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하지 않는 일본’이라는 이미지와 역사 뒤의 ‘마음’들
상태바
‘반성하지 않는 일본’이라는 이미지와 역사 뒤의 ‘마음’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09.25 16: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역사와 마주하기: 한일 갈등, 대립에서 대화로 | 박유하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68쪽

 

전후 최악이라는 한일관계의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위안부·징용 피해자 문제다. 저자 박유하는 ‘위안부’가 아닌 ‘위안부 운동’을 비판하며 쓴 『제국의 위안부』로 소송을 겪으며, 피해자들의 문제 해결을 위한 진지한 모색으로 새롭게 이 책을 썼다. 2021년 1월부터 12월까지 일본 『마이니치신문毎日新聞』 인터넷판에 ‘화해를 위해서 2021’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을 수정·보완하여 출간한 일본어판 『歴史と向き合う: 日韓問題—対立から対話へ』(2022년 7월 11일)를 저자가 직접 번역한 것이다. 이번에는 위안부 문제가 꼬이게 된 원인 자체를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보다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다.

이 책은 위안부 문제가 꼬인 원인을 찾기 위해 199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최근 30년의 운동과 연구에 대해 돌아보고 있다. 원인을 알아야 해결이 가능하다는 생각에서다. 특히, 위안부 문제와 함께 몇 년 전부터 또 하나의 대립을 낳고 있는 징용 피해자 문제를 다루면서, 이들 문제를 둘러싼 관계자들의 사고방식의 배후에 있는 1910년의 한일병합과 1965년의 한일협정에 대해서도 고찰했다. 이들 문제들은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있어 함께 생각하지 않으면 문제에 대한 올바른 사고를 정립할 수도, 합의점을 찾을 수도 없다는 생각에서다.

지난 30년간 위안부·징용 피해자 문제는 한일 양국의 역사논의를 이끌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으로 ‘법’적 해결만을 요구하는 ‘역사의 사법화’로 귀결되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핵심관계자들은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런 사실은 알려져 있지 않고, 그저 사법부의 판결만 온 국민이 바라보는 기묘한 이중구조 속에 놓여 있는 것이 현 상황이기도 하다. 저자는 그런 정황을 확인하면서 역사 문제를 둘러싼 작금의 갈등이 어디에서 기인되었는지를 하나하나 섬세하게 풀어간다. 동시에 이 책의 또 하나의 중요한 지점은 왜 일본인들이 징용 피해자 문제에 더 관심을 갖고 기억해야 하는지를 당시의 자료를 사용해 설파한다는 점이다. 

‘과거사에 대해 사죄도 보상도 하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는 일본’이라는 이미지의 근저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는 냉전시대 후유증이 낳은, 1990년대 이후 생산되고 전파된 새로운 일본관이 우리 사회에 정착되었기 때문이다. 과거 30년 역사담론은 주로 진보진영이 맡아왔는데, 주로 전후 및 현대 일본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 위안부 문제의 경우 운동이 앞섰을 뿐 연구는 오랫동안 척박했던 점 등이 이런 정황에 기름을 부었다.

특히 위안부 문제의 경우 처음부터 정치화해버린 것이 초기의 인식 틀을 유지시켰다. 그에 더해 단어의 정의를 둘러싼 ‘비틀기’나 확장이 그런 시도를 뒷받침했다. 조금이라도 다른 견해는 우경화 증거로 간주되어 ‘정치적’으로 비난·적대시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좌우 대립’의 양상은 징용 판결에서도 엿볼 수 있다. 2018년의 징용 판결은 1990년대에 본격화된 ‘한일병합불법론’이나 ‘한일협정불충분론’에 근거하고 있는데, 이후 징용 문제를 둘러싼 2021년의 판결에서 이와 다른 판결이 나온 것은, 과거에 대한 해석과 판단이 한국 내부에서도 나뉘어져 있음을 보여준다. 한일 문제가 실상은 좌우 대립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저자는 한일 양국에서 오랫동안 잊혀지고 배제되었던 일본인 위안부 문제를 재소환한다. 민족 아이덴티티의 신앙에 사로잡혀 누구든 마땅히 소중히 취급되어야 할 개인의 의지가 국가에 의해 동원되었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무시해온 것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이해를 크게 제한시켰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른바 ‘운동의 세계적 성공’의 이면에 북한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이 “너무 끔찍”하고 “너무 눈에 띄게 다른 증언”이라 “북한 정부의 역사인식을 대신 말한 건 아닌가 하고 우려”(일본인 지원자)되기도 한 정황이 있었다는 점도 지적한다. 이는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한국적 ‘상식’의 적지 않은 부분이 북한발 이해였거나, 한국 학계 일부 연구자들이 학계 내부 담론과 언론/대중을 향한 정보제공 내용을 달리했던 과정이 만든 결과임을 밝힌다, 또,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그럼에도 그런 ‘상식’이 한국사회에 정착되었고, 위안부 문제나 징용 피해자 문제 등 역사인식운동의 중심에서 관여해온 이들은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을 ‘역사수정주의자’ ‘반역사적’이라면서 비난해온 것이 지난 세월이다. 그러는 사이 피해자 자신의 생각은 대중의 눈에 드러나지 않게 되고 대변자들의 인식이 피해자 자신의 인식인 것으로 오해되기도 하면서 ‘역사의 사유화’가 진행되었다. 이는 역사를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사는 사람들의 정치적 목적 혹은 개인적 이상 혹은 냉전 후유증으로서의 진영논리에 사로잡힌 결과이기도 했다.

역사에 잘못은 따르기 마련이다. 그 잘못에 대한 비판은 가능하지만, 비판이란 과거로부터 배우기 위한 것일 뿐, ‘바람직한 과거’를 다시 만들기 위한 것은 아니다. 잘못된 선택 등이 초래한 굴욕도 긍지도 함께 받아들여야 비로소 진정한 의미에서의 역사와 마주할 수 있다. 저자는 불신을 심는 언어들에 휘둘리지 않고, 현재의 이익이나 ‘상식’, 진영에 얽매이지 말고, 아시아의 평화를 아시아 사람들이 만들어낼 때 비로소 차세대에 평화를 건네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