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죽여도 되는 존재로 만들지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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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죽여도 되는 존재로 만들지 말지어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09.18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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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과 종이 만날 때: 복수종들의 정치 | 도나 해러웨이 지음 | 최유미 옮김 | 갈무리 | 464쪽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오늘날 반려동물은 우리에게 진정한 가족이 되었다. 하지만 인간과 동물을 비롯해서 다른 생명체들, 경관들, 그리고 기술들로 매듭이 묶인 반려종이라는 개념에는 반려동물 이상의 훨씬 많은 것이 담겨 있다. 

이 책에서 저자 해러웨이는 이 크나큰 현상을 파헤치면서 인간과 여러 종류의 크리터들, 특히 가축이라 불리는 것들과의 상호 작용을 숙고한다. 명품 반려동물에서부터 실험실용 동물 그리고 훈련된 우울증 치료견에 이르기까지, 해러웨이는 동물과 인간의 마주침의 철학적, 문화적, 생물학적 측면들을 능숙한 솜씨로 탐구한다. 이 개인적이면서도 지적으로 획기적인 작품에서 그녀는 ‘반려종’ 개념을 발전시킨다. 반려종들은 만나서 함께 식사를 하지만 소화불량을 겪기도 한다. 결국 그녀가 찾아낸 것은, 존중과 호기심 그리고 앎이 동물과 인간의 조우에서 비롯되며 이것들이 인간예외주의에 대항해서 강력하게 작동한다는 사실이다.

도나 J. 해러웨이(Donna J. Haraway)는 세계적인 페미니즘 사상가이자 생물학자, 과학학자, 문화비평가이다. 남성/여성, 인간/동물, 유기체/기계 같은 이분법적 질서를 해체하고 종의 경계를 허무는 전복적 사유로 명성이 높다.

이 책은 해러웨이가 반려견 카옌과 장애물을 정해진 규칙에 따라 통과하는 어질리티 스포츠를 함께하면서 알게 된 사실들, 맺게 된 연결들로 가득하다. 해러웨이에게 어질리티 스포츠는 반려종들이 상호 훈련과 돌봄을 통해 존중의 관계를 맺는 법을 체득하는 과정이다. 

국민 4명 중 1명이 개 집사이거나 고양이 집사인 반려동물 인구 1,500만 시대에 ‘반려종’이라는 말은 반려동물과 동의어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해러웨이의 반려종은 반려동물보다 훨씬 넓은 의미를 띤다. 해러웨이의 반려종 여정의 입구에는 그녀의 반려견이자 어질리티 스포츠 파트너인 오스트레일리언 세퍼드 견 ‘미즈 카옌 페퍼’가 있다. 해러웨이는 이 책의 도입부에서 카옌이 자신의 세포를 모조리 식민화하고 있다고 쓰며, 책의 끝에 이르면 카옌과의 얽힘으로부터 퍼져간 끈적끈적한 실들이 이 책을 이끌어나간 안내선이었음을 고백한다.

해러웨이는 이 책에서 시리아 골란고원의 이스라엘 입식자들의 목장, 파리의 프렌치 불도그, 미국 감옥에서 개와 수감자들을 관계 맺게 하는 프로젝트, 개 용품 문화 산업의 투자 전망, 생쥐 같은 실험실 동물을 취급하는 연구실과 유전학 연구실에서 벌어지는 일, 야구나 어질리티 스포츠 현장 문화의 보수성과 가능성, 대학의 회식 자리에서 벌어진 채식주의 및 태반 먹기 논쟁, 해양동물 몸에 카메라를 설치하는 〈크리터캠〉 TV 프로그램이 던지는 흥미로운 쟁점들, 공장식 닭고기 산업의 잔혹한 현실, 개 유전학 활동가의 존경스러운 활약상, 길고양이 지원 단체들과의 우연한 연결, 멸종위기종 북쪽털코웜뱃와 예술 상상력의 조우 등을 실뜨기한다.

이는 해러웨이가 카옌이라는 다른 종과 함께 일상을 보내고 먹고 마시고 관계하는 와중에 만들어진 연결들이다. 해러웨이는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쓰면서 디테일이 제기하는 질문들에 관해 연구하고 “닥치고 훈련!”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복수의 종이 일상에서 식사동료(messmate)로서 관계 맺으며 생기는 문제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어떻게 우리를 세계 속에 위치시키고 돌보게 하고 정치를 자유롭게 상상하고 관계할 수 있게 하는가”가 이 책을 이끄는 질문이라고 해러웨이는 말한다.

이 책의 서두에서 해러웨이는 두 개의 물음을 제기한다. 첫째 물음은 “내가 나의 개를 만질 때 나는 도대체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만지는 것일까?”이다. 두 번째 물음은 “ ‘함께 되기’(becoming with)는 어떤 의미에서 ‘세속적이게’(worldly) 되는 실천이라고 할 수 있을까?”이다. 첫 번째 물음은 익숙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상대에 대해 근본에서 존재론적인 물음을 다시 제기하게 만든다. 이 물음은 또한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서도 근본에서 되묻는 것이다. 두 번째 물음은 존재의 변신에 결부된 세속성(worldliness)을 강조한다.

이 두 가지 물음에서는 해러웨이 사유의 독특성이 드러나는데, 그것은 존재론적인 물음이 일어나는 자리가 일상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일상을 살지만, 일상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일상은 그저 통념에 사로잡힌 삶이기에 철학적인 물음 따위가 일어날 리 없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일상의 바깥 그 어디에도 살지 않는다. 그러므로 존재 또한 일상을 말끔히 치웠을 때 비로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라고 여겼던 것이 ‘누구’의 모습으로 만져질 때, 그리고 상대가 ‘누구’가 되었을 때 나는 반드시 ‘무엇’이 되어야 함을 알아차릴 때이다. 이러한 존재의 변신인 “함께 되기”는 이용하고, 이용되면서 함께 살고, 일하고, 놀고, 죽고 죽이는 일상의 고투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이 책은 반려동물이라고 불리는 관계에 있는 동물과의 이야기에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반려동물 인구 1,500만 시대에 한국 사회의 많은 반려인들에게도 해러웨이의 질문들은 피해갈 수 없는 것이다. 이 책은 보호자가 아니라 존중하고 존중받는 동료 어른으로 그들을 대하는 것이 일차적 과제임을 이야기한다. 반려동물들이 반려인들에게 책임을 다하는 만큼 반려인들은 그들에게 어떻게 책임을 다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1부의 제목은 ‘우리는 결코 인간이었던 적이 없다’이다. 근대 인간학의 산물인,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유일한 생물종 “인간”이라는 개념에 걸맞은 존재는 결코 있었던 적이 없음을 이 제목은 암시한다. 2부의 제목은 ‘스포츠기자 딸의 노트’로 3개의 장이 포함되어 있다.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스포츠기자였던 해러웨이의 아버지, 프랭크 우튼 해러웨이의 이야기와 해러웨이가 자신의 개들과 하는 스포츠인 어질리티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이 책의 마지막 부인 3부의 제목은 ‘얽힌 종과 종’이다. 종들의 얽힘을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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