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축소하거나 은폐하면 안 된다, 그러나 오랜 고통은 깨부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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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축소하거나 은폐하면 안 된다, 그러나 오랜 고통은 깨부수어라!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07.02 22: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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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자의 위로: 세네카의 문학적 글쓰기의 정수가 담긴 ‘위로 3부작’ |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지음 | 이세운 옮김 | 민음사 | 216쪽

 

세네카의 ‘위로 3부작’으로 유명한 『철학자의 위로』는 가족의 죽음이나 추방을 견뎌야 하는 이들을 위로하는 서간문이다. 

슬픔은 “스스로 새로워져 나날이 강해지고, 이제는 그 오래된 시간이 스스로 법칙을 만들어 그만두는 것이 추하다 여겨질 지경에” 이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자 세네카는 꽃길만 걸으라는 식의 공허한 위로를 남발하지 않는다. 단순히 ‘달래려고’ 하거나 결코 불행을 ‘축소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의 문장은 공허한 위로들의 모음이 아니라, 철학적 사유로부터 흘러나온 구체적인 조언들이다. 

현대의 뇌과학자들은 인간이 오랫동안 어떤 감정에 몰입해 있으면 그 상황에서 벗어난 후에도  자꾸 그 익숙한 감정으로 돌아가려는 성향이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미 고대 로마에서 세네카는 슬픔도 “불행한 정신의 왜곡된 쾌락인 고통으로 변모한다는” 것을 지적해 낸다. 그래서 “고통으로 스스로를 소진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결국 세네카는 스스로 크는 괴물처럼 오래되어 만성이 된 고통을 향해 이렇게 선언한다. “이제 나는 듣기 좋은 말로도, 부드러운 방식으로도 그처럼 오랜 고통을 공격할 수가 없어요. 깨부수어야 합니다”

세네카는 극한 고통을 이겨내도록 위로하는 방법으로, “상처를 불로 지지고 잘라내는” 것을 시도한다. 더 큰 시련들을 이겨낸 과거들을 회상함으로써, 지금 “상처투성이 몸에 생긴 상처 하나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이겨낼 수 있기 때문이다. 

“끝없는 고통에 몸을 맡기는 것은 어리석은” 애정이지만, “전혀 아파하지 않는 것도 비인간적인 냉혹함”이다. 인식론자들은 입을 모아 우리 생각이 지성, 감정, 의지 순으로 움직여야 올바르게 판단하게 된다고 말한다. 지식적으로 아픔의 강도와 한계가 어디까지여야 하는지 스스로 근거를 찾을 때, 비로소 우리의 감정이 과도하지 않으면서 애도와 아픔을 통과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철학자의 위로가 필요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 앞에서 충분히 애도하는 기간을 가져야, 그것이 문득 고개를 드는 트라우마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계속해서 슬픔에만 매몰되어 자기 인생을 나락으로 내몰아서는 안 된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지내며 즐거웠던 순간들, 어린 시절 사랑스러운 재잘거림과 지적인 성장기는 돌아보지 않고 사건의 마지막 모습만 움켜쥐고” 있는 것을 지속해서는 안 된다. “슬픔이 사라질 날을 기다리기보다 사라질 날을 직접 만들어야” 한다.

세네카는 인간이 통곡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불행이 일어나기 전에는 아무것도 예측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자신은 결코 불행을 당하지 않을 것이며 남들보다 평온한 길로 나아갈 뿐이지 자신과 남들 모두에게 사고가 일어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당하는 것이 그렇게 뜻밖의 일일수록 우리가 더욱더 몰락하는 것은 필연적이기” 때문에, 세네카는 이렇게 조언한다. “발생할 거라고 두려워하는 일이 반드시 발생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야 암울한 상황이 실제로 왔을 때 어떻게 대처할지 분석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나면, 그만큼 공포심을 줄일 수 있다는 뜻이다. 놀라운 인사이트다. 20세기에 프로이트가 주장했던 트라우마 치료 방법을 이미 고대 로마에서 세네카가 주장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억할 것은 끝이 정해져 있다는 점이다. 세네카는 “삶이여, 내가 너를 이기는 것은 죽음의 호의 덕분이다.”라고 강조한다. 세네카는 “저마다의 끝은 정해져 있다.”라고 말한다. 더 오래 살았을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의 짐을 이제 내려놓아야 한다. “노인이나 이미 내리막에 있는 사람”만 죽음에 가까워진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젊든 늙든 간에 우리 모두는 “이미 죽음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 “그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으며, 오래가는 것들이 있을 뿐”이다. “각자 생을 마감하는 시기는 다르지만, 우리는 모두 같은 곳을 향해 나아간다.”

끝으로 세네카는 우리 모두에게 인간을 존재론적으로 사유하는 철학자가 되길 권한다. 우리 곁을 떠난 사람은, “영혼을 묶은 사슬이며 그림자일” 뿐인 육체의 집으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그렇게 “혼란스럽고 잡다한 것들을 떠나 순수하고 빛나는 것에 도달하는” 그때가 바로 ‘영원한 안식’이다. 아직도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이제 그만 무너진 마음을 추스르고 회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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