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통합 구상의 등장 배경과 역사적 한계를 되짚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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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통합 구상의 등장 배경과 역사적 한계를 되짚다
  • 김한나 기자
  • 승인 2020.0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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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세계대전과 유럽통합 구상 : 통합과 분열의 전간기, 유럽은 어떻게 새로운 평화질서를 모색했는가 | 통합유럽연구회 지음, 서강대 유로-메나문명연구소 기획 | 책과함께 | 400쪽
 

20세기 들어 유럽은 극단적 민족주의와 전체주의의 야만성을 분출하며 세계대전의 진원지가 됐다. 이 기간 동안 전후 질서에 대한 구상들이 그려졌고, 그로부터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유럽은 28개 회원국을 가진 유럽연합이라는 통합된 모습으로 거듭나 있다. 유럽의 현재는 분열과 파괴로 얼룩진 과거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에서 시작됐다.

이 책은 1차 세계대전부터 2차 세계대전까지의 시기에 유럽에서 제안되거나 구상됐던 유럽 질서에 관한 연구 논문들을 엮었다.

통합과 분열이라는 모순적 가치들의 병행과 양립을 목격할 수 있는 30년 동안의 양차 세계대전 시기를 유럽통합의 관점에서 재조명했다.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려 했던 다양한 유럽통합 구상 혹은 유럽 질서들을 규명한다.

이 책에 따르면 유럽통합 구상은 이미 중세 말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책은 세계대전 시기 유럽 구상들이 이러한 역사적 연속성 속에서 20세기 새로운 정치·경제·문화적 조건에 상응하면서 시대에 걸맞은 옷을 입은 것이라는 전제를 수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2장의 쿠덴호베-칼레르기를 들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유럽 사상이 실리, 칸트, 니체 같은 유럽통합 옹호자들의 사상적 전통 위에 있음을 의식하고 있었다. 또 그의 사상은 20세기 후반 유럽통합 옹호자들에게 영감과 구체적인 영향을 끼쳤다.

세계대전 시기 표방됐던 유럽 질서에 대한 사유들은 구체적인 밑그림이라는 의미에서건 반성의 거울이라는 의미에서건 전후 유럽통합의 발전에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사상적 기반을 제공했다. 종전 이후 유럽통합의 전주곡으로 알려진 1946년 처칠의 취리히 연설에서 그가 자신이 그리는 유럽합중국이 쿠덴호베-칼레르기의 사상에 빚지고 있다고 인정한 사실은 그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된다.
 
유럽연합의 시초인 유럽석탄철강공동체가 스피넬리와 모네 등이 전후 유럽 질서로 구상했던 연방주의적 유럽 건설의 구상들에 사상적 기반을 두고 탄생했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이미 검증된 바 있다. 유럽석탄철강공동체 구상의 기안자가 모네라는 사실은 유럽통합 구상과 유럽통합 현실정치의 연관성을 가장 확실하게 입증한다. 결국 현재의 통합된 유럽은 이 30년간의 유럽통합 구상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이 책은 유럽이 위기와 방향성 상실에 직면한 상황에서 유럽통합을 위한 중요한 계기와 전환점을 제공할 수 있었던 한 시기를 담담하게 조명한다. 브렉시트, 테러, 난민 문제, 통화위기 등 최근 유럽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태들은 유럽이 과거 세계대전 같은 극단적인 전쟁이 없는 평화의 시기를 보내면서도, 공동체 외부의 위협과 내부의 불협화음으로 항시적인 위기에 노출돼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책에 담긴 평화질서 구축을 위한 지속적인 시도와 실패 사례들, 패권적 권력욕을 실현하기 위해 조작되는 평화 구상의 위험성에 대한 교훈은 현 유럽이 되새겨야 할 중요한 이야기다. 이는 불확실성 가운데에 있는 동아시아 정세에도 유의미한 이정표를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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