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으로 역사 속의 기적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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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으로 역사 속의 기적 읽기
  • 주수완 우석대·고고미술사학
  • 승인 2022.08.08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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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말하다_ 『미술사학자와 읽는 삼국유사』 (주수완 지음, 역사산책, 256쪽, 2022.06)

 

옛 이야기 속에서는 기적이나 신비로운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데, 현대 사회에서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 옛 이야기 속의 기적들이 거짓말인 것일까? 아니면 옛날 사람들은 믿음이 강해 정말로 그들에겐 기적이 일어났지만, 현대인들은 믿음이 부족해서 그런 기적이 일어날 수 없는 것일까? 아니면 현대에도 기적은 일어나고 있는데, 우리가 그것을 기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일까? 

아마도 우리나라 역사서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쓰여진 무렵은 이러한 기적이 허구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과 실재한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공존했던 시기였다고 볼 수 있다. 허구라고 생각해서 이런 전설들을 삭제하고 삼국사기를 서술한 김부식은 현대인의 시각과 많이 닮아있고, 그러한 기적까지도 역사로서 다루어야 한다고 믿었던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스님은 어쩌면 고대의 사고방식을 유지하고 있는 입장으로 간주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일연스님이라고 해서 이러한 전설적인 이야기들을 사실이라고 우기는 입장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러한 신화들 속에서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더 깊이 읽어보려고 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현대의 문화인류학자, 신화학자에 더 가깝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현대적인 입장에서 일연스님이 이러한 기적에 접근하고자 했던 시각을 재구성해보는 것도 가능하다. 그 첫 번째 방법은 신비로운 일이 실제로 일어났는데 사실은 조작된 일이었을 가능성이다. 현대사회에서도 사이비종교 교주들이 신도들의 불치병을 치료했다며 그들의 권능을 드러내려고 했지만 알고 보니 사기였다는 이야기랑 비슷하다. 다만 삼국유사에 수록된 이야기는 이러한 사기성 농후한 집단에 맞서기 위해 역으로 기적을 조작한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예를 들어 경주에서 진흥왕이 황룡사를 창건하게 된 배경이 되었던 기적이 그러한 예라 하겠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진흥왕 당시 원래는 새로운 궁궐을 짓기 위해 터를 닦는 중이었는데 땅에서 황룡이 나타나 날아가 버리는 사건이 발생하는 바람에 궁궐로 지으려던 계획을 바꿔 사찰을 새로이 짓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내용에 의하면 언뜻 용이란 신성한 존재이기 때문에 용이 출현한 장소에 인간인 왕이 사는 궁궐을 짓는 대신 성스러운 부처님의 집인 사찰을 지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보는 것은 몇 가지 문제가 있다. 

 

황룡사 북쪽에 있는 거대한 우물터. 용궁이 있던 자리로 추정되고 있다.<br>
           황룡사 북쪽에 있는 거대한 우물터. 용궁이 있던 자리로 추정되고 있다.

첫째로는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용들은 거의 대다수가 왕을 지키는 존재들이다. 용이 나타난 곳이기 때문에 왕이 그곳에 집을 짓지 못한다는 것은 다소 납득이 어렵다. 둘째로는 기록에 의하면 황룡사가 들어서기 전부터 황룡사 자리 뒤쪽에는 "용궁"이라는 시설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현재 황룡사지와 분황사 사이에 있는 커다란 우물이 있는 장소를 용궁의 터로 보고 있다. 따라서 용을 신성하게 생각했다면 차라리 용궁을 확장하는 것이 더 자연스런 선택이 될 것이다. 그런데 용이 날아간 것과 갑자기 절을 새로 짓는 것과는 무슨 연관이 있었던 것일까.

어쩌면 용은 신라에 불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존재했던 토착종교집단이었던 용궁의 상징 같은 신이었을 것이다. 또한 그런 용궁 앞에 새로운 궁궐을 조성한다는 것은 용궁 세력과 정치 집단의 강력한 결속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진흥왕에 앞서 법흥왕 대에 처음 신라에서 공인된 불교를 믿었던 진흥왕의 입장에서는 그러한 결탁이 탐탁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 신흥종교로서 힘이 약했던 불교의 입장에서는 이런 사태를 막을 마땅한 기반이 없었던 상황이었던 것 같다. 

결국 용궁의 용이 신라 왕실을 지켜줄 것이라는 토착종교집단의 주장에 반격하기 위해서는 이를 뒤집을 사건이 필요했는데 그것이 바로 황룡의 출현이었다. 즉, 용궁에 있던 용이 날아가 버린 것이다. 사찰이 부처님이 머무는 곳인 것처럼 용궁은 용이 머무는 곳일 텐데 그 주인공인 용이 날아가 버렸으니 용궁은 더 이상 용궁의 기능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곳에 굳이 궁궐을 세울 이유가 사라지게 된다. 궁궐도 아니고 용궁도 아니라면 차라리 절을 세우자는 것이 진흥왕의 주장 아니었을까. 문제는 용이 날아가 버렸다는 사실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보여줄 것인가 하는 것인데, 어쩌면 풍등 같은 것을 길게 연결하여 용처럼 보이게 한 다음 날려 보냈던 것은 아닐까? 그 방법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당시 사건은 황당한 사건이 아니라,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조작된 기적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기적을 해석하는 두 번째 방법은 지금은 기적으로 기록에 남았지만 사실은 과학이었을 가능성이다. 나당전쟁이 시작될 무렵 당나라의 대군이 바다를 건너 신라를 공략해온다는 첩보를 들은 문무왕은 이 난관을 헤쳐 나갈 지혜를 명랑법사로부터 구했다. 명랑법사의 해법은 문두루 비법이라는 불교적 주술이었다. 국가의 존망이 걸린 상황에서 해법이 주술이라니 황당한 이야기지만, 여하간 문두루 비법 덕분인지 당나라 대군이 서해를 건널 때 큰 풍랑이 일어 당나라 군대가 궤멸되는 사건이 두 번이나 발생하게 된다. 삼국유사는 이 사건으로 인해 사실상 당나라가 신라 공략을 포기하게 된 것으로 나온다. 

 

사천왕사의 단석터. 12개의 초석이 있고, 구멍이 뚫려 있다. 십이지와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사진=법보신문

정말로 문두루 비법이란 마술이 존재했을까? 이 사건을 조금 다른 입장에서 보자면 풍랑이 이는 문제는 현대사회에서는 주술의 문제가 아니라 일기예보의 문제다. 명랑법사의 문두루 비법은 어쩌면 불교와 함께 신라에 들어온 서아시아의 고대 과학이었을지도 모른다. 문두루 비법의 무대가 되었던 사찬왕사에는 12지상을 꼭대기에 새긴 나무기둥 12개가 세워진 단 2기가 발견되었는데, 원래 12지가 시간과 방향(공간)을 표현하는 데 사용되는 것을 감안한다면 명랑법사의 비법이란 결국 풍랑을 일으키는 마법이 아니라 풍랑이 언제(시간) 어디서(공간) 일어나는가를 예측하는 일기예보 시스템이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물론 풍랑이 일어나 일거에 당군이 궤멸되었다는 것은 과장일 수 있다. 그러나 삼국지에서 제갈량이 동남풍을 예측하고 D데이를 결정하여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처럼 명랑법사의 과학적 예측이 나당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포천산에서 성불한 다섯 비구의 전설이 깃든 미타암 석굴에 봉안된 통일신라시대의 석조아미타여래입상<br>
 포천산에서 성불한 다섯 비구의 전설이 깃든 미타암 석굴에 봉안된 통일신라시대의 석조아미타여래입상

마지막 세 번째 해석은 기적을 물음표로 남겨놓는 것이다. 분명히 설명할 수 없는 일인데, 만약 그것을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목격했다면 그야말로 설명할 수 없는 미제사건이 되고 만다. 현대사회에서도 종로 한복판에서 시민들이 동시에 미확인 비행물체를 목격하는 사건이 있었고, 세계적으로는 마을사람들이 동시에 성모 마리아의 현현을 목격했던 파티마의 성모 기적도 있다. 이런 현상은 과학이 주도하는 현 세기에서도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와 비슷한 일이 양산 포천산의 미타암에서 있었다. 여기서 수행하던 다섯 스님이 동시에 성불을 이루었는데, 성불을 이루자 하늘로 날아올라 인근 통도사로 가서 공중에 떠있는 채로 그들이 깨달은 내용을 통도사 스님들에게 설법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서쪽으로 날아가다 빛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통도사 대중들이 함께 목격했다는 것이다. 많은 기적 중에 하나 같지만 추상적인 개념의 대중들이 아니라 분명하게 통도사 대중들을 지목한 것은 이 기적이 일어났을 당시에 마치 시내 한복판에 미확인 비행물체가 나타난 것처럼 통도사 대중들이 함께 목격하고 기록한 것이어서 한 사람이 지어낸 이야기일 수는 없다는 뜻이다. 언젠가 미확인 비행물체가 과학적으로 설명될 때가 있을 것이라 믿는 것처럼, 불교에서의 기적도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라 언젠가는 설명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일연 스님의 믿음도 담겨있는 것이 아닐까.

물론 이러한 기적들을 단순히 기록만 해두었다면 기록 그 이상의 가치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삼국유사를 최고의 역사서로 만든 것은 전적으로 일연스님의 스토리텔러로서의 능력 덕분이다. 다만 스토리텔링 개념이 없었던 고려시대의 글인지라 다소 어렵게 읽힐 수도 있지만, 지금의 시각으로 본다면 기적 같은 일들이 실제인지 아닌지를 무색케 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미술사학자와 읽는 삼국유사"는 옛날의 스토리텔링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을 위해 현대적인 방법으로 이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접근하는 방법을 알려드리고자 하는 책이다.


주수완 우석대 교수

미술사학자. 고려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했으며 동국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과정을 거쳐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사)한국미술사연구소 책임연구원,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고고미술사학과 조교수를 거쳐 현재 우석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로 실크로드 교류사, 예술경영, 불교경제학을 강의하고 있으며, 문화재청 문화재 전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솔도파의 작은 거인들』 (2012), 『한국의 산사 세계의 유산』(2020), 『불꽃 튀는 미술사』(2021) 등이 있다. 또한 〈미켈란젤로 앞에 선 불교미술사학자〉(2018), 〈미술사학자와 읽는 삼국유사〉(2017) 등을 법보신문에 연재하고 법보신문이 주관하는 성지순례와 답사 프로그램인 ‘선재의 걸음’을 운영하는 등 불교미술사와 인문학 연구의 대중화에도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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