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존재는 이미 철학함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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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존재는 이미 철학함을 의미한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10.16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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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데거 극장: 존재의 비밀과 진리의 심연 1 & 2 | 고명섭 지음 | 한길사 | 1,648쪽

 

하이데거는 20세기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형이상학자의 반열에 드는 철학자이다. 이를 증명해주듯이 20세기 탁월한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하이데거 80세 생일을 기리는 글에서 이렇게 썼다. “하이데거의 사유에서 불어오는 폭풍은, 수천 년이 지난 뒤에도 플라톤의 작품에서 불어오는 폭풍과 마찬가지로 이 세기에서 유래하는 것이 아니다.” 

또 하이데거가 1976년 5월 26일 세상을 떠났을 때, 독일의 유력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은 이런 기사를 타전했다. “이 사람 안에 세계 철학사의 모든 지혜가 결집돼 있으며 … 그가 남겨놓고 간 어마어마한 작품은 지금까지 그 모든 철학적 문헌이 할 수 있었던 것보다도 더 깊이 그의 독자들을 물음의 심연으로 휘몰아 넣을 것이다.” 하이데거 전기를 쓴 발터 비멜은 보통 한 사람의 생애를 통해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기 마련인데, 하이데거의 경우는 “그의 작품이 곧 그의 생애”라고 했다. 

이 책은 하이데거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시대적·사회적 배경을 충실히 소개하면서도 과도한 배경 설명을 자제하고, 하이데거 사상의 핵심 문장과 구절들을 책 속에 그물망을 치듯 촘촘히 직조해낸다. 

현대 서양 철학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반드시 하이데거와 마주칠 수밖에 없다. 반드시 넘어야 하는 고개이며 피해 갈 수 없는 외길이다. 하지만 하이데거의 사유와 언어는 그가 평생 거닐었던 슈바르츠발트의 숲처럼 깊고 어두워 일반 독자는 물론 연구자들조차 접근을 쉽게 허락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우리로 하여금 외면하거나 포기하지도 못하게 붙든다. 그것은 인간이 이 땅에 ‘현-존재’로 살아가는 한 하이데거가 한평생 던진 ‘존재 사유’의 물음이, 마치 피부처럼 분리될 수 없이 우리의 사고와 정신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하이데거와 마주한다는 것은 ‘존재란 무엇인가’를 필연적으로 묻는 일, 곧 ‘진리란 무엇인가’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정면으로 묻는 일이다. 하이데거는 일찍이 “철학의 본질은 유한한 존재자의 유한한 가능성”이며 “인간 존재는 이미 철학함을 의미한다”고 규정했다. “우리가 철학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해도 우리는 이미 철학 안에 들어서 있다”고 말했다. 소수의 지식인이나 학자만이 아니라, 인간으로 있는 한 우리는 누구나 철학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하이데거라면 어렵고 재미없는 철학자가 아니라, 그의 손을 잡고 저 존재의 비밀을 한 번쯤 탐험해보고 싶은 강렬한 유혹을 느끼게 하는 매력적인 사상가가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하이데거라는 어두운 사상가의 광대한 내면에 펼쳐진 사유의 오지를 답사한다. 이 답사의 길은 하이데거 사유의 가장 깊은 곳, ‘존재의 비밀’이 간직된 ‘진리의 심연’으로 이어진다. 하이데거의 극장에서 상연하는 연극은 바로 ‘존재’의 연극이며, 어둠의 심연 그리고 무(無)의 바다 위에서 펼쳐지는 드라마다.

제1권은 하이데거 최대 작품인 『존재와 시간』을 중심으로 전기 사유를 탐사한다. 여기서는 ‘현존재’ 곧 인간을 탐구함으로써 ‘존재’로 나아가는 길을 모색한다. 제2권은 또 다른 주저 『니체』를 중심에 놓고 니체와 대결을 벌이며 최대의 장관을 연출한 후기 사유를 조명한다. 여기서 하이데거는 현존재에서 존재 자체로 사유의 방향을 틀어 존재에서부터 존재를 해명하고자 한다.

저자는 문학적 필치로 일반인도 쉽게 읽을 수 있게 하이데거 사상을 명료하게 정리, 전달하고 있다. 그것은 오랜 시간 하이데거의 작품들을 치열하게 읽어내며, 하이데거 사상의 핵심 문장과 구절들을 책 속에 그물망을 치듯 촘촘히 직조해내고, 온전히 소화해낸 저자 자신만의 언어로 정확하면서도 자상하고 거침없이 하이데거 사상을 풀어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흔한 평전이 아니고 대단히 철저하게 쓰여진 학술서적이다. 그런데 다른 많은 학술적인 책과 달리 하이데거의 사상을 상세하게 분석하면서도 독자들을 추상적 개념의 포로로 만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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