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기원과 진화에 대한 생생하고 철저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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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기원과 진화에 대한 생생하고 철저한 기록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10.09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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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석맨: 인류의 기원을 추적하는 고인류학자들의 끝없는 모험 | 커밋 패티슨 지음 | 윤신영 옮김 | 김영사 | 700쪽

 

고인류학계 최고 성과로 꼽히는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 일명 ‘아르디’ 발굴의 막전 막후를 한 편의 소설처럼 그려낸 책이다. 가장 유명한 인류의 조상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루시’보다 100만 년 앞선 인류 화석 아르디는 1994년 발굴되어 “고인류학계의 맨해튼 프로젝트”라 불릴 정도의 철저한 비밀, 독점 연구 끝에 15년 만에 세상에 공개되었다. 논쟁과 몰이해 속에서도 학계에서 아르디는 서서히 인류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졌지만, 발굴팀의 누구도 대중적인 홍보에 신경을 쓰지 않은데다가 연구 결과의 생소함과 오랜 기간에 걸친 비공개 연구, 타협이라고는 모르는 완벽주의자 팀 화이트에 대한 반감이 더해져 대중에게는 여전히 낯선 존재로 남아 있었다.

기자 출신의 저자 커밋 패티슨은 팀 화이트를 비롯한 고인류학계의 수많은 인물을 인터뷰하고 수백 편의 논문과 기사를 탐독하여 10년에 걸쳐 『화석맨』을 완성했다. 고인류학계의 위대한 성취와 인류의 기원 및 진화에 대한 생생하고 철저한 기록이자 머리 위로 총알이 날아다니는 곳에서 화석을 발굴하는 과학자들, 뿌리에서부터 식민주의적인 과학 분야에서 백인들과 대등한 지위를 얻고자 노력하는 아프리카인들을 그린 휴먼 드라마인 이 책은 인간의 본원적인 감정인 호기심, 질투심, 인내심, 경이감을 다룬 뛰어난 다큐멘터리이기도 하다.

인류와 판속(Pan. 침팬지와 보노보)의 유전부호가 98.4퍼센트 동일하다는 사실을 밝혀낸 분자유전학 혁명과 ‘루시’의 시대가 지난 뒤, 많은 인류학자들은 가장 오래된 인류의 조상은 현생 침팬지와 닮았을 것이라고 기대해왔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는 인류의 기원 연구에도 스며들어 “과학자들은 침팬지에게 언어를 가르치며 언어의 기원을 이해하고자 했고, 침팬지에게 돌을 깨는 법을 알려주며 도구의 혁명을 추적하고자 했다. 또한 직립보행의 기원을 알기 위해 침팬지를 트레드밀에 세워 어기적거리며 걷게 했고, 인류 성의 수수께끼를 풀고자 난교 생활을 하는 침팬지의 성교 행위를 관찰했다. 인류 폭력의 기원 역시 침팬지의 침략 전쟁에서 찾고자 했다.” 루시보다 100만 년 이상 앞선 아르디는 그런 조상에 바짝 다가선 고인류였지만, 그 화석을 오랫동안 연구한 연구자들에 따르면 이런 생각은 모두 틀린 것으로 판명되었다.

아르디는 섰을 때 키가 약 1.2미터, 뇌 크기는 300세제곱센티미터로 자몽만 했다. 손목은 침팬지와 다르게 유연했으며 손은 쥐는 동작에 유리했고 엄지 근육도 강인했다(15장). 송곳니는 침팬지 같은 유인원의 것보다 작고 다이아몬드 형태였다(21장). 발가락은 침팬지처럼 마주 볼 수 있었고, 아치가 없는 편평한 발이었지만, 발 측면에는 땅을 미는 이족보행에 적합한 관절이 있었다(22장). 침팬지보다 덜 튀어나온 입, 짧은 머리뼈바닥 등 복원된 머리뼈도 유인원과는 달랐다(23장). 아르디의 골반은 나무 타기와 이족보행 양쪽의 해부학적 특징을 조합해 갖고 있었으며(24장), 척주는 유인원처럼 짧고 뻣뻣하지 않고 유연했다(25장). 이 모든 사실은 “어떻게 우리가 인간이 됐는지, 어떻게 우리 조상이 다른 유인원으로부터 갈라져 나왔는지, 어떻게 직립보행을 하게 됐으며 재주 많은 손을 갖게 됐는지, 그리고 수많은 박물관 디오라마와 교과서가 기술하고 있는 것처럼 사바나가 정말 인류를 탄생시킨 용광로였는지에 대한 인류의 주요한 믿음을 위협했다. 더 중요한 것은, 초기 인류 조상이 놀라울 정도로 현생 침팬지와 다른 모습이었음을 아르디가 보여줬다는 사실이었다.”(12쪽)

2022년 6월, EBS 〈위대한 수업, 그레이트 마인즈〉에서 ‘고인류학의 순간들’이라는 주제로 5회에 걸쳐 한국의 시청자들과 만나기도 한 팀 화이트는 아르디 발굴 이전에 이미 라에톨리 발자국 화석,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루시’ 화석 등 고인류학계 최고의 발굴과 연구에 이름을 올린 인물이다. 학계에서 적을 만드는 솜씨가 발굴지에서 보이는 대가다운 솜씨 못지않은, 타협이라고는 모르는 고인류학자 팀 화이트는 “그간 수행한 긴 발굴 목록으로도 잘 알려져 있었는데, 앙숙의 목록은 그보다 더 길었고”(13쪽) “적들은 화이트에 대해 적대감을 품은 수준이 아니라, 진심으로 증오했다”.(105쪽) 하지만 그는 연구에 있어서 수도사를 방불케 하는 집념을 지니고 있었고, 서구 백인 위주로 진행되던 아프리카 탐사 및 진화 연구를 화석 현장을 지닌 아프리카 국가(에티오피아)가 주도하도록 오랜 시간에 걸쳐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에티오피아 현지의 역량 강화를 위해 공을 들이는 그의 노력은 《화석맨》 이야기의 중요한 축이기도 해서 마지막까지 반복적으로 제시되며 독자들에게 은근한 감동을 선사한다.

저자는 팀 화이트 외에도 치아에 관해서라면 지구상의 누구보다 깊은 지식을 지닌 일본 학자 스와 겐, 한때 창조론자였다가 고인류학자로 변신해 인간의 이동에 관한 급진적인 통찰력을 보여준 오언 러브조이, 투옥과 고문을 이겨내고 에티오피아 최고의 고인류학자가 된 베르하네 아스포, 아르디 팀과 사이가 틀어진 '루시'의 발견자 돈 조핸슨, 그리고 수십 년간 고인류학계의 가장 유명한 집안이었던 리키 가문 등 개성 넘치고 강박적인 과학자들의 면면을 생생하게 그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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