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드넓은 동아시아의 영토를 밟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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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드넓은 동아시아의 영토를 밟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07.11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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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시아 서사와 한국소설사론 | 임형택 지음 | 소명출판 | 818쪽

 

15, 16세기의 전기소설부터 20세기 근대소설까지, 한국에서부터 동아시아에 이르기까지 서사양식의 발자취를 폭넓게 다룬 책이다. 한문학자인 저자는 “한문학은 한시·한문이 정통으로서 중심부를 형성하고 있다”고 말하며, 한문학도로서 한문 문헌에 담긴 사상이나 역사 문제에 대해서도 외면하지 않고 탐구했다. 또한, 소설은 한문학의 주변부에 속한 것이었음에도 한문소설에 관한 각별한 관심으로 소설사 전반과 그 서사적 역동을 연구했다. 그 결과 15세기의 『금오신화(金鰲新話)』로부터 20세기 초 근대문학으로의 대전환기에 이르는 한국소설의 ‘통사’가 탄생했다.

전체 6부와 끝의 보론으로 구성된 이 책은 총설에 해당하는 부분을 제1부에 배치하고 이하 5부로 나누어 한국소설사의 전개 과정을 다루었다. 각각의 과정을 대변하는 서사양식을 포착해서 고찰하는 방식을 취했다. 2부의 ‘전기소설(傳奇小說)’은 동아시아 한자권의 보편적 개념인 한편, 3부의 ‘규방소설’은 국문으로 쓰인 소설로서 우리 특유의 개념이다. 그런가 하면 4부의 ‘야담·한문단편’은 한문으로 쓰인 것으로 우리 특유의 용어와 보편적 용어를 결합시켜놓은 것이다. 여기에 역사적 전환기를 검토한 5부의 ‘20세기 전후 소설양식의 변모’를 거쳐 6부에서는 ‘근대소설’에 다다른다.

한자권에 있어서 소설(小說)이란 말은, 아주 이른 시기에 등장해서 오랜 기간에 걸쳐서 복잡한 굴곡을 통과해 지금의 개념을 정립한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소설 개념은 “내가 자의적으로 어디서 가져온 것이 아니고 한국은 물론 한자권에서 공히 써온 것임을 지적해 둔다”고 말한다. 한국에서 소설이란 문학양식이 본격적으로 성립하여 근대소설에 도달한 5백 년의 경로를 추구하면서도, 여느 소설사와 같이 시간 순으로 논의를 구성하지 않았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소설사의 체계적인 인식을 갖도록 의도한 것이다.

이 책은 문학사로서 문학의 사회사를 함께 검토했다. 작품은 작품 그 자체인 동시에 사회적 산물이며, 특히 한국의 경우 문학의 사회사는 어문생활의 역사와 깊은 연관이 있다. 한자문화권의 일부로 한문이라는 공동문어가 문학창작의 주류를 이루었고, 가창(歌唱)에 국한됐던 국문사용이 점차 그 영역을 넓혀 나갔고 이런 어문의 역사는 곧 사회사의 중대한 일부였다.

전기소설의 계통에 속하며 중국소설 『전등신화(剪燈新話)』의 직접적인 영향 아래 쓰인 『금오신화』를 논하면서도 저자는 영향관계를 추적하는 데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근래 국제화시대라고 하여, 교류·관계사 쪽으로 휩쓸리는 경향”에 일침을 가한다. “교류관계다, 비교론이다 하면서 작품읽기에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나’에 대한 사고까지 망각한 경우가 많은 것 같다”는 것이다. ‘방외인’ 김시습이 처한 개인적·역사적 정황에서 어떻게 『금오신화』가 『전등신화』에서는 볼 수 없는 비극성과 현실주의를 획득하는가를 설명한다. 동시에 중국에서 전기소설에 대한 문학사가들의 평가가 높지 않은 사실에 대해서도 독자적인 해석을 내놓는다.

또한 저자는 소설사의 실상을 해명하고자 했다. 근대소설로 넘어오기 이전 시기에는 언제 누가 지었는지 알 수 없는 다수의 필사본과 소수의 방각본 소설류들이 산재해 있다. 저자는 관련 자료가 희소한 가운데서도 실제 사실에 의거, 소설사의 체계적 인식을 도모했다. 발품을 팔아 자료를 발굴하는 것은 물론, 익명으로 되었거나 저술인의 신원이 특정되지 않은 경우에는 이를 소명하고자 노력을 기울였다. 시대상황과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세심히 조사하고 검토한 흔적이 책 곳곳에 역력하다.

문학유산은 원래 골동품이 아니다. 오직 독서 행위에 의해, 나아가 적극적 해석이 이루어짐으로써 존재 의미를 갖게 된다. 더구나 소설은 다른 문학의 장르에 비해서 현재성이 풍부하며 활용 가치도 월등하다. 저자는 “소설 고유의 성격을 ‘서사적 역동성’이라고 말한 것처럼, 하기에 따라서는 창조적 변용의 가능성이 거의 무궁무진할 것”이라 말한다. 이 책에서 펼친 소설사에서의 체계적 인식을 위한 논리는 우리 소설 작품들의 의미를 살려내서 창조적 부활이 이루어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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