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경이 만든 중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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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경이 만든 중세 이야기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09.20 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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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세 접경을 걷다: 경계를 넘나든 중세 사람들 이야기 | 차용구 지음 | 산처럼 | 240쪽

 

차용구 중앙대 교수(역사학과)가 『중세 접경을 걷다: 경계를 넘나든 중세 사람들 이야기』(산처럼)를 출간했다. 

저자의 국경에 대한 책의 구상은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국을 둘러싼 동아시아 정세는 중국의 동북공정, 독도를 둘러싼 일본과의 갈등이 연이어 고조되면서 국경 분쟁은 외교 갈등의 불씨가 되었고 국민의 정서를 예민하게 자극하면서 냉정하고 합리적인 학술적 논의를 갈수록 어려워지게 했다. 한·중·일 역사 전쟁의 격랑 속에서 공동의 역사 인식과 화해를 모색하기 위한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했다. 

그러나 자민족 중심주의적인 사고가 여전히 팽배해 있었고, 국경을 넘나드는 상호 교섭 현상에 주목하는 초경계적 사고는 필수적인데도 간과되었다. 이러한 문제 의식을 가지고 동북아시아 지역의 역사 갈등을 해소하고 역사 화해의 길을 찾으려고 필자와 몇몇 연구자들은 공동으로 유럽의 사례를 조사했다. 유럽은 국가 간의 오랜 적대 관계를 극복하려는 역사 대화를 성공적으로 진행한 바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필자는 2008년에 책 『가해와 피해의 구분을 넘 어: 독일·폴란드 역사 화해의 길』(공저)과 논문 「독일과 폴란드의 역사 대화: 접경 지역 역사 서술을 중심으로」를 쓴 바 있다. 이 과정에서 필자는 기존의 ‘변경’, ‘변방’이라는 용어를 ‘접경contact zone’이라는 단어로 대체했다. 한 장소의 외곽 혹은 가장자리에 불과하다는 뜻의 ‘변경’ 대신에 경계와 경계를 서로 잇는다는 의미의 ‘접경’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다. 경계를 단순히 중심들 사이의 주변이나 변두리로 설명하면서 중심에 대한 대립 항으로 보려는 기존의 시각에서 탈피하고자 했다.

접경은 역사가 피어나는 공간이었다. 이질적인 것들이 부딪치고 맞물리면서 새로운 것들로 채워지고 지금까지는 없었던 삶과 문화가 솟아났다가 사라지며 새로운 가능성을 품고 있는 공간이었다. 양자택일의 선택을 강요하지 않고 상충적인 가치들이 뒤섞이는 관용의 장소이기도 했다. 하지만 접경의 역사는 전승 과정에서 거짓과 오해의 그을음이 덧입혀져 조작되고 왜곡되었다. 역사적으로 접경지대의 사람들은 경계를 넘나들며 연대를 구축하고 지역 간 협력 공간을 확충했으며, 혼종화된 지역 정체성을 발판으로 위기 상황에 대처했다. 경계는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진 낙후된 주변부가 아니라 새로운 중심이 되는 해방의 공간, 창조의 공간, 생명의 공간이었다.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지성 움베르토 에코가 2000년대 초반 어느 기자로부터 서양 예술사의 등장인물 중에서 식사를 같이하고 싶은 사람을 꼽으라면 누구냐는 질문을 받고, 즉석에서 추천했다는 우타! 이 책에서는 중세에 접경지대를 넘나들었던 우타를 비롯해 레글린디스, 테오파노, 기젤라, 힐데군트 등의 여성들과, 나움부르크 장인,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십자군 원정대, 엘시드 등 근대의 시각에서 볼 때 중심에서 벗어난 주변의 인물이라고 여겨지는 존재들과, 서고트족의 알라리크 1세, 프랑크족의 클로비스 1세, 헝가리를 세운 마자르족의 이슈트반 1세, 키예프 루스 공국의 대공비 올가 그리고 칸트에 이르기까지 접경지대에서 활약했던 인물들을 통해 중세가 얼마나 드라마틱한 시대였는지를 보여주며, 근대 민족주의 시각으로는 포착하지 못하는 모험과 도전으로 가득한 생생한 중세 이야기를 펼쳐 보여주고 있다. 다양한 삶과 문화가 만나고 충돌하여 새로운 정체성이 꽃핀, 우리가 미처 주목하지 못했고, 미처 알지 못했던 중세 접경지대의 흥미로운 역사 여행을 한껏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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