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를 받아들여 … 중국과 한국 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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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를 받아들여 … 중국과 한국 ⑬
  •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 승인 2022.08.28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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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일 칼럼]

불교의 전래는 동아시아에 큰 충격을 주고, 사고의 차원을 높였다. 불교 덕분에 중국인은 종교다운 종교를 체험하고, 철학다운 철학을 하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수용되고 논의되던 불교를 가져와 동아시아 다른 나라도 정신적 각성을 하게 되었다. 불교가 중세화를 수준 높게 이루어지도록 하는 기여를 했다.

불교사는 국가사를 넘어선 문명사이다. 불교는 보편종교여서, 각국의 특수 종교, 중국의 도교, 한국의 무속, 일본의 신도(神道)를 넘어선다. 그런 것들을 배격하지 않고 우호적인 관계를 가지면서 넘어선다. 보편주의 사고가 무엇인지, 유교보다 불교가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 불교사는 문명사를 넘어선 문명사라고도 할 수 있다. 유교문명권에 불교가 전래되어,  유교문명권보다 더 넓은 불교문명권이 있는 줄 알게 되어, 세계 인식이 확대되었다.

중국의 불교를 받아들여 한국 것으로 한 내력을 <삼국유사>가 신라 시대 네 고승의 행적을 들어 말하는 것이 놀랍다. 중국보다 후진이어서 가서 배우는 단계에서 더욱 선진인 깨달음을 스스로 얻는 단계까지의 변화를 요약해서 말해주고 있다. 이것은 중국과 한국의 선후 역전을 말해주는 좋은 본보기일 뿐만 아니라, 정신적 각성의 선후 역전이 이루어지는 원리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의의까지 지닌다. 차등론에서 대등론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밝혀주는 철학으로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자장(慈藏)은 중국에 가서 공부한 것을 차등의 정상에 오르는 자격으로 삼았다. 성스러운 산에 좋은 절을 짓고 보살을 기다리다가 누추한 모습을 하고 찾아온 보살을 알아보지 못하고 물리쳤다. 보살이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자 허겁지겁 따라가다가 떨어져 죽었다. 멀고 높은 곳에 있다고 여기는 선진을 후진의 자리에서 우러러보니 다가가지도 못했다. 선진이 선진임을 거듭 확인하고, 후진과의 거리가 더욱 멀어지게 했다. 

의상(義湘)은 중국에 가서 공부를 열심히 한 성과가 있었다. 부처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정리하는 말을 많이 한 것들 가운데, 불에 넣어도 타지 않는 핵심만 간추려 가지고 왔다. 무엇이 소중한지 분명하게 해서 혼란을 없앴다. 최상의 선진을 자기 것으로 해서 후진을 청산하는 본보기를 보여주었다. 끝없는 칭송을 받아 마땅하다는 대상이 차등을 키워, 대등과 멀어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 문제이다. 

원효(元曉)는 중국에 가서 공부를 하려고 가다가 발걸음을 돌렸다. 이치의 근본을 스스로 밝히고자 했다. 선진에 핵심이나 최상의 것이 따로 없다고 했다. 각기 다른 주장을 하면서 다투는 모든 것이 대등하다는 원리를 밝혔다. 집착에 빠진 기존의 선진은 모두 후진이라고 나무라고, 집착에서 벗어난 새로운 선진을 제시하는 역전을 이룩했다. 파격을 각성의 방법으로 삼아, 차등의 우상을 타파했다.

원효가 절정도 결말도 아니었다. 원효가 스승으로 받든 혜공(惠空)은 중국에 갈 생각도 하지 않았다. 줄곧 사회 밑바닥에서 살아가면서, 후진이 그 자체로 선진이 되는 역전을 이룩했다. 하나와 여럿, 상생과 상극의 관계를 유식하게 따지다가 공연하게 헷갈리지 말고, 그 이치가 명백하게 실현되는 삶의 현장으로 오도록 하는 기이한 행동을 일삼아 충격을 주었다.

위와 같은 자장ㆍ의상ㆍ원효ㆍ혜공의 행적을 수록한 <삼국유사>는 전례가 없는 별난 책이고, 저자 일연(一然)은 승려 이상의 승려이다. 무엇을 했는지 간추려 말해보자. 민족문화의 저력을 보여주면서 동아시아문명을 새롭게 하고, 인류가 사상이나 철학을 창조하는 보편적인 원리를 알려주었다. 이에 관한 논의를 하나씩 해보자.   

역사서ㆍ설화집ㆍ고승전이 각기 별개인 관습을 깨고, 셋이 하나이게 했다. 고승설화를 들어 역사 창조의 원리를 말했다. 역사를 창조하는 신이한 능력을 제왕ㆍ고승ㆍ민중이 모두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민중의 삶을 깨달음의 근거로 삼는 고승이 가장 놀라운 경지에 이른다고 했다. 

고승 이야기는 고승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며, 승전(僧傳)이라고 한 불교계의 전승만도 아니다. 향전(鄕傳)이라고 하는 민중의 전승이 더욱 풍부했다. 신이하다고 인정되는 고승을 주인공으로 삼고 민중의 발랄한 창조력을 거침없이 발휘해 승속(僧俗) 합작품을 훌륭하게 만들어냈다. 불교가 들어오고 신이하다고 인정되는 고승이 등장하자, 민중의 구비철학 창조력이 섶을 만난 불꽃처럼 타올랐다. 구비철학이 철학의 원천이고, 동력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일연(一然)이 다시 나타나 수습하지 못한, 후대의 고승 신이담이 여기저기 파다하게 전한다. 널리 알려진 본보기를 들면, 고려 말의 고승 나옹(懶翁) 이야기가 있다. 아버지는 없고 어머니가 세금을 내지 못해 관가에 잡혀가다가 낳은 나옹이 날짐승들이 덮어주어 살아났다고 한다. 민중영웅의 출생담을 말해준다.

승려가 되어 고향을 떠나면서 지팡이를 땅에 꽂고, 그것이 나무가 되어 살아 있으면 자기도 살아 있다고 했는데, 그 나무가 아직 살아 있다고 한다. 나쁜 용에 굴레를 씌어 악행 제어해, 그 곳의 절을 신륵사(神勒寺)라고 한다. 영원한 생명을 희구하고, 사회악을 징치하고자 하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소망을 나타냈다.

중국에서 가져온 불교를, 한국의 불교이게 한 것만이 아니다. 이상의 경지에서 노는 남아시아의 불교를, 현실에 참여하는 동아시아의 불교로 만드는 작업을 분명하게 했다. 승려의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는 차등의 신앙을, 민중이 신이한 능력을 가지고 역사를 창조한다고 하는 대등의 철학을 만들었다.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계명대학교, 영남대학교, 한국학대학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학술원 회원으로 계명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중국 연변대학 명예교수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서사민요연구>, <한국문학통사>(전6권), <우리 학문의 길>, <인문학문의 사명>, <소설의 사회사 비교론>(전3권), <대등한 화합: 동아시아문명의 심층>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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