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의 변용과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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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의 변용과 실천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2.07.24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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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연단 강의]

■ 열린연단 〈자유와 이성〉 제14강_ 박수형 서울특별시의회 입법조사관의 「자유주의의 변용과 실천」


네이버문화재단의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아홉 번째 시리즈 ‘자유와 이성’ 강연이 매주 토요일 서울의 네이버 스퀘어 종로에서 진행되고 있다. 자유는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자기실현의 원리라고 할 수 있으며, 그간 인류가 걸어온 길은 자유 실현을 위한 투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합리성의 증대는 자유의 신장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여섯 섹션 총 44강으로 구성된 이번 시리즈는 고전 시대로부터 근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자유 담론을 검토함으로써, 자유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확장하고 미래 사회를 위한 새로운 비전을 열어보고자 한다. 자유의 이념과 지향에 관한 동서양의 지적 자산을 통시적으로 고찰하는 두 번째 섹션 ‘자유와 민주주의: 역사와 전개’ 제14강 박수형 박사(서울특별시의회 입법조사관) 강연의 서론과 결론 중 일부 내용을 발췌 소개한다.

정리   편집국
사진·자료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자유주의의 변용과 실천


박수형 박사는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민주 정치의 퇴행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자유주의가 “대안 모색을 위한 이념적 자원 가운데 하나로 보인다”라고 이야기한다. 그 이유로는 자유주의 탐구가 우선 “보편적 가치와 이상의 관점에서 현재 우리 사회의 문제를 조명하는 데”에, 그리고 “현재의 민주주의 위기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며, 좀 더 구체적인 차원에서는 한국의 “강력한 국가(주의)의 문제를 이해하고 개선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즉 자유주의가 “지난 두 세기에 걸쳐 나타난 여러 변이 내지 발전에도 불구하고 국가, 즉 공적 권력의 절대성과 자의성을 제어하는 ‘제한 정부(limited government)’를 근본 원리로” 하고 있는 만큼 “한국 사회에서 바람직한 국가 역할과 국가-시민사회 관계를 찾는 논의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 아래 “미국의 대표적인 정치 이론가이자 진보적 지식인인 마이클 왈저(Michael Walzer)의 저작을 중심으로 이념적 자원으로서 자유주의가 가진 한계와 잠재력”을 살펴본다. 이를 위해 왈저가 “자유주의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그것이 “좌파 마르크시즘이나 우파 자유지상주의, 주류 자유주의론과 어떤 차이를 갖는지” 소개하고 “통속화된 자유주의론의 한계를 드러내는 여러 사례 가운데 하나로 숙의 민주주의의 문제”를 검토한다. 그에 이어 “자유에 관한 논의를 흔히 그렇듯 이념 명사 자유주의(liberalism)가 아닌 형용사 ‘리버럴(liberal)’로 이해하고 활용하는 방식의 의미와 효과를 설명”한 다음 “왈저의 이론이 한국 정치에 주는 함의”를 정리한다. 

 

지난 7월 2일, 박수형 박사가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자유와 이성>의 14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사진제공=네이버문화재단

1. 문제: 자유주의의 한계와 잠재력

이념이 지배하는 정치는 위험하다. 사람들은 이를 통해 공동체의 문제를 확인하고 해결하려 하지만, 그것은 때때로 너무 쉽게 교조화되거나 권력화되며 기대와 전혀 다른 결과를 낳곤 했다. 하지만 이념 없는 정치도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보수주의가 없었다면, 오랜 시행착오를 거쳐 확립한 전통과 관습으로 체제 안정을 도모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자유주의가 아니었다면, 하늘이 내렸다는 왕의 지위와 세습 신분의 위계를 폐지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노동자 참정권과 복지 국가의 이상도 사회주의 없이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이런 이념들의 각축 속에 민주주의가 만들어졌고 그런 각축 덕분에 민주주의가 유지ㆍ발전된 것 또한 잊지 말아야 할 일이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민주 정치의 퇴행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자유주의는 대안 모색을 위한 이념적 자원 가운데 하나로 보인다.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보편적 가치와 이상의 관점에서 현재 우리 사회의 문제를 조명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자유주의는 그 보편성의 토대 위에서 각각의 시대와 사회가 제기하는 서로 다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서로 다른 담론들을 제시해왔다. 이런 의미에서 자유주의는 정치 이념과 그 실천에서 흔히 나타나는 폐쇄적 사고와 특수주의적 편향을 극복하며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를 밝히고 개선하는 이념적 토대가 될 수 있다.

둘째, 자유주의 탐구는 현재의 민주주의 위기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돕는다. 자유주의는 법의 지배와 권력 분립, 재산권 보장과 자유 시장 등의 원리를 통해 시민 스스로의 통치를 의미하는 민주주의가 현대 사회에 안착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하지만 이런 자유주의적 원리가 현재와 같은 경제적 불평등 심화, 시민과 괴리된 엘리트 지배, 공동체의 분열과 파편화에 기여한 것 또한 사실이다. 왜 이런 모순이 나타났을까? 자유주의에도 분명 허점과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무엇이며 교정 가능한 것인지, 가능하다면 어떻게 할 수 있고, 불가능하다면 다른 어떤 이념을 찾아야 하는지는 당면한 위기 진단과 해법 모색에 필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좀 더 구체적인 차원에서 자유주의는 우리나라의 강력한 국가(주의)의 문제를 이해하고 개선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 자유주의는 지난 두 세기에 걸쳐 나타난 여러 변이 내지 발전에도 불구하고 국가, 즉 공적 권력의 절대성과 자의성을 제어하는 ‘제한 정부(limited government)’를 근본 원리로 한다. 이 점을 고려할 때 자유주의는 한국 사회에서 바람직한 국가 역할과 국가-시민사회 관계를 찾는 논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미국의 대표적인 정치 이론가이자 진보적 지식인인 마이클 왈저의 저작을 중심으로 이념적 자원으로서 자유주의가 가진 한계와 잠재력을 탐구하고자 한다. 왈저는 자유주의 정치의 한계뿐 아니라 역사적 성취도 인정하며, 다원주의, 관용과 포용, 도덕적 자율성 같은 자유주의의 중심 가치를 토대로 자기 주장을 개진한다는 점에서 넓은 의미의 자유주의 범위 내에 자리 잡은 이론가로 볼 수 있다.

왈저의 자유주의 논의는 그의 정치 이론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세 가지 관심사를 반영하고 있다. 첫 번째는 극단적 개인주의(radical individualism)에 대한 비판적 관점이다. 왈저에게 개인은 다양한 공동체와 사회 영역 속에서 자아를 형성하며, 그 속에서 개인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사회적 의미의 공유ㆍ해석ㆍ수정을 통해 도덕을 고취하고 정의를 구현하는 존재이다.

두 번째는 불평등에 대한 관심이다. 왈저는 현실 정치의 기준에서 보면 사회민주주의자다.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민주적 사회주의자 또는 자유주의적 사회주의자고, 미국식으로 말하면 좌파 자유주의자다. 그가 자유주의에 비판적인 이유는 극단적 개인주의와 함께 재산권, 시장의 자유 등을 신성시하는 통상적 의미의 자유주의로는 심화되는 불평등 문제를 효과적으로 다룰 수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은 과잉 이념에 대한 경계이다. 왈저는 전 세계 역사에 걸쳐 모든 것을 아우르는 전체론적(totalizing) 이념 내지 이론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류의 이념과 그에 기반한 옳음의 확신은 운동이나 정당에서는 활동가의 오만과 정파주의를 낳고 국가 단위에서는 권위주의나 전체주의로 귀결된다. 물론 사회 질서와 그 내적 모순을 이해하고 가능한 대안을 찾아 실현하는 데는 당연히 이론 혹은 이념 같은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은 좀 더 작은 범위에서 경험에 충실한 이론, 바로 지금 여기의 정의를 실현하는 데 기여하는 견실하면서도 유연한 이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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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결론: 자유주의 이해와 활용을 권함

왈저는 자유주의를 지도 속 경계 긋기로 설명했다. 그런 비유의 연장선상에서 자유주의 등을 포함한 이념을 지도 같은 것으로 생각해보면 어떨까? 이념은 가치와 이상을 기준으로 세상의 도덕적ㆍ지적 형세를 보여주는 지도이다. 정치에도 이념이 없으면 우리 공동체가 지금 어떤 가치를 위해 살아가며 어떤 이상을 지향하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래서 공동체를 이끄는 데는 어김없이 이념이 요구되지만, 큰 이념은 축척이 작은 지도라는 것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 지도는 대륙과 해양, 산맥과 큰 강, 나라와 도시가 어디 있는지 알려주지만, 목적지로 떠나는 우리 앞에 어떤 길들이 있고 어떤 장애물이 놓여 있는지 상세히 말해주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 소축척 지도만 믿고 무턱대고 앞서나가면 계곡이나 늪지에 갇혀 당황하거나 드넓은 들판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기 일쑤이다. 공동체가 처한 조건에 맞고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함께 걸을 만한 길을 찾아 나서려면, 좀 더 자세한 지도나 안내서뿐 아니라 함께 여정에 오른 이들의 지혜와 협력도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왈저는 최선의 정책보다 차선도 인정하는 정치에 주목했고 총체적 이념보다 작은 이론을 강조했는지도 모른다. 이념이란 지도는 높은 추상 수준으로 인해 늘 단순화의 위험을 안고 있다. 그에 반해 세상은 우리가 가진 이성으로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복잡하고 우연적이며 아이러니하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이념이나 이성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전혀 아니다.

자유와 평등은 인류 보편의 가치지만 실제 인간 사회에서는 상충하는 경우가 많다. 이 문제와 씨름했던 롤스는 무지의 베일과 원초적 입장이라는 가상적 조건을 활용해 누구나 동의할 만한 정의로운 사회 원리를 찾았다. 왈저의 접근은 롤스와 전혀 다르다. 왈저는 경계 긋기로 보장받는 각종 제도 영역의 자율성을 통해 자유주의에 내장된 개인주의적 편향을 극복하며 자유와 평등, 그리고 사회적 다양성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고 봤다. 또한 불평등의 완화에는 조직화와 동원 같이 갈등을 활용한 정치적 실천이 반드시 필요함을 강조하면서도 협상과 타협의 가치를 무시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자유주의의 주요 가치를 형용사 리버럴로 변형해 여러 이념적 실천의 독단성과 잔혹성을 제어하는 기제로 활용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왈저는 자유주의자일까, 사민주의자일까? 본인도 인정했듯이 자유주의를 진지하게 고려하는 사민주의자가 정답이겠지만, 사민주의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자유주의자라 해도 틀리지 않을 만큼 헷갈릴 때가 많다. 왈저의 동료였던 이스라엘 출신 철학자 아비샤이 마갈릿도 이런 혼란을 느꼈던 탓인지, 같은 질문의 제목으로 왈저의 지적 성취를 평가한 짧은 에세이를 쓴 적이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대목은 자유주의와 사민주의 비교인데, 그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자유주의자와 사민주의자는 공히 부자들의 돈을 거둬 빈자들에게 나눠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다만 전자는 그 돈을 주지도 받지도 않는 소득 구간에 있는 사람들인 반면, 후자는 자신도 돈을 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다른 구분도 있다. 자유주의자는 현실과 타협한 무정부주의자고, 사민주의자는 현실과 타협한 사회주의자다. 전자는 19세기의 특권적 보호무역주의에 대항해 자유무역을 옹호했지만 시장과 사회 안정을 위해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수용하게 되었고, 후자는 생산 수단의 공적 소유라는 이상에서 물러나 사기업과 공기업이 공존하며 복지 국가를 뒷받침하는 혼합 경제를 수용했다는 설명이다. 물론 이런 타협에는 그 나름의 고귀한 근거가 있다. 자유주의자와 사민주의자 모두는 민주적 수단을 통해 권력을 획득하겠다는 확고한 신념을 지녔고, 의회민주주의는 항시적인 타협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자유주의자와 사민주의자는 자본주의를 보는 관점도 다르다. 전자는 시장을 수요-공급을 조율하는 탁월한 기제로 보며 시장 교환에서 드러나는 자유를 높이 평가한다. 반면 사민주의자는 시장에 대해 훨씬 더 모호한 태도를 취하는데 그건 윈스턴 처칠의 민주주의에 대한 평가, 즉 지금까지 시도되었던 다른 모든 것들을 제외하면 최악의 조율 기제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마갈릿은 자유주의자와 사민주의자의 차이를 자유와 평등 중 어떤 가치를 더 중시하느냐로 판단하는 방법은 틀렸다고 말한다. 그가 보기에 양자는 모두 자유를 우선시한다. 다만 사민주의자에게는 ‘실질적’ 자유가 중요하며, 평등은 그런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이 글의 말미에서 자유주의와 사민주의 간의 비교를 소개한 이유는 왈저가 자유주의의 보편적 가치를 형용사 리버럴로 활용했듯이, 사민주의도 그렇게 활용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판단 때문이다. 엄격한 의미의 사민주의는 서유럽의 경험에 한정된 역사적 이념이자 실천이다. 그러나 사민주의에 포함된 실질적 자유와 평등에 대한 인식, 노동과 연대와 타협의 가치에 대한 존중, 사람들의 인격과 삶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 환경에 대한 적극적 고려는 자유주의의 그것만큼이나 보편적이고 도덕적인 요소들이다. 한국에서는 민주화 투쟁에 대한 자부심과 민주주의에 대한 확신이 강한 편이다. 하지만 그 민주주의가 자유주의적 가치와 연결되지 못하면 다수파의 전제 내지 포퓰리즘으로 나갈 수 있듯이, 사민주의적 가치 인식을 수용하지 못한다면 가난하고 힘든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에게 무의미한 것이 될 수 있다. 물론 형용사 소셜이 형용사 리버럴처럼 우리의 민주 정치를 안정시키며 풍부하게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며, 그 궁극적인 성패는 보통 사람들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차이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왈저는 자유주의에 관한 논의에서도 지식인의 역할은 지배적인 가치와 인식에 도전하는 것임을 보여주었다. 기존 자유주의 담론의 한계를 밝히는 방법으로 경계 긋기를 통해 자유주의 이해의 지평을 넓혔고, 자유주의가 범하기 쉬운 편향된 정치 인식에 대한 비판의 일환으로 숙의민주주의에 대한 이견을 통해 정치의 본질과 대안적 실천 방안을 다루었다. 최근에는 정치적 양극화와 민주주의 위기에 대한 인식 속에 여러 이념적 실천이 드러내는 도그마적 성향을 완화하는 방편으로 자유주의 가치를 활용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했다.

자유주의는 보편적이고 다성적이며 유연한 이념이다. 자유주의는 그 핵심 원리로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종교적 믿음의 자유를 인정할 때, 그것은 피비린내 나는 살육을 멈추게 하며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가져왔다. 개개인의 이성에 대한 믿음과 표현ㆍ결사ㆍ계약의 자유가 강조될 때는 봉건적 신분 질서와 절대 왕정을 무너뜨렸다. 개인의 재산 소유권과 경제 활동의 자유를 최우선에 둘 때는 신자유주의로 나타나 물질적 풍요와 함께 극심한 불평등을 가져왔다. 그리고 왈저가 제안했던 것처럼 사회경제적 평등과 다원주의를 증진하며 이념적 실천의 독단성을 제어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현재 우리 사회가 처한 조건에서, 동료 시민들이 공감할 만한 방식으로, 어떻게 자유주의를 이해하고 활용해야 할까?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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