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행복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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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행복을 찾다
  • 장승구 세명대학교·한국철학
  • 승인 2022.07.31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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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말하다_ 『다산, 행복의 기술』 (장승구 지음, 커뮤니케이션북스, 120쪽, 2022.06)


  

이 책은 다산 정약용(1762~1836)이 유배지의 고통 속에서 어떻게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행복을 실현하였는지를 파헤치고 있다. 다산만큼 유명한 조선의 인물도 별로 없지만 다산만큼 인생에 굴곡이 심한 경우도 많지 않다. 다산의 삶은 롤러코스터처럼 기복이 컸다. 실학의 집대성자로서의 명성 뒤에 그의 삶은 영광과 비참이 공존하였다. 그는 정조대왕의 총애를 한 몸에 받던 유망한 정치인에서 하루아침에 죄인이 되어 취조를 당하고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가까스로 살아남아 유배 길에 오른다. 몇 년이 지나면 풀릴 줄 알았지만 무려 18년이나 되는 긴긴 세월을 유배지에서 보냈어야 했다. 그는 기나긴 유배생활 동안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았을까? 그는 자신의 처지를 불행하게 생각하였을까? 다산은 학자로서만 대단한 것이 아니라 고난을 견뎌내고 괴로움을 즐거움으로 바꾸는 삶의 기술에서도 뛰어났다. 그의 삶은 위기에 처해 실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다시 일어나게 하는 지혜와 용기를 준다. 많은 사람들이 다산을 좋아하는 것도 이런 점이 무의식적으로 작용하는지 모른다. 이 책은 다산이 어떻게 자신의 불행과 고통을 이겨내고 행복한 삶을 가꾸었는지 그리고 그의 행복의 철학은 무엇인지를 탐구하고 있다.  

 

                                                             강진에 있는 다산 초당

유배지에서 처음에는 자신의 신세를 비웃고 개탄하던 다산은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그동안 벼슬하느라 하고 싶어도 못했던 학문연구를 할 수 있도록 하늘이 자신에게 기회를 주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였다. 이렇게 긍정적 생각을 갖자 유배생활 속에서도 행복이 보였다. 심오한 『주역(周易)』을 탐구하여 세상의 변화 법칙과 화(禍)와 복(福)의 이치를 깨달으면서 삶을 새롭게 보는 여유가 생겼다. 모든 것은 변한다. 화가 복으로 바뀌기도 하고 복이 화로 바뀌기도 한다. 마음가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미래는 희망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숨겨진 주역의 이치를 밝히고 사서(四書: 논어·맹자·대학·중용)의 이치도 새롭게 탐구하였다. 인문 고전의 연구는 그 자체로 최선의 자기 치유 방법이기도 하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유배의 고통은 연구와 창작의 기쁨으로 바뀌었다. 궁벽한 시골의 아이들을 모아서 가르치는 것도 유배지에서의 즐거움과 보람 중에 하나였다. 강진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 풍광은 다산에게 청복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을 주었다. 

    유배지에서 다산이 쓴 시  '혼자 웃다'

다산은 행복을 화려한 열복(熱福)과 맑고 그윽한 청복(淸福)으로 구분한다. 열복이란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부귀영화를 누리는 세속적 행복이다. 높은 벼슬하는 사람은 열복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열복은 오래 가기 힘들고 원한다고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열복에 비해서 청복은 오래갈 수 있고 원하면 어렵지 않게 누릴 수 있다. 청복은 높은 벼슬이나 많은 재산이 있어야 누리는 것이 아니다. 서재에 읽을 책이 있고, 자연 속에서 자유를 누리며 예술과 취미를 즐기고, 가끔 더불어 함께 마음속을 터놓고 이야기할 사람이 있으면 된다.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청복을 꿈꾸지만 정작 실제로 청복을 누리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한다. 모두들 세상살이에 바쁘고 부귀를 추구하느라 청복을 누릴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다산도 20대 후반부터 10여 년간 벼슬을 하면서 열복을 누렸다. 그러다가 유배를 가서부터는 열복 대신 청복을 누리게 된다. 전남 강진의 유배지에 가보면 좁은 초당에 다산이 작은 연못을 만들고 조경을 하고 차를 달여서 마시던 흔적이 있다. 학문을 할 수 있는 서적이 있고, 주위에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이 있고, 때로 대화를 나눌 스님이나 제자가 있었으니 그것으로 다산은 청복을 누릴 수 있었다. 

다산이 누렸던 청복을 오늘 우리도 누릴 수 있을까? 청복은 반드시 많은 돈과 풍부한 시간이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고, 음악이나 미술 같은 예술과 취미를 즐기며, 주위의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할 마음의 여유가 있고, 삶의 고락을 이야기로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으면 되지 않을까? 청복은 사회적 인정이 필요하지 않다. 물론 최소한의 생계 수단은 있어야 하지만, 마음가짐을 어떻게 갖느냐가 중요하다.

인간은 자신의 본성을 따를 때 행복하다. 다산에 따르면 인간의 본성은 선을 좋아하고 악을 부끄러워한다. 하늘이 부여한 선한 본성을 따를 때 내면의 양심에서 만족을 느끼고 깊은 희열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므로 도덕적 본성에 따라 도심(道心)이 이끄는 대로 인과 의를 실천하는 것이 참된 행복이라고 할 수 있다. 다산의 철학에서 행복과 도덕은 불가분의 깊은 관계가 있다.     

고락상생(苦樂相生)! 괴로움은 즐거움을 낳고 즐거움은 괴로움을 낳는다. 괴로움은 즐거움의 뿌리이고 즐거움은 괴로움의 씨앗이다. 예컨대 반가운 벗을 만나는 것은 즐겁지만 그런 벗과 헤어짐은 사람을 괴롭게 한다. 이것이 즐거움이 괴로움을 낳는 것이다. 그러다가 다시 벗을 재회하게 되면 괴로움이 또 즐거움으로 바뀌게 된다. 이처럼 괴로움과 즐거움은 서로가 서로를 낳는다. 그래서 다산은 지금 괴로워도 앞날의 즐거움을 생각하며 너무 괴로워하지 말고, 지금 즐겁다고 또 너무 좋아하지만도 말고 심리적으로 일정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정본 여유당전서

다산은 청복을 즐기면서도 가장으로서 몰락한 가정을 재건하는 데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유배지로 자식을 불러와서 교육을 시키는가 하면 자식과 부인에게 농사짓는 방법을 알려주어서 가정경제를 복구하는 데도 힘썼다. 또한 자신이 가장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으면서도 더 어려운 조건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민초들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법과 제도의 개혁 방법을 탐구하였다. 그래서 나온 것이 유명한 『목민심서』 · 『흠흠신서』 · 『경세유표』이다. 그는 개인적 행복만이 아니라 공공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갈고 닦은 학문적 역량을 총동원하였다. 

청년시절 천주교를 가까이 했던 죄 아닌 죄로 삶이 나락에 떨어져서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기나긴 유배생활을 하였지만 어떤 시련도 다산에게 행복을 빼앗아가지는 못하였다. 그는 어떤 조건이나 처지에서도 주어진 상황에 맞는 행복을 창조하고 누렸다. 다산 정약용은 그를 유배가게 만든 사람들보다 더 위대한 업적을 남기고 더 많은 청복을 누리면서 자신의 원대한 자아실현을 성취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 책은 다산의 고난에 찬 삶과 그것을 극복하고 행복에 이르는 길을 분석하고 있다.              


장승구 세명대학교·한국철학

세명대학교 교양대학 교수. 서울대를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철학사연구회 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한중철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다산 정약용을 비롯한 조선시대 사상가의 철학과 윤리사상을 주로 연구했다. 삶의 지혜로서의 철학에 대해 탐구하고 있으며, 한중일의 사상과 문화의 같고 다름을 비교하는 데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조선을 움직인 철학자들』, 『철학과 삶의 지혜』, 『다산, 행복의 기술』 『정약용과 실천의 철학』 외 다수의 공저와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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