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국가·사회의 질서체계는 어떻게 만들어졌고 전개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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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국가·사회의 질서체계는 어떻게 만들어졌고 전개되었나?
  • 임승빈 명지대·행정학
  • 승인 2022.09.18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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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말하다_ 『질서의 지배자들』 (임승빈 지음, 법문사, 304쪽, 2022.08)

 

생명을 가진 모든 생물은 자신의 생태계를 지배하거나 생존하려고 할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라는 인간들은 더욱 그 욕구가 강하다. 그러나 그 욕구는 상황과 조건, 대상에 따라 바뀌기 때문에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현상을 연구하고자 하는 사회과학자들은 기본적으로 역사적인 접근방법을 버리면 안 된다. 왜냐면 한 시대에 혹은 어느 나라에 발생한 사회적 현상의 기원은 그 자신의 문화와 역사, 심지어는 주변국을 넘어 세계사적인 역학 관계로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도로 본문에서는 고대국가에서부터 현대국가에 이르기까지 6개의 장으로 구분하여 각 시대별 정치·경제·사회의 질서체계의 지배적 논리와 지배자들의 특성을 파악하고자 했다. 마지막 7장에서는 부국강병의 강국이 아닌 삶의 질이 좋아지고 어느 정도는 미래 비전이 그려지는 강한 국가가 되기 위한 몇 가지의 제언을 하는 것으로 구성했다. 

질서를 공동체가 추구하는 공통의 가치·이해·신조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라면 우리 공동체의 질서의 구성체계는 끊임없이 바뀌어야 할 것이다. 본서에서도 질서에 대한 개념 정의를 불변의 가치·이해·신조로 받아들여지고 무질서에도 가치·이해·신조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논리를 전개하고자 했다. 즉, 지금, 현재의 시점에서 공동체의 질서란 불변적이고 이런 것이라고 정의하지 않겠다. 당시의 사회적 질서를 형성하게 되는 에피스테메(담론) 구조를 파악함으로써 질서를 지배하는 집단 또는 개인의 특성을 파악하고자 했다. 따라서 본서의 핵심적 주제어인 ‘질서’라는 개념이 순서 정연한 질서(order)가 아닌 조화적 질서(cosmos)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본문을 읽으면서 분명해질 것이다. 이는 무질서(disorder)에도 가치가 있으며 패러다임 전환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의미와 같다. 그렇다면 21세기 우리가 살고 있는 질서의 패러다임 변화는 어떠한 계기로 어떻게 발생되고 있는 것인가. 19세기의 찰스 다윈이나 20세기의 토마스 쿤이 지적한 대로 변화된 변종이 혁명적인 대체가 되어 주류가 되는 현상을 자연선택 때문인지 또는 획득형질이 살아남아 존속되어 진화과정을 거치는 것인지는 21세기 사회과학자들에게 커다란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자연과학의 수많은 법칙과 원칙이 여러 방면에서 상호 유기적으로 생태학적으로 연계되어 있듯이 현대인의 활동반경과 삶의 방식의 다양성은 전 지구적으로 연계되어 사회과학에서도 자신의 국가와 사회만을 봐서는 문제해결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인식하여야 한다는 점을 본문을 통해 강조했다. 즉, 각자의 국가와 사회에서 자신들만의 고유한 정치·경제·사회체계의 고유성은 점차로 사라지고 있으며 정서적 공동체를 강조하는 것 역시 무용해졌고 무의미해져 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했다. 질서체계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는 것이 본서의 목적인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의 질서의 지배자들의 모습 또한 그려보는 것이 본서의 또 다른 목적이다. 

초기 인류는 가상의 실재인 신화와 종교를 만들어 정신적인 지배까지도 장악을 하려했다. 학문의 시작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찾는다거나 자연의 법칙을 찾고자 했으나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적 질서를 파악하는 데부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가장 손쉬운 사회적 질서의 형태는 피라미드적 계서제였을 것이다.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 1902~1985)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피라미드적 신분제 사회는 인류문명의 시작과 같이 형성되고 21세기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범용적으로 활용된 아주 오래된 질서의 형태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근·현대 국가에 이르기까지 타인과 사회를 지배하는 수단은 신분과 종교도 있었으며 심지어는 21세기 현재에도 지구상의 많은 나라들에서는 여전히 신분과 종교가 사회적 질서를 지배하고 있다. 동시대에 여러 개의 정치 사회 체제들이 있고 여러 개의 계서제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즉, 하나의 질서가 아니라 여러 개의 질서가 동시대에 존재하는 것이다. 문화, 언어, 의식, 생활양식도 복수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교회, 국가, 도시 등 모든 사회, 하부사회, 가족집단 등도 나름의 계서적 질서를 갖고 있다. 

신분제적 피라미드 사회가 전근대적이고 근대성의 개념이 신분제적 사회의 해체임과 동시에 신분제적 계급제 사회의 해체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서구사회에서는 17~18세기 그리고 아시아권에서는 19세기와 20세기가 가장 치열하게 정치, 경제, 사회 권력의 재편이 이루어졌던 시기였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본서에서는 계급제와 계층제의 개념을 달리 쓰고 있다. 계급제는 신분제와 같은 의미로서 혈연의 의한 소유권이 타인들과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같은 민족 내에서 계급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말투나 옷의 색깔, 거주지역 등으로 차별화를 시도하는 등 객관적인 기준이 있다. 반면에, 계층제는 흔히들 상류층, 중산층, 하류층으로 구분하는데 여러 지표로 구성되며 해당 사회의 주관성이 반영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러한 전근대적 신분제적 질서가 붕괴되는 것은 어떤 위대한 선각자 혹은 어떤 하나의 사건에 의존했다기보다는 해당 국가의 정치, 경제, 사회 모두가 전체적으로 기존의 질서체계가 바뀌어야 가능했다. 물론, 질서가 재편되는 시기는 각국에 따라 다를 수도 있지만 공통적인 사항은 경제 질서를 바꿔버린 산업혁명과 종교의 우월권을 빼앗은 과학혁명에서 찾을 수 있겠다. 서구에서는 토지에 의존하는 경제구조가 아닌 기술과 노동에 의존하는 19세기 산업화와 과학기술의 발전은 다수의 하층민, 대중을 기존의 계층제적이며 신분제적인 사회적 질서로부터 벗어나는 계기를 만들었고 또한 이들의 개인적 자유의지를 강조하는 사회철학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때였다.

본서에서는 현대국가에 이르기까지의 정치/경제/사회 절서 체계의 변화라는 관점에서 고대의 자연주의 철학부터 중세를 거쳐, 16~17세기의 절대주의, 18세기 계몽주의, 19세기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등장, 20세기의 민주정과 공화정, 그리고 공산주의를 탄생시킨 다양한 정치철학자 및 경제사상가 사회사상가들을 본문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소개했다.   

그렇다면 질서를 유지하는 또는 파괴하고 새롭게 만드는 힘은 무엇인가. 다름 아닌 권력과 권위일 것이다. 한 국가의 지배질서를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권력과 권위가 일치 혹은 분리되어야 한다는 원칙은 없다. 국가 탄생 이전 단계에서도 권력과 권위는 있었으며 근대국가 내지 현대국가에서도 이 두 가지의 문제는 때로는 일치 때로는 분리되어 형성되어 왔으며 한 국가의 성장단계에서도 이 둘의 관계는 긴장과 조정 등의 많은 과정을 거쳐 왔으며 지금도 진행 중이라고 볼 수 있다. 권력과 권위의 관계를 본서에서는 어느 한 사회(정치집단도 포함)집단이 독점하는 것이 아닌 사회의 여러 집단들 간에 소통으로써 연계되어 있다는 사회체계론적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현실에서는 정치권력이나 시장(경제)권력을 만들고 유지하는 것은 권력과 권위이지만, 사실은 자원배분 권한을 갖는 권력에 집중되며 권위는 권력의 하위개념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본서에서의 사회라는 개념은 개인과 개인이 모여서 만드는 집단의 큰 단위로서가 아니라 변동적 관점에서 사회적 체계를 서술하였다. 역사성을 경제결정론적으로 계급적 관점에서의 사회를 보는 마르크스와 같은 발전론적 관점을 탈피하고, 방향성이 아닌 사회 여러 집단 간의 유기적 소통 관계 속에서 사회체계가 만들어지고 변화하고 있다고 보는 시각을 취하는 것이다. 

본서의 특이점은 근대성을 논하는 과정에서 19세기 한중일 3국을 비교한 점이다.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19세기 당시 과학기술이 상대적으로 뒤떨어진 한국과 중국에서의 국가 역할은 어떠했을까. 동아시아에서도 역시 근대성의 문제는 지금도 그렇지만 19세기에는 가장 중요한 이슈였다. 외세의 침략, 반식민주의, 반봉건사회의 형성과 그 극복을 위한 연속된 혁명운동이 강조되는 서사적 구조 속에서는 근대의 핵심과제인 새로운 질서체계로서 국민형성의 문제, 민주공화정 등의 문제는 소외되고 왜소화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일본만을 예외로 취급하면서 서구사회, 더 좁게 말한다면 유럽의 근대사회를 가리키며 제3세계의 특수성을 부정하고 서구가 만든 보편성의 관점에서 아시아 국가들, 중국과 한국을 봤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통은 지금까지도 살아있는 패러다임이라고 본다. 즉, 근대화 주장은 다름 아닌 산업화, 공업화며 경제성장에 초점이 맞춰지는 계기가 지금도 변함없다고 본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우리는 여러 부작용을 보고 있다. 경제 질서는 왜곡되어 세습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국내 기업들, 특히 대기업들은 여전히 지배구조에서 창업주의 가족 중심의 지배구조가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이다. 사회질서 체계도 문제가 심각하다. 독재정권과 군사적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 시민을 대신한 시민사회단체가 한국사회의 민주화에 기여한 면도 있었으나 좌우파적인 정권이 교체되는 시기마다 극심한 사회적 갈등의 원인 제공자와 국민들의 정치혐오까지 불러일으킨 점 역시 사실이다. 즉, 사회적 질서의 중심체인 시민사회단체의 핵심 가치인 ‘공공성’, '중립성', '비정파성'에 근본적인 비판을 받게 된 것이다. 정계로 가기 위한 수단으로 시민단체에 참여하는 학자(폴리페서) 등도 다수 생겨난 점도 안타깝다. 사회적 질서와 정치적 질서, 그리고 경제적 질서체계가 혼합되는 사회가 바로 전근대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사회적 질서와 경제적 질서의 지배자들이 정치적 질서의 지배자로 탈바꿈하는 순간 사회는 미분화되고 정치가 사회 전체, 국가전체를 지배하는 독점적 지위를 갖게 되어 견제와 균형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경제적 격차뿐만 아니라 문화적, 지리적, 공간적인 영역까지 확대되어가는 사회적 격차와 경제성장의 디커플링이 점차 심화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디커플링들이 발생하는 그 원인들은 무엇일까. 한국 사회에서는 사회변동론적 관점에서 다음의 3가지의 디커플링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본다.  첫째는, 대학진학률과 경제성장율의 디커플링 현상이다. 1980년대 대학과 전문대학 등 고등교육기관으로의 진학률이 1980년에 30%에서 2008년에 약 84%까지 정점을 찍었던 반면에 경제성장율은 80년대 고도성장기에서 2008년부터는 저성장기로 돌아섰다는 점이다. 둘째는,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계층 간 디커플링 현상의 심화이다. 계급은 신분제적 요소가 있어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는 객관적 지표로 구성된다면 계층은 주관적이며 각자의 국가와 시대마다 기준점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은 본서에서도 전술한 바 있다. 계층은 주로 자산소득 기준으로 삼는 것이 일반적인데 한국사회에서는 ‘부의 세습’이라고 하는 용어가 종종 사용되고 있으며 실제적으로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물질적, 문화적 혜택이 점차 벌어지는 디커플링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셋째는, 공공기관 취업에 있어 기존의 사회적 약자층(여성과 장애인)과 과거의 강자층(남성과 비장애인) 간의 디커플링 현상이다. 이로 인해 여성의 왕성한 사회진출로 인한 20대 남성들의 박탈감이 커져가고 있는 현상이다. 

마지막 7장은 우리나라의 현안들을 제시하고 나름대로 제언을 한 부분이다. 첫째로는 공화적이며 개방적인 민주주의 질서체계의 강화를 강조했다. 둘째는, 정치·경제·사회적 질서체계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강화이다. 셋째는, 권력과 권한의 분산적 시스템 구축이다. 넷째는 자기 성찰적 근대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본문에서 강조하고자 했던 점은 자유롭고 정의로우며 강한 국가가 되는 길을 가기 위해서는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는 점이다. 새로운 형태의 유무형의 지리적, 공간적 공동체의 출현에 자국민들에게 국가와 국제사회를 위한 목적 지향적인 공동체 정신을 강조해야 하며 국가와 개인을 매개하는 새로운 정치·경제·사회의 질서체계를 생성하고 유지할 수 있도록 도덕과 공동선을 강조하는 적극적 국가 역할이 필요한지 아니면 고전적인 관점에서의 애덤 스미스와 하이에크, 밀턴 프리드먼이 강조하는 자유시장(free market)의 논리를 정부에도 적용시켜야 하는지는 본문을 통하여 각각의 전개 과정과 적용 논리를 전개했지만 각각의 국가와 사회에 맡겨야 할 커다란 끝이 보이지 않는 여전히 사회적 담론이 될 것이다. 


임승빈 명지대·행정학

일본 도쿄대학(東京大學)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 한국행정연구원, 국립순천대학교 등을 거쳐 현재 명지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학문적 관심 분야는 지방자치, 정책집행, 지역개발정책 등이며, 주요 단독 저서로는 『지방자치론』, 『정부와 NGO』, 『행정사』 등이 있다. 정부 및 자치단체의 각종 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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