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근대 작가의 또 하나의 주체, ‘記者(journa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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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대 작가의 또 하나의 주체, ‘記者(journalist)’
  • 박정희 울산대·국문학
  • 승인 2022.09.11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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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에게 듣는다_ 『한국근대소설 미학과 ‘記者-作家’』 (박정희 지음, 역락, 432쪽, 2022.07)

 

‘가짜뉴스’, ‘팩트체크’, ‘기레기’ 등등. 이러한 현금의 언론계 상황 속에서 책 제목에 포함된 ‘기자-작가’라는 표현이 눈에 띈 것일까? 사실은 이른바 ‘서평기사’를 싣는 줄로만 알았는데 저자가 직접 자신의 책을 소개하는 코너의 원고를 청탁한 것을 두 번째 메일을 받고서야 알았다. 내 책에 대한 소개를 내가 직접 쓰는 글.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다. 꾸역꾸역 상상해본다. 떠오르는 글은 ‘반성문’뿐이다. 연구자의 ‘반성문’은 다음 ‘논문’으로 쓰는 것. 내가 내 책에 대해서 쓰는 글이라니. ‘어떤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거절의 용기가 약했던 탓일까. 마감일까지 거절하지 못해 쓴, ‘어떤 용기’를 내어 쓴 글임을 먼저 밝힌다.

저자의 이번 책 『한국근대소설 미학과 ‘기자-작가’』는 한국근대소설의 형성과정과 그 미학적 특성을 저널리즘과의 상관성에서 고찰해본 그간의 연구들을 1부와 2부로 나누어 정리한 것이다. 2부로 구성된 이 책의 제1부는 저자의 ‘1920~30년대 한국소설과 저널리즘의 상관성 연구’(2014)라는 박사학위 논문을, 제2부에서는 학위논문에서 다루지 못한 내용을 후속 연구를 통해 보완한 주제들의 논문을 수록했다. 

주지하다시피 2000년 이후 문학연구는 ‘문학’보다 문학 외적인 것으로 더 확대되었다. 이른바 미시사와 풍속론 등의 문화론적 관점은 견고했던 ‘문학’ 텍스트를 ‘문학’ 아닌 텍스트들과 나란히 놓고 읽게 만들었으며, 매체론적 관점과 검열 등의 제도론적 관점은 확고하다고 믿었던 ‘문학’을 해체하여 그것이 권력 배치의 구성적 산물을 확인해주었다. 이러한 연구들은 ‘문학(텍스트)주의적 관점’에 대한 회의와 그 극복의 방법으로 시도되어, 근대문학의 제도적 기원이나 근대성의 특징을 규명하는 성과를 낳았다. 그런데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문학이 지닌 독특한 미적 특징과 소설문학 고유의 미적 자율성을 해명하는 데에는 적극적이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문학연구가 문학과 사회구조 혹은 제도와의 길항 관계를 통해 문학의 가치를 새롭게 궁리하는 데 있는 것이라고 할 때, 그간의 매체-제도적 관점이나 문화론적 관점의 연구는 다시 문학 텍스트의 미학적 차원에 대한 논의로 향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물론 이러한 방향이 또다시 문학 텍스트의 내부와 외부를 구획짓는 것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 책은 그간의 매체-제도적 관점에서 이룩한 연구 성과들을 이어받으면서 저널리즘의 상황에 대응하여 자신의 문학세계를 구축해나간 근대소설의 미적 특성을 규명해보고자 했다. 이를 위해 그간 ‘작가연보’에 한두 줄의 이력으로만 기록되어 있던 ‘기자활동’에 주목하여 ‘작가’를 이른바 ‘기자-작가’라는 이중적 정체성을 가진 존재로 규정해보았다. ‘기자-작가’는 근대작가들의 존재론적 토대로 작용하는 매체 혹은 제도적 저널리즘 환경 일반에 대한 논의를 보다 ‘문학’의 차원에서 심화시켜 논의할 수 있는 가능성의 존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1920~30년대 당시 저널리즘 상황과 소설의 상관성을 바탕으로 소설의 미학적 성과를 설명하기 위해 사실성, 대중성, 정치성의 3가지 범주를 설정했다. 식민지 시기 저널리즘과 소설은 이 세 가지 가치의 형성과 재구조화의 상황에 놓여 있었다. 이 세 가지 범주가 상호 배타적이거나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 중첩되는 점을 고려하면서 논의를 위해 구분한 것이다. 언론의 글쓰기와 소설 쓰기는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담기 위해 각각의 논리와 방법을 모색했으며, 저널리즘의 ‘독자’ 확보를 위한 다양한 시도와 근대소설의 예술성과 대중성 획득이라는 이중 과제의 수행은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 그리고 피식민지 지식인으로서 기자와 작가는 ‘정치적’ 글쓰기를 수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세 가지 범주의 대표적인 ‘기자-작가’로 각각 현진건, 심훈, 염상섭의 소설을 대상으로 그 미학적 특징을 고찰했다. 사회부 기자였던 현진건은 이른바 ‘팩트의 픽션화’를 소설의 미학적 구조화로 실천했으며, 이른바 문화부 기자였던 심훈은 계몽성과 대중성의 실천으로서 계몽-모델소설의 세계를, 정치부 기자였던 염상섭은 현실의 불가해함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식민지 상황의 정치서사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다른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이러한 범주 속에서 논의하는 것은 남겨진 과제이다)   

이상의 제1부가 1920~30년대 ‘기자-작가’의 소설을 대상으로 그 미학적 특징과 성과에 대한 논의라면, 제2부의 내용은 제1부의 후속 연구과제와 저널리즘 미디어와 소설의 상관성 논의에서 그간 주목하지 않았던 주제들을 고찰한 논문들을 수록했다. 제2부에 수록된 연구주제들 가운데, <신문의 시대와 신소설>에서는 근대초기 신소설에 나타나는 ‘신문-기사’ 양상과 인식에 대해 분석했으며, <근대초기 ‘가짜뉴스’에 대한 인식 가능성과 그 의미>에서는 신문은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도한다는 ‘믿음’의 형성과 그에 대한 의심이라는 문제가 근대소설의 정립과 관련해 논의할 수 있는 주제임을 다루었다. 특히 후자의 주제는 근대초기 신문기사가 조작될 수 있고 가짜일 수 있다는 인식까지 보여주는 대상으로 신소설 작품이 거의 유일하다는 점을 확인했다. 이 주제는 1부에서 논한 1920년대 이후 ‘기자-작가’들의 ‘현실’ 재현과 그 방법에 대한 고민의 인식론적 전사(前史)에 해당하는 것이므로 후속 연구를 통해 보완한 것이다. 그리고 <한국 근대소설에 나타난 ‘기자’의 존재양상과 그 의미> 역시 제1부에서 다루지 못한 내용을 보완한 것이다. 주인공으로 기자가 등장하는 소설들을 분석해 ‘기자-작가’라는 존재의 위상을 근대소설연구에 부각시키기 위한 (숨겨진) 의도가 있는 연구라는 점에서 제1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논문이다.

이상의 3편의 논문이 제1부의 논의를 적극적으로 보완하기 위한 후속 연구들이라면, 마지막 ‘릴레이 소설’과 ‘벽(壁)소설’에 대한 두 편의 논문은 저널리즘과 소설의 상관성 연구를 하면서 획득한 부산물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 논문들은 논의 내용과 그 성과는 차치하더라도 ‘릴레이 소설’과 ‘벽신문과 벽소설’이라는 연구대상을 한국근대소설 연구 분야에서 거의 처음으로 논의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감히 자평해본다. 아이러니하지만 어쩌다 연구주제의 부산물이 갖는 의미가 더 크다고 말하는 형국이다. 

지금까지 주제넘게 저자의 책을 소개해보았다. 짧은 지면에 소개해놓고 보니 재미없는 연구서가 더 재미없는 책이 되고 말았다. ‘머리말’에도 썼지만, 저널리즘이라는 거대한 장과 근대소설이 성취한 미학적 성격의 관계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방법론의 모색은 여전히 난제(難題)다. 계속하다보면 뜻밖의 ‘부산물’로서의 선물이 또 주어질까. 이번 책에 담지 못했지만 저자는 릴레이소설, 영화소설, 유머소설, 사진소설 등등 필자가 ‘저널리즘 기획문예물’이라는 용어로 제안하고자 하는 다양한 문예물들을 살펴보고 있다. 이 글에 ‘계속해보겠습니다’라고 쓰면서 마침표를 찍는다.  


박정희 울산대·국문학

울산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박사를 마쳤다. 현재 울산대학교 국어국문학부에서 한국현대소설을 가르치고 있다. 2012년 <문학사상>에 평론으로 데뷔했다. 펴낸 책으로 『송영소설선집』, 『심훈전집』(전9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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