 지체시킨 식민적 근대성의 유산이다. 우리는 영화 <기생충>이 재현해내는 시각적 현실만이 아니라 청각적 현실에 대해서도 그 심층의 메시지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최유준·전남대 교수/음악평론가

서울대와 동아대에서 음악미학과 음악학, 문화 연구를 전공했다. 현재 전남대 호남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음악문화와 감성정치』(2011), 『대중의 음악과 공감의 그늘』(2014), 『크리스토퍼 스몰, 음악하기』(2016), 『조율과 공명』(2018)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아도르노의 음악미학』(2010), 『뮤지킹 음악하기』(2004), 『비서구 세계의 대중음악』(2012), 『지식인의 표상』(201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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