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연구의 어려움과 평화개념 연구의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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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연구의 어려움과 평화개념 연구의 의의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07.19 0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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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개념 연구 | 정혁·김상덕·허지영·이성용 지음 | 서보혁·강혁민 엮음 | 모시는사람들 | 304쪽

 

이 책은 평화 구축의 출발점인 평화개념을 다각도로 탐색하고 정의한다. 평화의 현실적인 필요와 보편적으로 평화를 추구해 온 인류 역사로 말미암아 누구나 평화를 말하고 이해할 수 있지만, 다양하고 대립적인 이해가 상충하는 현대 분쟁 사회에서 그만큼 단순하게 정의내릴 수 없는 것이 평화개념이기도 하다. 한 공동체 또는 국가의 평화가 전 세계의 평화 또는 이해관계에 깊숙이 연계된다는 점은 평화 개념의 다양성, 다층성, 다면성을 이야기하는 하나의 이유가 된다. 평화가 가장 요구되는 분단 한반도에서 역설적으로 온전한 평화개념을 수립하고 전파하기는 큰 장애에 봉착한다. 

이 책은 전 세계의 평화학 연구 동향, 사례별 평화 정책 등을 종합 검토하고, 국내의 평화학 논의 과정 및 평화를 위한 실천 등을 망라하여 각 부문별 전문가들이 적극적 평화, 정의로운 평화, 안정적 평화, 양질의 평화, 포스트 자유주의 평화, 해방적 평화, 일상적 평화, 경합적 평화, 통일평화 등 9개 범주에 걸쳐 평화개념을 탐색한다. 

한반도는 70년째 분단 상태에서 상호 갈등과 충돌을 방지하고, 통일을 지향해 가기 위하여 ‘평화’에 관한 논의와 실천적인 노력을 지속해 왔다. 한반도의 평화 구축을 위한 노력에는 남과 북의 양 당사자 사이의 화해와 갈등의 교차만이 아니라 이른바 남남갈등이라고 하는 내부 문제, 그리고 한반도 평화를 둘러싼 주변강국의 이해관계 등이 얽히면서, 분단 역사의 긴 시간만큼 그리고 지리적 공간적 변수의 복합성이 더해져서, 평화를 둘러싼 다양한 견해가 상호 충돌하고 교섭하며 그야말로 “알면서도 모를 것”이 되어가고 있다.

여기서 다시 평화 문제에 관한 원점으로 돌아가서, 평화개념 그 자체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다. 평화개념의 다양성, 난해성은 평화 개념의 본원적인 추상성으로부터 비롯되기도 하지만, 평화개념 연구와 정립이 단일 학문의 과제가 아니라 융복합연구의 대상이라는 점도 작용한다. 이러한 주제에 충분히 접근하기에는 국내에서의 평화학 연구의 대내외적 조건이 녹록치 않은 현실에서, 새로운 진로와 활로를 개척하는 과제까지 주어졌다고 할 수 있다. 평화개념 연구는 단순히 그 개념이 형성되고 변용되어 온 과정에만 주목하는 평화개념사 연구와 다르다. 평화개념 연구는 그 개념의 정향과 내용, 그리고 그 개념이 등장하고 변용되는 시대적 요구, 현실적인 조건들을 더 깊이 살핀다. 이는 평화개념 연구가 지극히 현실적이며 실천적인 연구가 될 수밖에 없음을 적시한다.

이 책에서는 3부에 걸쳐 모두 9개의 평화개념을 다룬다. 1부는 ‘지속가능한 평화’라는 범주에 속하는 4개의 평화개념, 2부는 ‘포스트-자유주의’라는 범주에 속하는 4개의 평화개념, 3부는 한반도 맥락에서의 평화개념(통일평화)을 다룬다. 이들 개념의 해설은 각 평화개념 사이의 상관성을 비교할 수 있도록 구조적으로 통일성을 기하여 (1) 각 평화개념의 등장 배경과 전개 (2) 개념의 의의와 특징 (3) 인접 평화개념과의 관계 (4) 한반도 평화에 주는 함의 등의 체제로 전개했다.

제1부는 평화담론 내지 평화추구에서 가장 긴요한 관건이 되는 ‘평화의 지속가능성’이라는 범주로 묶일 수 있는 4가지 평화개념 - 적극적 평화, 정의로운 평화, 안정적 평화, 양질의 평화 - 을 논구한다.

제2부는 지난 수십 년간 ‘평화조성 - 평화유지 - 평화구축’으로 정식화되어 온 자유주의 평화 모델의 한계를 비판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고안된 ‘포스트-자유주의’ 평화 모델에 이론적 기반을 둔 4개의 평화개념 - 포스트-자유주의 평화, 해방적 평화, 일상적 평화, 경합적 평화 - 을 소개한다.

마지막 ‘통일평화’ 개념은 이상의 8개의 평화개념을 ‘분단’이라는 한반도 특수 상황을 적극 반영한 제안적인 성격의 개념으로, 이를 통해 추상적인 것에 흐를 수 있는 평화개념이 살아 있는 현실과 만났을 때 어떤 함의를 줄 수 있는지를 검증해 나간다. ‘통일평화’는 당연히 ‘평화통일’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철학과 방법 그리고 목표를 갖는 개념이다. 통일평화의 상대어는 ‘전쟁’이나 ‘분쟁’이 아니라 ‘분단폭력’이다. 명시적인 분쟁과 전쟁 상태가 아니라도 분단 그 자체로 말미암아 야기되는 폭력적 상황이 ‘분단폭력’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통일평화’에 위협이 되는 것은 ‘분단평화’이다. 이는 통일을 지향하는 대신 분단 현실의 안정화와 고착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극단적인 것은 ‘통일폭력’이다. 이 또한 ‘분단폭력’과 마찬가지로 통일을 빌미로 하여 전쟁이나 혹은 그에 준하는 저강도 폭력을 지속적으로 야기하거나 조장하거나 강제하는 상황을 말한다. 이 모든 폭력적 상황에 대응하여 ‘통일평화’의 개념이 등장한 것이다. ‘통일평화’ 개념은 여전히 형성 도정에 있으며, 그만큼 취약하기도 하고, 또 그만큼 가능성과 역동성이 높은 개념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나머지 8개의 평화개념과 통일평화 개념은 상보적인 관계를 이루며 서로가 서로의 존재 이유가 되며, 서로가 서로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배경이 되어 준다. 통일평화는 한반도의 특수성에 기반하면서도, 인류 보편가치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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