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동물의 공감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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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동물의 공감 능력
  • 김환규 편집기획위원/전북대·생리학
  • 승인 2022.08.14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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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규의 과학에세이]

 

공감(empathy)은 호의를 뜻하는 그리스어 ‘empatheia’에서 유래되었다. 공감이란 다른 개체들이 느끼는 것을 지각하는 것이기 때문에, ‘감정 전염’과 동의어라 할 수 있다. 공감은 타인이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타인의 주관적인 관점을 의도적으로 받아들이는 복잡한 인지 능력으로, 이런 정의는 ‘마음 이론’, ‘사회적 인지’ 그리고 ‘역할 수행’ 같은 개념과 유사하다. 공감 능력이 없다면 인간은 타인 때문에 고통받지 않을 것이다.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은 모든 사회적 동물의 타고난 능력으로, 각 개체와 집단의 생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공감은 감정의 연결통로이고 윤리는 이성의 연결통로이다. 

공감 능력은 인간의 정체성을 정의하는 데 사용되는 목록 중 하나이다. 공감은 개인 간 그리고 사회관계에서 인간들을 결합시킨다. 공감은 인간의 사회 행동을 조직화하며, 정의에 대한 인류 행동의 토대이고, 영웅적 행위 같은 이타적인 행동을 촉발시켜 다른 사람이 직면한 공포 같은 위험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 따라서 공감 기작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으면, 문명화된 행동이 사라질 것이며 정신병리, 폭력적 범죄 같은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국내외적으로 흔하게 일어나는 불특정 다수에 대한 폭력과 전쟁 등은 정상적인 공감 능력을 갖는 사람에게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사진: LISTVERSE

1960~1970년대에 미국 <국립 정신건강 연구소>의 칼훈(John B. Calhoun) 박사 그룹은 설치류를 이용하여 공감 억제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였는데, 실험 집단의 쥐들은 물과 먹이를 충분하게 공급받고, 충분한 공간에서 번식할 수 있었다. 시간의 경과에 따라 개체 수가 증가한 실험 집단에 여분의 먹이는 공급했으나 서식공간을 확대해주지는 않았다. 그 결과, 실험 집단의 개체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다가, 결국에는 과밀 스트레스로 인해 수컷들이 다른 수컷을 죽이고, 어미들은 자신이 낳은 새끼들과 먹이를 축내는 다른 개체를 죽이는 비정상적인 공격적 행동이 반복되었다. 이후 조금씩 개체 수가 감소하던 실험 집단에서 쥐들은 교미를 포함한 사회적 행동을 중단하기 시작하였다. 교미 상대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지도 않고 교미 행위를 회피한 채 먹이를 섭취하고 잠을 자거나 털을 고르는 행위만 행하는 수컷들이 나타났다. 이전 세대의 공격성이 사라진 이런 ‘아름다운 자(beautiful ones)’들은 꾸준히 번성하였다. 이들은 다른 개체들의 스트레스 같은 감정 상태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고, 교미 같은 사회적 행동을 중단하였는데, 이들의 적응 전략은 공감 억제로 밝혀졌다.

 

사진: LISTVERSE

다른 개체의 감정과 의도를 인식하고 반응하는 공감은 인간만 갖는 독특한 능력이 아니다. 인간의 마음을 느끼고 이해하는 치료견의 공감 능력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고생하는 퇴역 군인들을 포함하여 인간의 많은 정신적 상처 치유에 사용되고 있다. PTSD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훈련받은 치료견은 퇴역 군인의 부정적 감정과 고통을 감지할 수 있다. 치료견은 인간의 발에 자신의 발을 올려놓거나, 무릎에 머리를 기대거나 양다리를 인간의 어깨에 걸치며 눈을 응시하는 방법으로 PTSD 환자의 여러 증상을 치유하고 공황 발작을 차단할 수 있다. 치료견은 인간이 악몽을 꾸는 것을 발견하고 차단할 수도 있다. 끔찍한 사건을 겪은 사람에게 치료견은 그 사람과의 공감을 통해 치유를 도와준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겪은 일을 타인에게는 말하지 못해도 치료견에게는 말하기도 한다. 치료견뿐만 아니라 애완동물도 공감을 통해 부상 장병이나 퇴역 군인, 자폐를 갖는 어린이와 다른 정신건강 장애로 고생하는 사람의 치유를 도울 수 있다. 쥐 역시 동료들에 대한 공감 능력을 나타낸다. 실험 조건에서 어떤 쥐가 물에 빠지면 다른 쥐가 물에 빠진 쥐를 건져내기 위해 신속하게 레버를 조작하는 모습이 관찰되었다. 이것은 동료의 안전이 자신에게 필요한 먹이보다 더 가치 있다는 것을 인식한 공감의 발로라 할 수 있다. 개뿐만 아니라 고양이와 조류도 장기간 지속되는 정신건강 장애를 갖는 사람들에게 좋은 친구로 봉사할 수 있으며, 환자의 회복과 정신적 안정에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출처: National Geographic

앤서니(Lawrence Anthony)는 <아프리카 코끼리>를 보호하기 위해 약 20 ㎢의 ‘툴라툴라 보호구역’을 설립하여 코끼리들을 보호하였다. ‘코끼리 위스퍼러: 아프리카의 야생동물 무리와 함께 한 나의 삶’이란 책에서, 그는 코끼리들이 주변의 코끼리들과 어떻게 소통하는가를 관찰하여 코끼리와의 소통 방법을 찾아냈다고 한다. 앤서니가 사망하자 코끼리들은 애도를 표하기 위한 듯 앤서니의 집으로 무리 지어 찾아왔다. 앤서니의 사망 후에도 코끼리들은 오랫동안 매일 밤 그들의 보호구역에서 가까운 앤서니의 집으로 찾아왔다. 코끼리 집단은 자신들의 우두머리 암컷이 죽었을 때 또는 매년 먹이를 찾는 이동 경로에서 조상 코끼리 사체를 마주할 때 슬퍼하는 행위는 종종 관찰되었으나, 자신들을 도와준 사람에게 애도를 표하는 행위는 놀랄만하다. 이렇듯 동물도 인간에 대해 공감을 나타낼 수 있으며, 일부 동물은 보호, 슬픔 그리고 자신의 비용을 치르면서까지 위험으로부터 다른 개체를 구조하는 것을 포함한 다양한 방법으로 공감을 나타낸다. 

공감은 인간을 포함한 사회적 동물 집단의 행동에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최근에, 신경과학자들은 설치류와 원숭이의 활성화된 뇌 회로를 추적하는 뇌 영상 촬영기법을 사용하여 공감 능력을 검증하는 실험을 통해 공감에 관련된 신경회로를 밝혔다. 이러한 신경회로는 전전두엽 피질에서 편도체 부위에 걸쳐 있는데, 이 영역은 인간이 공감 경험을 할 때 활성화되는 신경 네트워크와 동일하다. 피실험 생쥐가 자극으로 고통받는 모습을 본 관찰자 생쥐는 얼어붙을 것이다. 이것은 피실험 생쥐가 당하는 고통 또는 공포에 대해 유사한 감정을 느끼는 관찰자 생쥐의 공감적 감정 전염이다. 인간도 타인이 크게 다친 모습을 보면 반사적으로 주춤하게 되는데, 이러한 공감 전염이 일어날 때 전전두엽 피질 부위에서 활성이 관찰된다. 흥미롭게도, 이 부위에는 감정의 ‘거울 신경세포’가 존재하는데, 이들 신경세포는 고통을 직접 겪은 개체와 관찰자 모두에게서 활동전위를 생성한다. 이 부위에 존재하는 신경세포의 활동전위 생성을 억제하거나 촉진하면, 관찰자 생쥐의 공감 행동이 억제되거나 촉진되었다. 

 

사진: LISTVERSE

다윈(Charles Darwin)은 ‘인간과 동물의 감정표현’이라는 책에서 인간과 고등 포유동물 사이에 정신적 능력 차이가 전혀 없다고 주장하였다. 다윈에 따르면 감정은 적응적이며 소통과 동기부여 기능을 하고 있다. 감정표현은 내적 상태의 외부로 향한 소통이다. 다윈은 인간이 극도로 분노할 때 종종 자신의 송곳니를 드러낸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이것은 인간의 조상이 이빨을 공격 행동에 사용했으리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하였다. 다윈의 견해에 따르면, 공감은 많은 동물의 선천적 행동 목록의 일부로, 친사회성을 유발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최근의 연구 결과, 다른 사회적 동물도 공포, 기쁨, 행복, 부끄러움, 분노, 동정과 존경을 포함한 다양한 감정을 경험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동물의 권리’를 주장한 진화생물학자인 콜로라도 대학의 베코프(Marc Bekoff) 교수는 설치류와 닭도 다른 개체가 느끼는 고통에 대해 공감한다고 주장하면서, ‘비인간 동물은 놀랄만한 존재’라고 지적하였다. 존스 홉킨스 대학의 해리스(James C. Harris) 교수는 공감을 ‘사회적 유대를 유지하는 진화 기작’으로 설명했다. 달리 말하면, 생존에 절대적인 집단에 의존하는 동물은 주변의 다른 동물들이 느끼는 것에 대해 매우 민감하다. 인간과 비인간 집단에서 확인된 공감의 기본 형태와 생물학적 그리고 유전학적 배경은 거의 같다고 할 수 있다. 

인지적 공감은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능력이고, 감정적 공감은 타인의 감정을 신체적으로 느끼는 능력으로 다른 사람의 상처를 보고 나도 아픔을 느끼는 것이다. 공감적 관심은 자신에게 타인이 필요로 하는 것을 느끼는 능력이다. 공감하기 위해서는 동정심을 가지고 타인의 의견을 듣고 현상을 보아야 한다. 공감은 연민이 아니라 타인의 감정을 자신의 감정이 아닐지라도 타당하게 여기는 것이다. 공감 능력은 리더십의 원천으로 어떤 유형의 리더에게든 결정적 요소이다. 통제하고 관리하는 리더십 시대는 지났다. 공감 능력은 협력, 신뢰, 혁신, 관리 등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타인에 대해 공감하지 못한다면 효과적으로 구성원들을 리드할 수 없을 것이다. 


김환규 편집기획위원/전북대·생리학

전북대 생명과학과 교수. 전북대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University of California, Davis 교환교수, 전북대 자연과학대 학장과 교양교육원장, 자연사박물관 관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생물학 오디세이』, 『생명과학의 연금술』, 『산업미생물학』(공저), 『Starr 생명과학: 생명의 통일성과 다양성』(역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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