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복에서 부채까지, 패션으로 읽는 근대 동아시아의 시각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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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복에서 부채까지, 패션으로 읽는 근대 동아시아의 시각문화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07.11 06: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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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션, 근대를 만나다: 아시아의 근대와 패션, 정체성, 권력 | 변경희·아이다 유엔 웡 외 12명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612쪽

 

‘패션’이라는 시각 매체를 통해 근대 동아시아의 역사와 사회경제상, 대중문화, 예술까지 폭넓은 영역을 상세하게 풀어낸 책이다. 특히 이 책은 서구 열강과 만나면서 전통 복식에서 서구식 복식으로 급격한 변화를 맞이한 동아시아의 근대 시기를 다룬다. 현대인과 마찬가지로 근대 아시아인들도 패션을 통해 내면의 목소리와 정체성을 표현했다. 패션을 깊이 탐구하면, 정치사보다도 더 실제적인 당시의 사회상을 가늠할 수 있다. 

집필진은 동아시아의 근대 패션을 한 권으로 집대성하는 작업을 위해 세계 각국의 전문가 14인 - 한국인 3명, 중국인 5명, 일본인 4명을 비롯해 영국인과 인도인 각 1명 - 으로 구성됐다. 한중일 연구자를 넘어 근대 동아시아의 패션을 연구한 다양한 국적의 저자들은 글로벌한 시선으로 근대 동아시아의 패션을 조망한다. 이처럼 근대 패션에 대한 최신 연구를 담아낸 이 책에서 집필진은 저마다 독창적인 방법론을 활용해 패션에 투영된 정치와 사회, 문화적 담론들을 자세히 밝혀냈다. 

패션에 의도를 담는 행위는 오늘날 일상생활에서도 빈번하게 나타난다. 근대 한국에서는 서양 복식을 받아들인 시기와 수용 태도에 남녀 간 차이가 존재했다. 그 이유는 옷과 액세서리를 비롯한 패션이 사람들에게 그저 몸을 치장하는 행위가 아닌 어떤 의미가 내포된 것으로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람들이 의복 한 벌, 액세서리 하나로 백 마디 말을 대신했다면, 패션을 탐구하면 어느 면에서 정치사보다 더 실제적으로 특정 시기를 파악하고 가늠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 책은 바로 이 점에 착안해 패션을 깊이 있게 분석함으로써 당시 역사와 국가 권력, 사회경제상과 대중문화를 상세하게 풀어낸다. 지금까지 시각 자료를 활용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었으나, 일국적 관점에서 벗어나 한중일을 함께 조망한 책은 없었다. 

아시아의 여러 나라, 특히 한중일은 서양의 침략과 근대화 요구를 맞닥뜨린 상황에서 나라의 주권을 지키고 자생적 근대화를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 험난한 여정은 복식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서양 열강과 조우한 근대 동아시아 국가에서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서양식 제복을 도입하면서 동시다발적으로 복식개혁이 일어났는데, 여기에는 새로운 복식으로 국가의 지향점을 표출하고자 했던 의도가 내재되어 있었다. 한중일 3국이 서양의 복식을 수용하는 과정은 비슷하면서도 각국의 사정에 따라 다르게 전개되었는데, 이 책은 그 과정을 세밀하게 들려준다.

제복 이외에 액세서리와 직물을 통해서도 당시의 시대상을 읽어낼 수 있다. 중화민국 시기 유행하던 여성용 부채에는 당시 새롭게 등장한 여성 유형인 사교계 여성의 정체성 고민이 녹아 있으며, 근대 시기 서양에서 수입되어 사랑받은 모직물을 통해서는 각국 도시인의 생활과 소비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일본의 종교 지도자와 문화계 인물들, 타이완과 홍콩 여성들이 선택한 의복 양식은 격변하는 시기의 사회상을 들려준다.

제복에서 부채까지, 당시 유행하던 패션의 구체적인 모습을 200여 개의 도판과 함께 생생하게 들려주는 이 책은 근대 동아시아의 패션 문화를 시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었던 근대 동아시아의 역사를 새롭게 해석하게 한다. 거대한 정치사 이면에 펼쳐진 패션의 역사를 통해 근대 동아시아의 역사가 더욱 촘촘하게 이해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겉으로 보이는 복식에 숨겨진 정치적·사회문화적 맥락을 읽어내기 위해 각 장의 필자들이 활용한 독창적인 방법론은 연구자들에게 이 시기를 조망하는 데 필요한 새로운 영감을 제공한다.

책의 구성은 전체 책의 내용을 소개한 1장 「패션, 근대를 외치다」에 이어 ‘의복과 제복’, ‘장신구’, ‘직물’, ‘의복 양식’을 다룬 총 4개의 부로 이루어져 있다. 개인 차원에서부터 사회와 국가에 이르기까지, 패션에 투영된 중층적 의미를 깊게 들여다본 이 책은 우리가 입는 것이 권력이자 욕망이요, 정체성이자 사회의 단면임을 분명하게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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