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여성, 스스로를 살리고 불교를 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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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여성, 스스로를 살리고 불교를 살리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08.01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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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와 근대, 여성의 발견 | 조은수 지음 | 모시는사람들 | 288쪽

 

이 책은 ‘근대’와 ‘불교여성’을 핵심 키워드로 하여, 1700년에 걸친 비구니 전통에도 불구하고 소략하고 점멸적인 불교여성의 기록을 잇고, 더 깊이 파고들어 19세기 말부터 1970년대까지의 불교여성들의 다양한 모습을 소개하고 그 성장·발전 동력을 분석함으로써, 한국 근대 불교사에서 여성을 중심으로 서술하는 새로운 종류의 정합적인 역사를 구성하고자 한다.

한국의 근대의 공간에서 불교여성들은 종교적 실천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확장해 나갔다. 저자는 20세기 근대 형성기에 활동한 이들 여성들을 찾아 그들의 다양한 의식세계를 구명하고 맥락화하려고 노력한다. 개별 여성들의 살아 있는 경험과 그들의 의식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생생한 현실들을 구체적이고 유동적인 사회적 맥락 속에서 재구성하고자 한다. 시기적으로는 개항기, 일제강점기, 해방과 한국동란으로 나누었고 각각의 시대의 여성들의 의식과 실천 활동을 밝혀보고자 한다.

한국 비구니 전통의 역사는 1700년에 이르고, 이것은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유구하고 여법한 비구니 교단의 전통이다. 비구니들은 똑같은 수행자들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불교사에서 오랫동안 하위 범주로 다루어져 왔다. 그 결과 전통불교의 보수성은 아직도 21세기 한국 불교계를 지배하고 있다.

오늘날 불교계 교단에서 제도적으로 극복해야 할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성적 불평등의 문제, 특히 여성을 낮추어보고 여성의 종교적 가능성을 폄하하는 것이다. 종정을 위시하여, 총무원장 이하 모든 상위 보직자의 선출 자격을 비구만으로 한정하는 현재의 종헌종법의 법제는 반드시 타파되어야 할 시대적 화두이기도 하다. 특히 근대 시기에 불교여성들이 불교 교단의 자리매김을 위하여 기여한 바를 고찰하면 이 점은 더욱 뚜렷한 과제로 부각된다.

근대에 들어 세계적 규모의 사회적 격동이 일어나는 현상에 즈음하여, 불교계의 비구니들은 우선 오랫동안 잊힌 자신의 정체성과 자아를 회복하고 구도자로서의 제자리를 확보하는 데 노력을 경주하였다. 그 결과로 자신의 여성됨의 의미와 사명 등을 자각하고, 스스로의 수행 공간(도량)을 일구는 경험 그리고 자신의 계보와 역사를 반추하고 자신이 서 있는 시간과 공간의 의미를 재인식하게 되었다. 이들의 노력은 한국 불교 교단에서의 비구니 승단의 존재감을 강화하는 한편, 조선시대 내내 피폐된 불교교단 자체에 활력을 불어넣는 마중물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비구니들의 활동은 개항기, 일제강점기, 해방과 한국동란 시기에 걸쳐 각각 시대적 특징과 발전 양상을 보이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근대 시기 비구니 활동의 의미는 그에 앞선 시기, 즉 근대 이전 시기 한국불교 전통의 흐름에 비추어 볼 때 더욱 도드라지고, 또한 1970년대 이후 비구니 승단의 약진 양상과 대비하여 고찰함으로써 그 의미가 분명해진다.

일반적으로 여성에 대한 연구는 그 분야 연구의 하위 변수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여성에 대한 의식적, 무의식적 무시, 외면은 그 나머지 분야의 연구를 불구로 만들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좀 더 완성되고 전체를 아우르는 진정한 근대 불교의 모습에 대한 이해를 얻기 위해서는 기존의 한국 불교사 연구에서 배제되었던 여성에 대해 연구하고 밝히는 일이 필수불가결한 일이 된다.

한국 불교여성 연구에서 또 하나의 장애가 되는 것은 기록의 부재, 부실 문제이다. 일반적으로 불교 자체가 수도자의 일상적인 삶이나 개인사 기록에 무관심한 것에 더하여, 특히 여성들의 일상적인 삶과 기록, 그들의 수행 이력은 더더욱 생략되고, 멸실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서 그나마 근대 시기에 들어 비구니들 자신들을 중심으로 계보를 찾아 기록하고, 구술이나 기타 방법으로 선사(비구니)들의 기록을 찾아 전승하고 편찬 발간하려는 노력들이 점점이 일어났다.

이러한 악조건 하에서의 연구를 통해서, 저자는 한국 근대 불교사에서 여성을 중심으로 서술하는 새로운 종류의 정합적인 역사를 구성해 보고자 새로운 방법론, 근대사를 새롭게 보는 시각을 제창했다. 근대 시기 불교 여성의 특징은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비구니 지도자들의 근대적 행보는 전대미문의 사회적 격동과 식민지 치하라는 이중의 과제와 더불어 시작된다. 이러한 대내외적 도전에 응전할 힘을 갖추기 위하여 비구니들은 오랫동안 방치되어 온 자신의 수행 전통의 회복을 추구하는 방편으로 선방을 시설하고, 불교 경전의 연구와 교육의 장을 설립해 나갔다.

둘째, 신여성으로 분류되는 근대 초기의 여성들은 저술 활동을 통해 불교의 세계를 표현했다. 또 이들은 사상적 기조를 가지고 불교여성 단체를 결성하고 조직화를 통해 근대적 동기를 실현하고자 했다. 이는 가능성과 함께, 불교계에 두텁게, 그리고 뿌리 깊게 자리한 여성 억압의 기조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한편에서는 재가 여성들의 신행 조직으로서 부인회들도 다양한 불교여성들의 의식 세계를 반영하며 활동의 장을 개척해 나갔다.

셋째, 근대기의 비구니와 여성들은 자신의 삶을 회고하면서, 능동적이고 자주적인 사유 그리고 자신의 존재에 대한 성찰을 시도했다. 이것은 그들의 현재의 삶을 규정짓는 조건을 탈피하고 향상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여성 평등을 외치는 목소리는 찾기 어렵지만, 우선 비구니로서의 현재 삶의 부조리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통하여, 그리고 자신이 처한 현재 삶의 모순성을 깊이 사유하면서 그 해결점을 모색해 나갔다. 여성에게 근대란 자신의 삶의 모순성을 주체적으로 사유하는 한편으로 그 과정 속에서 체험되는 부조리와 갈등을 극복해 나가는 이중적인 노력의 궤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사회의 급격한 변화와 함께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불교도 세속화의 도전에 처해 있다. 종교가 자본화되고 소모품이 되는 추세 속에서, 경제적 풍요와 물질적 안락이 종교 여성들을 해방시키는 방향으로 나가게 할지 아니면 오히려 종속시킬지도 과제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 불교계에는 아직도 여성의 신앙 행위를 기복적이고 미신적이며 비합리적이라고 해석하는 고정 관념이 강하게 깔려 있다. 그러나 여성 신행은 그 자체로서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 다른 사람의 권위, 특히 고승 등에 의해 자신의 종교적 정체성을 확인받기를 기다리는 피동성을 탈피할 필요가 있다.

근대기에 불교를 만났던 그들은 무척이나 억척스럽고 집요한 사람들이었다. 아무도 무명인 그들의 삶을 주목하거나 기록하거나, 나아가 그들의 삶의 의미를 분석해 재발견해 주지 않을 때 그들은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정립하고 이를 조직화해 나갔다. 그들이 뿌린 씨앗은 1970년대 불교여성의 약진 속에서 그 성과를 나타냈다.

여전히 한국 불교에서 불교여성의 문제는 깊은 화두에 잠겨 있지만, 숱한 고난을 헤치며 지나온 100년의 역사적 내공이 더해져, 오늘의 불교여성들의 새로운 단계로의 이행을 목전에 두고 있다. 불교여성들의 지위와 역할이 뚜렷이 조명되고, 그것이 오늘의 불교를 새롭게 하는 데 초석으로 활용되는 날이 한국불교의 새로운 도약, 그리고 한국종교와 한국사회의 새로운 근대 개화의 날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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