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무의식』에 대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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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무의식』에 대한 소개
  • 안성두 서울대·불교철학
  • 승인 2022.08.14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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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말하다_ 『불교의 무의식: 도불교사상의 맥락에서 알라야식』 (윌리엄 왈드론 지음, 안성두 옮김, 운주사, 456쪽, 2022.06)

 

불교에서 심/식의 문제가 가장 중요한 주제라는 사실에 대해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식은 윌리엄 제임스가 말했듯이 불교에서도 실체가 아니라 하나의 과정이고 흐름으로서 정의되어 왔지만, 식(識, vijñāna)에 대한 대표적인 세 개의 설명에서 보듯이 불교사상의 전개과정에서 나타난 식의 이해는 때로 모순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첫 번째는 표층적이고 현재적인 6종의 지각작용으로서, 초기불교와 아비달마에서의 식의 이해이다. 두 번째는 알라야식(ālayavijñāna)이라는 심층적이고 잠재적인 의식으로서, 유식학파에 의해 창안된 개념이다. 세 번째는 자성청정심 개념으로서 심의 본성은 청정하고 밝게 빛난다는 것이다. 자성청정심은 앞의 양자와 상이한 성격을 갖고 있고, 또 본서의 주제와도 무관하기에 이를 제외하고 설명해보자, 

먼저 6식이란 眼·耳·鼻·舌·身·意라는 6종의 감각기관에 의한 6종 인지작용이다. 보통 서양철학의 consciousness를 19세기말 일본학자들이 불교학의 용어를 빌어 意識이라고 번역했지만, 이 단어는 엄밀히 말하면 불교학에서 제6의식을 가리킨다. 불교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에게 식이라는 말은 조금 낯설지도 모르지만 지각과 사유를 포함한 넓은 의미의 인지작용을 보여주는 용어라고 이해하면 충분할 것이다. 그런데 식은 항시 대상에 의거하고 있다. 예컨대 안식의 대상은 색, 즉 형태와 색깔을 가진 물질이며, 이식의 대상은 소리이다. 이런 점에서 불교에서 식의 성격은 의식은 항시 무엇에 대한 의식이라는 후설(Husserl)의 지향성 개념과 유사한 측면을 보여준다. 

두 번째 알라야식(ālayavijñāna)은 앞의 6식과는 달리 심층적이고 잠재적인 형태의 식이다. 엘리아데(M. Eliade)가 말하듯이 CE. 4세기 초 굽타왕조 시대에 인도사상이 가진 무의식에 대한 깊은 관심을 배경으로 해서 불교 유식학파의 사상가들은 심층적으로 작동하는 심의 차원을 발견하고 이를 알라야식으로 불렀다. 알라야식은 프로이트의 무의식처럼 역시 심층적인 에고의식으로서 어떤 형태이든 지속성을 전제할 때에만 설명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지속적인 식이 어떻게 찰나적인 식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특히 불교교설이 전제하는 윤회와 무아 개념을 상반된 것으로 이해하는 한 정합적인 방식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런 교학적인 상황에서 『불교의 무의식』은 유식학파가 창안한 알라야식 개념이 초기불교와 아비달마 불교에서 설하는 6식의 맥락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려고 한다. 

『불교의 무의식』의 원제는 The Buddhist Unconscious: The ālayavijñāna in the context of Indian Buddhist thought로서, 2003년 William Waldron에 의해 출판되었다. 이 책은 3부로 구성되어있다. 1부 <알라야식의 배경과 맥락>에서는 제1장 <초기불교의 배경>, 제2장 <아비달마의 맥락>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이 책의 핵심부인 제2부 <유가행파 전통에서 알라야식의 도입>은 제3장에서는 주로 『유가사지론』과 『해심밀경』 등의 초기유식문헌에서 알라야식의 도입 맥락을 논의하고 있고, 제4장과 제5장에서는 유식사상의 강요서인 『섭대승론』에서의 발전된 알라야식 해석을 다룬다. 그리고 마지막 제3부는 세 개의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세 번째 부록은 『유가사지론』 섭결택분의 모두에서 기술된 알라야식의 존재논증을 영역한 것이다. 

이와 같이 본서는 유식학파의 창의적인 알라야식(ālayavijñāna) 개념이 인도불교사상의 어떤 맥락에서 출현했는지의 문제를 다룬다. 알라야식 개념의 기원과 발전에 관해서는 Lambert Schmithausen의 Ālayavijñāna: On the Origin and Early Development of a Central Concept of Yogācāra Philosophy(1987)가 유명하지만, 본서는 알라야식 개념이 초기불교 이래 불교의 마음 이론으로 소급될 수 있다고 보면서, 이를 넓은 의미에서 불교의 심식설의 맥락에서 추적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알라야식은 유식학파에 의해 도입된 창의적인 사상사적 발견으로 이해되고 있지만, 저자는 이 개념이 초기불교 이래 문제되었던 식이 가진 대립된 두 가지 의미를 가장 성공적으로 통합한 이론이라고 평가한다. 

식이 가진 두 가지 의미란 (가) 인지적 앎(cognitive awareness)과 (나) 윤회적 식(saṃsāric consciousness)이다. (가)는 초기불교의 6식의 설명에서 안식은 안근과 색色에 의존해서 생긴다는 것을 가리킨다. 이는 매우 깊은 함축성을 가진 설명으로서 인지적 앎은 각각의 생명체의 감각기관(根)에 의해 제약되며, 또한 대상(境)에 의해 조건지어진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맥락에서의 식은 항시 표층차원에서 작동하는 인지적 앎이지만, 그 찰나적 작용을 넘어 어떻게 윤회과정에서 지속적 영향을 끼치며, 그 영향이 어디에 어떤 형태로 보관될 수 있는가의 문제는 찰나적이고 현재적인 식의 성격에서 볼 때 해명되거나 논변되기 어려운 주제였을 것이다. 

(나) 윤회적 식의 의미는 12지 연기에서 식이 행을 조건으로 해서 생긴다고 할 때의 맥락이다. 12지 연기설은 중생이 어떻게 윤회생존에 떨어지는가를 보여주려는 설명체계이다. 여기서 현생의 첫 번째 찰나로 간주된 식은 전생의 업(= 行)에 의해 조건지어져서 모태로 떨어지는 것으로 기술된다. 저자는 이 맥락에서의 식은 찰나적으로 작용하는 인지적 앎일 수는 없으며, 어떤 방식이든 지속성을 요구한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이와 같이 두 가지 식의 의미의 구별을 강조한다. 그는 초기불교 연구자들을 인용하면서 이런 식의 대립적인 성격에 대한 이해가 초기불교 연구자들에 의해 공유되고 있으며, 동시에 초기불전 곳곳에서 식의 찰나성과 더불어 어떤 형태의 지속성을 전제하는 기술이 보인다고 지적한다. 반면 아비달마 불교에서는 찰나적이고 표층적인 인지과정의 분석에 초점이 놓여있고, 이를 주로 인과적 분석에 의해 설명하려고 한다. 인과성은 아비달마에서 소위 식의 공시적(synchronic) 분석을 위해 수행된 것으로서, 그 의도는 한 찰나의 인지적 앎의 구조를 보여주는데 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인지가 얼마나 많은 심적 요소들과 외적 대상들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는지를 인과성의 방식으로 분석한 것이다. 이런 공시적 분석의 대상은 현재 작동하고 있는 표층적인 식이지, 보다 지속성을 전제하는 윤회적 식은 당연히 아니다. 따라서 지속성을 전제하는 식의 맥락은 약화될 수밖에 없었고, 이를 저자는 아비달마의 문제점(Abhidharmic problematic)이라 불렀다. 

저자는 불교사상이 직면한 식의 찰나성과 지속성 사이의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시도 속에서 가장 성공적인 설명모델이 바로 알라야식이라고 간주한다. 알라야식은 표층적인 6식의 작용과 별도로 심의 심층에서 지속하는 무의식적 과정을 포함하는 다층적인 심의 모델로서, 유식학파는 이를 전체의 교설체계 속에 성공적으로 융합시켰다. 

이 책은 알라야식의 작용을 다루면서, 거기에서 ‘종자’가 어떻게 축적되며 어떻게 현행하는 6식과 동시적으로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지를 해명해야 할 핵심사항으로서 다루고 있다. 종자란 식물학적 비유로서 마치 씨앗에서 열매가 생겨나듯이 후에 결과를 산출할 수 있는 잠재력이다. 이런 종자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소위 ‘명언종자(名言種子)’이다. 명언종자 개념은 우리의 심층의식을 형성하는 언어의 잠재력에 의해 우리가 어떻게 세계의 구성해 나가는가를 다루는 유식사상의 핵심주제와 연관되어 있다. 저자는 최근의 인지과학의 성과를 원용하면서 유식사상이 인지과학의 통찰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본서는 유식사상의 해명을 위해 인지과학의 성과를 원용한 선도적인 학제적 연구라는 점에서도 의의가 깊을 것이다. 


안성두 서울대·불교철학

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한국불교철학을 전공하여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독일 함부르크 대학교 인도학연구소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금강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전공은 인도불교 유식학이며, 이와 관련한 다수의 논문이 있다. 역서로 『보성론』, 『보살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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