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라는 것의 테마는 무엇인가?…사유의 지형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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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라는 것의 테마는 무엇인가?…사유의 지형을 읽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10.09 21: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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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철학의 최전선: 가장 뜨거운 다섯 가지 주제와 그 사유의 지도 | 나카마사 마사키 지음 | 박성관 옮김 | 이비 | 312쪽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되고, 자신의 신념이나 생각과 다르면 증오하고 배제하는 것이 일상인 시대, 모든 것을 과학기술의 언어로 환원하려 하고 인간 중심주의 끝으로 향하는 지금, 철학은 무엇을 묻고 있을까?

우리 시대 철학에서 가장 뜨거운 다섯 가지 주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철학자들의 논의를 담은 사유의 지도와 같은 책이다. 공정한 사회의 근거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정의론), 어떻게 타자와 서로 인정하고 승인할 것인가(승인론), 과학의 언어로 환원 불가능한 인간의 법칙은 있는가(자연주의), 인공지능은 의식을 가질 수 있는가(마음 철학), 그리고 인간 중심주의의 끝을 향해 가고 있는 지금, 상대주의적 세계관과 가치관을 넘어서는 철학적 사고는 가능한가(새로운 실재론)까지. 다섯 개의 영역에서 서로 다른 배경과 입장을 지닌 철학자들의 생각을 연결하고 교차시키면서 각각의 영역에 어떤 물음이 있고 어떻게 논의되고 있는지, 철학이 어떤 실천인가를 이야기한다.

‘정의론’을 다루는 1장에서는 롤스를 시작으로 공리주의자, 후생경제학자, 리버테리언, 샌델을 포함한 커뮤니테리언의 공정한 사회의 근거를 둘러싼 '정의'에 관한 공방이 있고 잠재능력 중심으로 접근하는 아마르티아 센과 누스바움의 논의가 덧붙여진다.

‘승인론’에 관한 2장에서는 주체에 대한 시각의 변화를 중심으로 이성적 사고에 대한 한계를 다루는 사상의 계보를 추적하며 프랑크푸트학파, 구조주의자들, 포스트구조주의, 하머마스를 거쳐 로티와 콰인, 호네트, 찰스 테일러, 브랜덤 등의 논의를 통해 어떻게 타자와 서로 '승인'할 수 있는지에 관한 논의들을 탐색한다.

‘자연주의’를 다루는 3장에서는 인간의 행동을 물리적 인과법칙으로 설명하는 통일 과학을 구상했던 빈학단의 논의를 시작으로 카르나프, 콰인, 맥도웰, 소칼, 자연과학 중심의 통합을 구상한 에드워드 윌슨, 진화론의 입장에서 인간을 설명하려 한 도킨스 등 자연주의자들을 다루고 존 설, 조지프 히스, 라투르 등 반자연주의자들의 생각을 마주 세운다.

‘마음 철학’을 다룬 4장에서는 마음을 물리적으로 설명 가능한 현상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물리주의자들의 다양한 전략과 방법론을 살피면서 인공지능이 인간의 마음이나 의식과 동일한 것을 가질 수 있는가에 관한 논의들이 이어진다.

‘새로운 실재론’을 다루는 5장에서는 현대의 여러 사조에서 나타나는 상대주의적 세계관과 가치관을 극복하는 철학적 사고를 시도하는 메이야수, 브라시에, 샤비로, 그레이엄 하먼, 마르쿠스 가브리엘을 중심으로 논의한다.

한 명의 철학자가 만든 생각의 길을 따라가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가끔은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어디로 어떻게 가야하는지 확인해주는 지도 같은 책이 필요할 때가 있다. 이 책은 하나의 주제를 둘러싸고 철학자들의 생각이 어떻게 이어지고 엇갈리고 교차되는지 보여주는 사유의 지도와 같은 책이다.

하나의 주제를 둘러싼 여러 생각들이 모여 있는 모습은 서로 다른 배경과 입장의 철학자들이 테이블에 모여 문제를 설정한 후, 타당하고 설득력 있는 개념과 원리를 찾고자 하는 철학 테이블과 같다. 익숙한 철학자들도 있지만 처음 만나는 철학자도 있고 이름은 알지만 그의 핵심 생각은 모르는 철학자들도 있다. 저자는 누가 옳고 누가 틀리다는 판단을 하지 않는다. 서로 대립하는 철학자들이더라도 어느 누구의 논의를 깎아내리거나 편을 들지 않고 그들 각자의 논점과 에센스를 분명히 전달하려고 한다. 그렇게 테이블에 앉아 철학자들의 논의를 하나하나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어떤 생각의 지점에서 스스로 질문을 하고 철학을 시작하게 된다. ‘나는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나의 주제를 둘러싼 여러 철학자들의 생각이 단순히 나열되는 것이 아니라 교차하고 얽히다보니 밀도가 높다. 저자가 말하듯이 철학이 현실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은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현실의 다른 층위를 드러내면서 철학이 현실과 어떻게 닿아있는지, 철학이 어떤 실천인가를 보여준다. 철학이라는 거대한 바다를 여행하려는 자들에게는 가이드가 될 것이고 이미 여행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또 다른 곳으로 안내하는 지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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