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의 ‘질러’ 성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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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의 ‘질러’ 성과주의
  • 전국교수노동조합
  • 승인 2022.10.19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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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평]

정부 부처는 저마다의 성격과 역할이 다르다. 새로운 성과를 내야 하는 부처도 있지만 기본에 충실하면서 관련되는 현장을 지원해야 하는 부처도 있다. 만약 국방부가 성과를 내기 위해서 전쟁을 일으킨다면 국방부의 역할을 크게 오해한 것이다. 국방부의 역할은 전쟁을 일으켜서 엄청난 희생을 감수하면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국방력을 튼튼히 하면서 평화와 안보를 지키는 것이다. 따라서 전국에 있는 병력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면서 새로운 무기 개발을 위한 국방과학기술을 축적할 수 있도록 적정 예산을 투입하는 정도로 역할을 다하면 된다.

교육부도 마찬가지다. 전국에 있는 초중등 및 고등 교육이 충실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초중등학교와 대학을 지원하면서 기본적인 교육 정책을 신중하게 추진하면 된다. 그렇게 해서 여러 지역에 있는 학교 교육의 질(수월성과 형평성)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으면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교육부가 마치 새로운 성과를 지속적으로 창출해야 하는 조직으로 인식하는 부처 관계자들이 많아지면서 설익은 교육 정책들이 양산되기 시작하였다.

예컨대 자유학기제라는 미명하에 중학교 1학년 교실의 정규 교육과정을 부실하게 운영하는 정책을 펴는가 싶더니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진로 연계 학기라는 미명하에 중학교 3학년 교실까지 직업 탐색을 강조하는 진로 교육을 강화하려고 하고 있다. 도대체 의무교육 기간인 중학교 학생들에게 직업 교육과 진로 선택이 이토록 시급한 것인지 모르겠다. 게다가 고등학교에서는 전혀 교육적 기반과 자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고교학점제를 추진하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 속에서 학교 규모가 점차 작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과목을 가르칠 수 있는 교사 양성은 뒷전에 둔 채 고교학점제를 추진하고 있다. 기껏해야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연계한다든지 온라인 수업을 활성화한다든지 하는 형식적인 대안을 내세우면서 수시 대입 제도로 인해 고3이 되면 오프라인 정규 수업도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상황에서 무리한 정책을 펴고 있다.

그렇다면 교육부는 왜 이렇게 새로운 정책을 남발할까? 시도교육청이 초중등 교육에서 중요한 위상과 역할을 점차 맡기 시작하면서 언제부터인가 교육부는 새로운 교육 정책을 가지고 학교 현장을 뒤흔들면서 존재감을 살리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소위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교육부와 결탁하여 자신도 제대로 모르는 외국의 정책을 남발하는 일부 학자들의 이해관계가 서로 맞아떨어지는 측면도 없지 않다. 그래서 교육부는 학교 현장이 정규 수업과 학생 생활 지도 및 상담에 집중할 수 없도록 다양한 새 정책들을 펴면서 학교가 제 역할을 하는 것을 방해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그리고 각종 사업성 프로젝트 속에서 많은 예산이 투입되지만 결과적으로 학교 현장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결과물인 보고서만 쌓이고 있는 형국이 되고 있다.

교육은 새로운 성과를 내야 하는 분야가 아니다. 그리고 교육이 내는 성과는 한두 해 사이에 측정 가능한 것도 아니다. 특히 학교는 아이들이 다양한 삶의 대안을 비교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식을 찾아가는 곳이다. 또한 경제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기초적인 소양을 키우고 내재적 가치가 있는 활동으로 자신의 여가도 보내면서 공동체 구성원으로 시민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을 하는 곳이다. 특히 의무교육 기간인 초중등학교는 더더욱 그렇다. 대학도 오로지 특정 직업 혹은 묻지마 취업을 준비하는 곳이 아니라 학문과 공부를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우리 사회의 공적 문화 수준을 높이는 곳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도 교육부가 초중등학교와 대학을 선도하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그리고 교육에서 새로운 정책은 기본을 충실히 하는 것에 앞서서는 안 된다. 더 이상 교육부는 짧은 해외 유학 경험을 토대로 설익은 정책을 소개하고 이를 무분별하게 적용하려는 일부 학자들과 결탁하여 그야말로 오로지 새로운 성과, 혹은 윗선에 보고할 내용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즉흥적으로 마련된 설익은 아이디어와 새로운 교육 정책들은 기초 학력 부진 학생의 증가와 함께 학교가 그 본연의 역할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하는 결과를 불러왔다.

교육부는 이제 더 이상 눈앞의 성과를 위한 새롭고 이상한 정책보다는 초중등학교와 대학이 기본적인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를 들여다보고, 기본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해야 될 일들이 무엇인지를 찾아가기 바란다. 그리하여 만 5세 입학, 반도체 인력 양성 같은 이상한 교육 의제를 던지지 말고 우리 아이들이 학교 교육을 통해서 자아실현의 기회와 자원을 획득하고 공적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는 아주 기본적인 교육 정책에 전념하기를 바란다. 제발 수업 및 강의와 학생 지도 및 상담을 방해하는 새로운 교육 정책을 통해서 초중등학교와 대학 등 학교 현장을 흔들지 말고.


2022년  10월  17일

전/국/교/수/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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