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도 새뮤얼슨과 프리드먼의 시대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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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도 새뮤얼슨과 프리드먼의 시대를 살고 있다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07.11 06: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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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뮤얼슨 vs 프리드먼 | 니컬러스 웝숏 지음 | 이가영 옮김 | 부키 | 552쪽

 

현대 경제학의 아버지 폴 새뮤얼슨과 자유주의 경제학의 거두 밀턴 프리드먼의 대결을 다룬 경제학 논쟁사다. 1966년 두 사람이 《뉴스위크》 칼럼을 번갈아 가며 기고하기 시작하며 불붙은 이 대결이 이후 1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이어질 것이라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닮은 듯 다른 두 사람의 개인사에서부터 좁혀지지 않는 학문적 대립에 이르기까지, 첨예하게 맞섰던 두 천재 경제학자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담겼다.

2008년 금융 위기와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다시 한번 전 세계적 경제 위기를 맞이한 지금, 현대 경제학의 지형을 형성해 온 두 거장의 사상을 이해함으로써 미래의 변화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경제학적 패러다임의 단초를 찾을 수 있다.

폴 새뮤얼슨과 밀턴 프리드먼은 20세기 후반 주류 경제학을 대표하는 두 거장이다. 각각 ‘신고전파 종합’과 ‘통화주의’의 대표 주자로서 경제학을 양분한 것은 물론, 정치적으로도 좌우 각각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두 사람은 인플레이션의 원인과 해결책 같은 현안은 물론, ‘정부는 시장에 얼마나 개입해야 하는가’라는 오래된 경제학적 쟁점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20대 초반부터 서로를 알고 있었던 새뮤얼슨과 프리드먼 사이의 본격적인 대결은 1966년 두 사람이 주간지 《뉴스위크》에 번갈아 가며 칼럼을 기고하면서 시작되었다. 새뮤얼슨과 프리드먼의 싸움은 지면을 통해서만 1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이어졌다.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상대와 논쟁하는 것은 새뮤얼슨과 프리드먼 둘 다에게 즐거운 경험이었고 좋은 자극이 되었다. 두 사람은 독자의 관심과 인정을 얻기 위해 경쟁하며 좋은 글을 써 냈다. 두 사람의 칼럼은 전국적인 정치 대결로 발전했고 지지자들은 좌와 우, 진보와 보수, 기존의 정설을 지지하는 쪽과 그에 도전하는 쪽의 두 집단으로 뚜렷이 나뉘었다. 둘은 매주 칼럼을 연재할 때마다 언론의 관심을 받는 연방 정부의 경제 정책 현안에 대해 다루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칼럼이 쌓일수록 두 사람의 글에서는 경제에 대한 관점 차이를 넘어선 세계관의 차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인플레이션의 원인과 해결책에 대한 논쟁은 경제 사상을 둘러싼 이들의 기나긴 논쟁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1960년대 말, 서구 세계의 물가가 빠르게 높아지기 시작하면서 두 사람이 가진 사상의 차이는 더욱 뚜렷이 드러났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20년 동안 안정적으로 유지되던 미국의 물가 상승률이 치솟기 시작했다. 급격한 물가 상승으로 사회가 불안정해지자 정치인들은 경제학자들에게 인플레이션을 멈출 방안을 묻기 시작했다.

케인스주의자들은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원인을 경제가 성장하면서 수요가 증가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과 함께 경기 침체 현상도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하자 케인스주의자였던 새뮤얼슨은 그 원인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었다. 더욱이 1960년대 말 시작된 인플레이션은 1970년 4%대의 물가 상승률이 10년이 지난 후에는 12%대까지 오르는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이어졌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세계 경제의 이론과 실제를 지배해 온 케인스주의가 처음으로 약점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새뮤얼슨은 인플레이션을 해결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은 없다면서도,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세율을 올리거나, 정부 지출 비율을 줄이는” 두 가지 방법을 제안했다. 세 번째로 제시한 방책이 통화 정책이었다. 연준이 이자율을 높이면 경제의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것이다. 물가 상승률과 고용률이 모두 높은 상태에서 높은 이자율은 기업 활동을 늦추는 역할을 했다. 통화 정책은 재정 정책을 중요시하는 케인스주의에 반대했던 프리드먼이 주장해 왔던 방법이었다.

반면, 프리드먼은 “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서나 화폐적 현상이다”라는 신념을 고수해 왔다. 즉, 통화와 인플레이션은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으며, 통화량을 경제의 성장 속도보다 빠르게 증가시키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1970년대 들어 미국뿐 아니라 선진국의 물가 상승률이 크게 높아지면서 정치권이 인플레이션 억제에 초점을 맞추자, 상황은 프리드먼에게 유리해졌다. 중앙은행이 화폐 공급량을 통해 경기를 조절해야 한다는 통화주의 이론 자체가 물가가 왜 급격히 오르는지 설명하고 물가의 지나친 상승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이론이었기 때문이다.

프리드먼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해법으로 연준 이사들의 재량권을 없애고 미리 정한 준칙에 따라 통화 정책을 펼 것을 제안했다. 그는 이렇게 하면 물가가 조금씩 안정적으로 상승해 기업 환경의 확실성이 높아진다고 믿었다. “통화량이 안정적으로 증가하면 신용 환경이 좋아져 독창성, 창의성, 근면, 절약 등 기저에서 기업 활동을 촉진하는 힘들이 효과적으로 작동하게 됩니다. 지금의 지식 수준으로는 이것이 통화 정책에 기대할 수 있는 가장 큰 효과입니다.”

케인스주의자 폴 새뮤얼슨(1915~2009·왼쪽)과 통화주의자 밀턴 프리드먼(1912~2006)은 평생의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다. 사진=부키 제공<br>
케인스주의자 폴 새뮤얼슨(1915~2009·왼쪽)과 통화주의자 밀턴 프리드먼(1912~2006)은 평생의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다. 사진=부키 제공

주제가 무엇이든 프리드먼과 새뮤얼슨의 의견 차이가 비롯된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결국 30년 전 케인스와 하이에크 사이의 분열을 만나게 된다. 당시 두 사람, 그리고 경제적 좌파와 우파를 가르던 의견 차이의 핵심에는 다음 질문이 자리하고 있었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야 하는가? 정부 개입은 의도한 효과를 거둘 수 있는가? 오랜 논쟁에도 불구하고 새뮤얼슨과 프리드먼의 근본적인 시각 차이가 좁혀지지 않았던 이유는 논쟁의 근저에 경기가 안 좋을 때 정부가 시장에 개입할 수 있는지, 또는 개입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 차이가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51년 새뮤얼슨은 자신의 ‘신고전파 종합’ 이론을 처음 선보인 논문 「현대 재정 정책의 원칙과 규칙: 신고전파 종합」에서 자연적 경기 변동에 제대로 대응해 실업률을 최소화하려면 공공 지출 정책과 조세 정책을 적절히 조합해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새뮤얼슨은 화폐의 역할이나 중앙은행의 통화량 조절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는데, 정부 주도의 재정 정책에서만 경기 변동에 대한 해답을 찾고 통화 이론을 배재한 결정은 그가 통화주의자 프리드먼과 근본적인 의견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었다.

새뮤얼슨은 정부가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었고, 시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재정 정책을 쓰는 것에 전혀 잘못이 없다고 생각했다. 반면 프리드먼은 자유 시장의 힘이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의 사상은 권력자 앞에서도 결코 힘을 잃지 않을 정도로 확고했다. 

자유 시장 자본주의 체제에서만 정치적 자유가 보장된다고 믿었던 자유 지상주의자로서 프리드먼에게 사회주의는 혐오스러운 개념이었다. 그는 국가가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 모든 일은 의도가 좋더라도 사회주의적 행동이자 자유 시장을 방해해 경제 성장을 저해하는 행동으로 여겼다. 또한 정부의 간섭에서 벗어나는 것이 모든 시민의 권리이며, 자유 시장의 힘이 정부보다 우위를 차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케인스의 경제 처방을 받아들여 정부 부문을 키우면서부터 미국 경제가 망가졌다고 주장했다.

이 책은 폴 새뮤얼슨과 밀턴 프리드먼 사이에서 벌어진 세기의 대결을 흥미로운 일화와 풍부한 레퍼런스를 통해 보여 준다. 그 자체로서 경제의 현황과 미래에 대한 전망이자 대중이 경제를 이해하는 방식에도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20세기 후반의 굵직한 경제적 이슈와 정치적 사건을 바라보는 데도 도움이 되는 입체적인 시각을 제공한다.

2008년 금융 위기를 계기로 새뮤얼슨과 프리드먼 사이의 뿌리 깊은 논쟁은 다시 시험대 위에 올랐다. 2020년 코로나19로 다시 한번 전 세계가 경제 위기에 빠졌을 때도 이 논쟁은 여지없이 계속되었다. 정부가 시장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선은 어디까지인가? 경기 부양을 위해 정부는 어떤 정책을 펴야 하는가? 물가와 실업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은 무엇인가? 위기에 처한 금융 기관이나 사적 기업을 정부는 구제해야 하는가, 내버려 둬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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