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신성화의 정치신학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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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신성화의 정치신학을 위하여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10.09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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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가능성의 정치신학: 정치적 우상의 신학적 기원 | 손기태 지음 | 그린비 | 248쪽

 

타우베스, 바디우, 지젝, 데리다, 아감벤 등 오늘날의 현대 정치철학자들은 근대 이후로 신학이 공적 영역에서 배제되어 온 것처럼 보여도 서구 정치와 제도에 내적 논리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서로 결속되어 있었다고 진단한다. 즉, 근대 정치는 국가, 민족, 역사, 인종, 계급 등의 개념들에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기존의 초월적 신의 역할을 대신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는 사람들의 눈과 귀를 가리는 정치적 우상들이기도 하다. 현대 정치 철학은 바울의 급진적인 사상을 통해서 이러한 정치적 우상들과 맞서고자 한다. 나아가, 근대 정치에 의해 배제되고 추방되어온 소수자들의 ‘메시아적’ 정치를 지금 여기서 실현하고자 한다. 이 책의 기본적인 문제의식은 현대 정치철학과 바울의 급진적인 정치신학이 이러한 ‘탈신성화’의 기획 속에서 어떻게 만날 수 있었는가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정치와 분리해서는 성서를 제대로 해석할 수 없다고 본다. 성서는 이스라엘 왕정의 흥망성쇠에 대한 역사적 기록과 그에 대한 신학적 평가를 담은 책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왕국의 패망을 신학적으로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이스라엘을 다시금 재건할 메시아는 어떤 존재인지 등이 성서가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주제들이다. 성서에서 정치신학이 등장하게 되는 계기는 왕정 수립을 전후로 한 논란 때문이었다. 왕정 수립을 둘러싼 두 견해는 이스라엘 왕국 수립 이후 왕정 체제를 옹호하고 정당화하는 왕정 신학과, 이스라엘 왕국 패망의 원인이 왕실과 귀족들의 부정부패와 종교적 타락에 있었다고 지적한 반왕정 신학으로 나뉘었다. 이는 메시아에 대해서도 상반된 두 가지 이미지를 갖도록 만들었다.

왕정 체제를 옹호하는 예언자들은 주변 민족들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최고 강대국으로 재건할 왕으로서의 메시아를 제시하였다. 여기에는 배타적인 유대민족주의적 경향이 강하게 담겨 있었다. 반대로, 왕정 체제를 비판하는 예언자들은 왕이나 국가, 민족 등에 종교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시도를 질타하였다. 이들에 따르면, 장차 도래할 메시아는 모든 전쟁을 종식시키고 가난하고 버림받은 자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시키는 고난의 종이다. 신약성서의 저자들은 고난의 종으로서의 메시아가 다름 아닌 예수를 지칭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예수의 생애 자체는 메시아에 대한 이러한 상반된 이미지가 충돌하는 장면이기도 했다. 예수는 ‘유대인의 왕’, 곧 메시아를 참칭했다는 죄목으로 사형을 당하지만, 정작 그 자신은 이스라엘 왕국을 재건할 메시아가 아님을 거듭 강조하였다. 당시 군중들은 예수를 다윗 왕조를 다시 복원할 메시아로 보았으나, 그가 설파한 것은 이스라엘 왕국의 재건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도래였다. 예수는 자신이 추구하는 것이 세상의 지배적 가치와 질서에서 벗어나 소외되고 배제된 자들과 새로운 삶의 방식을 실천하는 하나님의 나라임을 강조하였다. 그런 점에서 예수는 이스라엘 왕국의 재건이라는 대중적 열망을 저버린 메시아, 즉 ‘메시아 개념을 해체하는 메시아’였다고 할 것이다.

이 책은 기존에 알려진 바울과는 다른, 현대 정치철학과 최근의 성서신학에 의해 새롭게 해석된 바울을 보여 준다. 기존의 바울이 그리스도교를 교리 중심의 종교로 만든 장본인이라면, 새롭게 해석된 바울은 급진적인 정치신학을 전개하는 사상가이자 활동가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사건은 바울을 유대인이라는 민족적 정체성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결정적 계기였다. 더 이상 기존의 유대 담론의 지배를 받지 않게 된 바울은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주체가 되지만, 여전히 옛 사람과 새 사람 사이의 분열의 경험 속에서 살아감을 토로한다. 즉, 바울이 제시하는 역동적 주체 개념은 곧 “과거에 자신을 지배하던 질서와 싸우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주체로서의 삶을 끊임없이 추구해야 하는 존재”이다. 바울은 이러한 깨달음을 통해 사람들을 구분 짓던 차별들에 대해서도 다르게 접근하며, 결국 “그리스도 안에서는 이방인도 유대인도 없고, 주인도 노예도 없다”고 말한다. 이는 우리 사이의 차이에 대해 그저 무관심한 방식이 아니라, 그 모든 차이와 특수성을 넘어서는 길을 추구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바울의 활동 무대는 유대 바깥의 디아스포라 지역이었다. 유대 본토의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유대적 정체성을 고수하려던 것과 달리, 바울은 출신, 신분, 성, 계급 등의 차별을 뛰어넘는 타자들의 공동체를 추구하였다. 인간이 세운 모든 권력과 질서, 제도 등을 넘어서 예수가 추구한 하나님 나라의 급진적 윤리를 지상에서 실현하고자 한 것이다. 이처럼 메시아적 윤리와 삶을 실현하려는 바울의 시도는 오늘날 탈근대적 정치철학을 새로이 정립하는 데 있어 중요한 사상적 자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책은 현대 정치철학이 근대 정치의 ‘신성화’의 기획에 대해 이를 ‘탈신성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한다고 설명한다. ‘탈신성화’는 근대 정치철학이 만들어낸 정치적 우상들을 타파하려는 시도이다. 이러한 ‘탈신성화’의 정치철학은 동시에 불가능성의 정치신학이기도 하다. 그것은 기존의 정치에 대해 정의의 무한한 요구를 대립시킨다. 기존의 정치가 국민적 화해와 단합, 번영과 안정, 자유와 공정 등 이상화된 정치 슬로건을 말할 때, 불가능성의 정치신학은 이것이 기존의 법과 권력을 강화할 뿐이며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는 가면과 허상임을 폭로하고자 한다. 물론 현실 정치에서 정의의 무한한 요구를 완전히 실현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이를 외면한다면 현실의 변화를 추구하려는 모든 가능한 시도조차 결국 소멸하고 말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불가능한 것은 가능한 것이 실행되는 조건이 된다. 즉, 정의를 실현하려는 모든 시도에 정의의 무한한 요구를 기입함으로써 불가능한 시도를 감행하도록 이끈다.

이처럼 불가능성의 정치신학은 아직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미래를 현재에 도입하고자 한다. 그것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우리에게 찾아오는 타자에 대해 열려 있다. 이로 인해 현재의 가능한 것들은 해체의 위험에 직면하며, 우리에게 가려져 있거나 배제되었던 존재들이 자신의 삶을 되찾게 되리라는 것이다. 하이데거가 말했듯, “인간 자신이 신이 되고,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 신이 되는 세계에서 신을 온전히 경험할 수 있는 자리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지만, 우리는 현재의 해체를 통해 이러한 위기의 시대가 동시에 구원의 시대가 되리라고 희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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