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의 힘은 식지 않는 호기심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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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힘은 식지 않는 호기심에서 나온다”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07.11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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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 발견의 기쁨: 우연처럼 다가와 필연처럼 빠져든 | 정민 지음 | 태학사 | 412쪽

 

조선 지성사의 전방위적 분야를 탐사하며 옛글에 담긴 깊은 사유와 성찰을 우리 사회에 전하고 있는 정민 교수가 흥미를 자아내는 문헌부터 학계를 놀라게 할 보물까지, 그동안 발견하여 연구한 자료들에 관한 논문 16편을 이 책에 담아 출간했다.

저자는 서문에서 자신의 공부 인생이 고전 자료들과의 “만남에 대한 반응과 접속의 과정”이었다고 밝히면서, 이는 “우연의 외연을 빌린 필연의 운명 같은 것”이었으리라고 말한다. 예컨대, 스승의 댁에 오래 전해 오던 필첩을 무심히 받았는데 그것이 사도세자의 친필이고, 그 스승들의 편지를 합첩한 특별한 문서임을 알게 된 경우, 동료 학자로부터 알게 된 책가도 그림 병풍 속에 소품으로 등장한 펼쳐진 책면에서 다산 정약용의 사라진 시편을 발견한 경우, 우연히 접한 화보(畫譜) 한 장에서 시작하여 백 년 전 중국 양주를 떠돌던 조선인 유랑 서예가 조옥파의 존재를 알게 된 경우 등이 그러하다.

또한 저자는 책 속에서 생각지 않은 정보와 느닷없이 맞닥뜨렸을 때도 마찬가지라고 하면서, 그것이 학계에서 오래 찾던 자료이거나, 또는 전혀 엉뚱하게 저자가 잘못 알려진 내용일 경우에는 “이 갑작스런 만남으로 인해 진행 중이던 일체의 작업을 멈추고 여기에 몰입”했다고도 한다. 『상두지』와 「상찬계시말」, 『치원소고』와 『치원진장』, 다산의 아들 정학유가 흑산도로 중부(仲父) 정약전을 찾아갈 때 쓴 기행문 「부해기」와 만났을 때가 그런 예에 해당한다.

3부로 구성된 이 책의 1부 ‘다산의 여운’에는 다산 정약용과 직간접으로 관련된 문헌과 자료를 다룬 5편의 글이, 2부 ‘자료의 갈피’에는 사도세자의 『집복헌필첩』, 이덕리의 『상두지』, 이덕무의 『영처집』 등 그 밖의 문헌을 통해 의미를 밝혀낸 7편의 글이, 3부 ‘인문의 무늬’에는 단양 사인암을 사랑했던 옛사람들, 남계우·석주명·정인보의 나비 이야기 등 현장이나 그림, 편편의 자료들을 다룬 4편의 글이 실려 있다.

리움미술관 소장 [호피장막책가도]에서 저자는 그동안 존재를 몰랐던 다산의 시 3편을 발견했다. 책가도 한가운데 펼쳐진 책 그림을 통해서다. 한 편은 「산정에서 대작하며 진정국사의 시에 차운하다(山亭對酌次韻眞靜國師)」이고, 나머지는 「산정에서 꽃을 보다가 또 진정국사의 시운에 차운하다(山亭對花又次眞靜韻)」라는 제목 아래 쓰인 두 편이다. 마지막 편은 절반인 네 구절만 확인이 가능하다. 저자는 이 시들을 한 글자 한 글자 판독하여 번역한 후, 이 시 끝에 쓰인 ‘자하산인’과 ‘다창’이 다산 정약용임을, 그리고 시 내용과 관련된 진정국사 천책이 다산과 각별했던 관계였음을 고증한다.

수원화성박물관 소장 『삼사탑명』과 『두륜청사』, 이 두 문헌의 학술적 의미를 처음으로 밝힌 것도 정민 교수다. 『삼사탑명』은 대둔사의 연담 유일-백련 도연-완호 윤우로 이어지는 법계의 정맥에 따라 세 승려의 탑명과 관련 자료를 추사 김정희, 다산 정약용, 정학연, 초의 등의 친필로 묶어 정리해 둔 귀한 자료다. 대부분이 문집에는 누락된 글이어서 자료적 가치가 크다. 『두륜청사』는 다산이 한집안 승려인 호의를 위해 친필로 써 준 호게(號偈)로, 역시 문집에 누락되고 없는 다산의 일문(逸文)이다. 이 자료들을 통해 저자는 대둔사 승려와 다산의 긴밀한 교유와 접촉 사실을 밝히고 있는데, 다산학 저변 확장에 매우 뜻깊은 자료라 할 수 있다.

『집복헌필첩』은 저자가 스승 박노준 교수 댁에 세배 차 갔다가 무심히 받아온 문헌으로, 이후 저자는 이 책이 사도세자의 친필 글씨와 그 스승들의 편지를 담은 보물과 같은 문헌임을 알아낸다. “관심은 단순한 흥미에서 급격한 흥분으로 바뀌었”고, 연구를 통해 이 책이 사도세자의 억울한 죽음을 애석해한 영남 남인들의 비분강개한 의식이 깔려 있고, 사도세자를 끝까지 지키지 못했던 신하들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사도세자의 원혼을 지켜 받든 증표임을 해설한다.

[연평초령의모도延平髫齡依母圖]는 박제가가 서양화법을 적용해 그렸다고 알려진 그림이다. 그러나 이제껏 이 그림에 관한 심도 있는 분석은 없었는데, 저자는 이 그림에 관한 다각도의 분석과 연구를 진행하여 결국 이 그림이 위작임을 증명해 낸다. 저자는 이 그림이 ‘중국 강남 지역 → 일본인 골동상 강도(江濤) → 경성제대 후지쓰카 지카시 교수 → 한표욱 유엔대사 →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국제적 유전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음을 밝히고, 더불어 화풍, 필체, 내용 등을 깊이 있게 분석한 결과 위작임을 고증한다.

19세기 말 중국 양주에서 활동한 조선인 서예가 조옥파를 추적하는 글은 흥미로운 과정을 보여 준다. 한중 지식인 간 필담 연구를 진행하던 중 맞닥뜨린 오우여의 『점석재화보』에 수록된 [이필대설(以筆代舌)]이란 한 점의 그림이 발단이었다. 그 그림 상단에 적힌 글에 ‘조옥파’가 등장한 것이다. 이후 저자의 관심은 ‘조옥파’로 쏠렸다. 국내와 중국 포털 사이트를 뒤져서 단편 자료들을 모으기 시작했고, 하버드대 옌칭연구소 방문학자로 머물면서는 도서관에서 『점석재화보』 원본을 모두 꺼내어 그 방대한 자료를 처음부터 하나하나 살펴 ‘조옥파’가 언급되는 그림 두 장을 더 찾아낸다. 그리고 뜻밖에, 중국 사인(士人) 장함중의 시집 『감회재분체시록(鑑悔齋分體詩錄)』 6권에 써 준 조옥파의 서문과 만나고, 『윤치호 일기』에 남은 조옥파에 관한 기록과도 접한다. 이렇듯 다양한 과정과 자료를 통해, 조옥파는 백 년 전 중국 양주 지역에 머물렀고, 이후 상해로 윤치호를 찾았으며, 다시 남경과 단강을 거쳐 양주에 머물며 인상적인 활동을 펼쳤던 인물이었음을 밝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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