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술안주, 음주문화의 2000년 진화과정 통찰
상태바
술과 술안주, 음주문화의 2000년 진화과정 통찰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10.09 21: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전통주 인문학: 술[陽]과 술안주[陰], 술마심[飮酒]의 의미 | 김상보 지음 | 헬스레터 | 731쪽

 

이 책은 한반도의 술 제조기술(양조)-술안주-음주문화의 키워드를 동일한 가치사슬의 연결고리로 묶고, 2,000년의 술의 발전사와 변혁의 구조를 밝혀, 집대성한 대중 인문서다. 고문헌에 기원한 술의 종류와 레시피, 안주 등 개별 영역 중심으로 연구해온 그동안의 성과에서, 전통주의 정체성을 담보하는 술과, 술안주, 음주문화가 상호연관성을 갖고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에 주목한 술 입문서이자 인문학서이다.

우리 술 문화의 뿌리는 어디에 있을까? 우리 조상들이 지녔던 음주 기록은 고대 중국문헌에서 발견된다. 부여국의 영고(迎鼓), 고구려의 동맹(東盟), 예의 무천(舞天)이 있고, 마한은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군집가무(群集歌舞) 후, 가무음주를 즐겼다《후한서》. 하늘에 제사 지낸 다음, 모여서 음주가무를 즐기는데, 조나 궤를 사용하여 음식을 차리고, 식기는 변, 두, 보, 궤를 사용하고 술은 작에 따라 마셨다. 2,000~2,500년 전 경 《예기(禮記)》에 나오는 내용이다. 백제는 음양오행법을 안다(《주서(周書》)고 나온다.

이 책은 음주문화 속에 꽃피운 술과 술안주, 음주문화를 고대부터 조선 왕실의 음복연(燕饗, 宴饗)까지(1910년 이전)의 역사를 담은 술 문명사이다. 한반도가 철기시대 이후 도교와 불교의 유입이라는 문화적 변혁과정을 통해, 술과 안주문화를 발전시켜온 장구한 내용을 역사적으로 통찰했다. ‘전통주 인문학’에 대한 이해는 음주문화로 출발하고, 음주문화는 음양사상(유학)과 관련이 깊다. 술과 안주, 음주문화의 상호연관성에 대한 역사적 통찰과 중국과 한반도의 술 고문헌 원전 해석을 통해 탁월한 집필이 가능했다. 

술과 술안주, 음주문화를 2,000~2,500년의 오랜 시간의 연속성 안에 배치한 것이 이 책의 독보적인 가치이다. 제사를 지낸 후, 음복연(飮福宴)인 연향(燕饗, 宴饗)의 구조는 1910년 한일병합 때까지 계속된다. 연향은 조선왕실의 가례연, 진연, 진찬연, 영접연 등과 연결된다. 우리나라의 연회문화는 술을 동반하는 음양사상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찾아냈으며, 이를 통해 2,000년간의 술과 술안주, 음주문화의 기원을 밝혀낸 것이 큰 성과이다. 술 제조에서 가장 기본적 재료인 누룩과, 양주 및 술안주의 형성 과정, 이를 둘러싼 음주생활이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전개 되어 왔는가를 문헌을 통해 분석하고 기술했다(50쪽).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위치는 유럽대륙과 연결되어 발달해 온 중국이 바로 이웃에 있어 지속적으로 중국의 영향을 받으면서 도도한 역사적 흐름 속에 놓여 있었다.

한반도 술 발전사를 고대, 중세, 근세로 나누어 메타버스의 통찰로 연결했다. 중국의 고대(古代)는 은(殷) 왕조에서부터 《제민요술》이 나온 530년경까지, 한반도의 고대는 기원전에서부터 삼국시대까지로 설정했다. 중국의 중세(中世)는 수(隋)나라부터 송(宋)나라, 한반도의 중세는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로 했다. 중국의 근세(近世)는 원(元)부터로 하고 한반도의 근세는 조선왕조로 설정했다. 이를 토대로 중국의 술과 안주에 대한 개괄적인 내용을 살펴본 후, 한반도의 음주문화를 기술함으로서 양국 술 문화의 비교로 보다 넓은 이해가 가능하다.

한반도는 한무제(漢武帝)의 한사군(漢四郡) 설치 이후 유교적 문화의 기반 위에 있었고, 불교가 유입되어 고려왕조가 망할 때까지 1,000년 동안 국가 주도의 불교문화가 지속되었다. 이후 조선왕조가 건국되면서 척불숭유정책이 전개된다. 조선왕조의 숭유정책은 주(周)나라로의 복고주의이다. 주나라 주공(周公)의 작품이라고 보여 지는 《주례》 《의례》가 《경국대전》과 《국조오례의》의 조선왕조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조선왕조에 들어서서 연향이든 제사이든 작은 연회이든 반드시 동원되는 술과 술안주 발전에 유교라는 구조가 자리 잡고 있었다. 유학정신은 주례(酒禮)와 주도(酒道)를 탄생시켰고 우리의 정신문화 뿐 만 아니라 음주문화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사대부들은 각각에게 집집마다 자랑하는 술양조법이 탄생하고, 이를 고조리서에 기록으로 남겼다. 현재의 가양주(家釀酒)이다.

한편 우리의 음식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중국의 고조리서인 《제민요술(齊民要術)》과 《거가필용(居家必用)》을 상세하게 해석했다. 산국(흩임누룩) 시대를 지나 병국(떡누룩) 시대가 되는 530년 경 산동반도에서 《제민요술》이 출간된다. 《제민요술》 시기는 요서를 백제 땅에 포함시켰던 가장 번창했던 백제시대와 맞물려 있다. 《제민요술》에 기록된 누룩 제조법과 각종 술안주 만드는 법은 우리 음식문화를 유추하는 데에 있어서 빼 놓을 수 없는 고문헌이다. 《거가필용》에 등장하는 각종 음식과 만드는 법은 조선시대 내내 막대한 영향을 미쳤고, 지금도 우리는 《거가필용》 문화의 잔재 속에 살고 있다. 저자는 《거가필용》에 바탕한 우리의 음식문화에 대해 145쪽에 걸쳐 상세하게 안내했다(335쪽~480쪽).

우리의 고대 음주문화는 중국에서 한반도로 전파된 산국(撒麴)인 흩임누룩부터 개시되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후 《제민요술》을 전후로 병국(餠麴)인 떡누룩 시대가 도래했으며, 조선시대에 등장하는 이화주(梨花酒)는 병국을 starter로 해서 만든 백제문화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김상보 교수의 결론이다. 통일신라시대 역시 병국으로 법주(法酒)를 만들어 먹었고, 고려 말에는 포도주, 소주 등 《거가필용》의 영향을 받은 각종 술이 한반도에 전해진다. 고려 시대에는 불교의 영향으로 왕실에서 개최되는 각종 연회는 다연(茶宴)으로 치러지고, 끽다문화의 발달과 각종 유밀과 또는 떡 등이 술안주로 각광 받는다. 고려의 왕실연향은 고스란히 조선왕실로 이어졌으며,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왕실문화는 양반사회 뿐만 아니라 일반 민중에게로 전해졌다.

음복연을 통해서 제장에 모인 사람들이 마시는 술은, 사람들로 하여금 천도(天道)와 지도(地道)를 깨닫게 하여 정신을 살찌게 하는 매개체이다. 영혼을 맑게 하고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게 해주니, 사람의 덕(德)과 신의 뜻의 화합이 이루어진다고 적었다. 술은 하늘의 도와 땅의 덕을 자각하는데 꼭 필요한 음료로, 자리매김을 하여 반드시 한[大] 항아리에 술을 담아 신과 그 장(場)에 모인 사람들이 공음(供飮)하고 이를 통해 신과 인간이 일심동체가 된다. 이는 곧 ‘술 마심’의 의미이며 목적이다. 술[陽]을 마실 때에는 반드시 술안주[陰]가 제공된다. 술은 정신세계 영혼을 살찌게 하고 술안주는 육체를 살찌게 하는 공음공식(供飮供食)이다. 여기에 예(禮)와 악(樂)도 음과 양으로 나누어져 예는 음, 악은 양의 소산이 된다. 음식에 예와 악을 결부시켜, 음주 때에 지켜야 하는 향연(제사) 의례가 탄생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