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글로벌 시대와 공동체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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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글로벌 시대와 공동체주의
  • 최영종 가톨릭대학교·정치학
  • 승인 2022.07.02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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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책, 나의 테제_ 『혼돈의 글로벌 시대, 공동체주의를 말하다』 (최영종 지음, 가톨릭대학교출판부, 427쪽, 2022.05)

 

오늘날 물질중심주의가 가져오는 폐해는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유물론을 신봉했던 공산주의는 역설적으로 물질 생산 능력의 한계로 인해 붕괴하고 말았다. 물질주의에 경도된 세계화는 양극화의 심화와 환경 파괴를 가져왔다. 미·중 패권 경쟁은 자신들의 물질적 생산능력의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 세계를 진영으로 나눠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 상황 속에서 강화되고 있는 자국우선주의는 물질중심주의의 또 다른 폐해이다. 자국의 물질적 이익을 위해 글로벌 이익은 물론이고 인류 공동체의 존립 기반 자체를 무너뜨리고 있다. 이런 제반 문제들에 직면해서 현존하는 글로벌 거버넌스 체제는 무력함을 노정하고 있다. 이 책은 강제력, 경제적 이익 공유, 규칙과 규범 등에 근거한 기존의 문제 해결 방식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방안으로서 ‘공동체주의’를 제안한다.

공동체주의의 핵심은 공동체 의식이다. 의식은 인간에게 생명을 불어넣고, 국가나 민족도 나름대로의 의식이나 정신을 가진다. 의식이 자아, 사회, 국가라는 경계 안에 갇혀 있으면, 서로 배타적이고 적대적이 된다. 그러나 경계를 초월하면 우리라는 연대감이나 연대의식이 생겨난다. 이런 공동체 의식을 확대 강화시켜 나가는 것이 바로 국가 간 협력이나 평화의 열쇠이다. 현재 인류는 교통통신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인해 고도의 상호 연계성(connectivity)을 확보한 상태이다. 전기가 흐르는 격자망(electric grid)과 유사하게 인간의 의식이 흐르는 조밀한 네트워크가 글로벌 차원에서 형성되어 있는 셈이다. 남은 과제는 여기에 좋은 생각과 감정이 흐르게 만드는 일이다. 사랑, 배려, 관용과 같은 높은 수준의 의식을 공유함으로써 인류는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 갈 것이다.

 

이 책은 공동체를 운명공동체, 이익공동체, 문화공동체, 의식공동체로 범주화하고, 구성원들의 의식 수준이 고조됨에 따라 순차적으로 진화·발전해 나간다는 이론을 제시한다. 유럽연합이나 아세안과 같은 지역공동체의 경험은 이런 분석이 유용함을 보여준다. 국가공동체도 의식 수준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띤다. 글로벌 주도권을 놓고 겨루는 미국, 중국, 유럽연합은 각기 ‘미국꿈’, ‘유럽꿈’, ‘중국몽’이라고 부르는 공동체의 비전을 갖고 있다. 꿈이 충돌하는 세계가 어떻게 하나의 글로벌 공동체로 발전해 나갈 것인가에 대해서 이 책은 진지하게 고민한다. 또한 일본, 중국, 한국이 협력을 통해 세계문명의 중심으로 떠오를 수 있는 잠재력에 주목하면서 서로 적대감을 내려놓고 하나의 의식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다. 마지막으로는 한국이 지향해야 할 공동체의 모습과 미래 비전을 담은 “대한민국의 꿈”을 제시한다. 

공동체주의는 집단주의와 다르다. 집단주의에는 개인이 설 자리가 없다. 공산주의나 국가주의는 전통적인 집단주의가 개인주의란 자기부정 과정을 겪지 않고 지속된다. 공동체주의는 개인주의가 고도로 발전된 단계에서 생겨난다. 개인들이 자아실현을 위해 살면서도 공동의 위기를 극복하거나 공공재 공급을 위해서 필요한 경우 자발적으로 협력한다. 네 단계의 공동체 중에서 가장 집단주의적인 것이 운명공동체이다. 이익공동체는 자유로운 개인들이 이익 추구를 위해 자발적으로 모인 것이다. 문화공동체는 주권을 갖는 개인들이 자아를 초월해서 공동으로 문화를 창조하는 공간이다. 의식공동체는 자유로운 개인들이 인류 모두가 하나라는 생각을 공유하는 단계이다.

세계는 주권국가로 이루어진 국제사회가 형성된 이래 의식공동체로서의 성격이 점차 강화되어 왔다. 미국과 유럽연합이 추진하고 있는 민주주의 공동체는 글로벌 의식공동체의 형성으로 이어질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인간의 의식 수준은 대화와 소통, 학습, 실천을 통해 새로운 의식의 형성과 확산을 가져올 수 있음을 국제정치 역사가 잘 보여준다. 초국가적 시민사회의 발전은 글로벌 차원의 의식공동체 형성은 물론이고 항구적인 세계평화의 정착 가능성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갖게 한다. 

최근에 주목을 받고 있는 ‘글로벌 거버넌스’는 국제기구와 같은 경성 조직보다는 유연한 국가 간 연대가 중심이 되어 가고 있다. 구성원들에게 공식적인 의무를 부과하는 공식 기구는 퇴조를 보이지만, G7 같이 마음 맞는 나라들끼리 뭉치는 비공식 대화체는 활성화되고 있다. 이런 공동체 내에서는 이익만 아니라 가치와 의식의 공유도 중요하다. 의식은 물리적 경계가 없기 때문에 의식의 동심원이 무한정으로 확대될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글로벌 의식공동체의 형성도 가능할 것이며, 그래야 환경, 개발, 세계평화 등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글로벌 현안들이 원만하게 해결될 수 있다.

글로벌 의식공동체는 코스모폴리타니즘과 친화성이 크다. 그렇지만 개별 국가공동체의 주권과 다원성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세계정부를 지향하는 세계시민주의와는 차이가 있다. 글로벌 의식공동체는 일종의 진화된 형태의 코스모폴리타니즘으로 볼 수 있다. 과거 ‘코스모폴리타니즘 1.0’은 제국의 꿈이었다. 알렉산더대왕, 신성로마제국, 몽골제국 등이 강압적인 방법으로 추진하였다. ‘코스모폴리타니즘 2.0’은 미국의 청교도주의, 자유주의, 민주주의로 상징되는 미국의 꿈으로 대변되었다. 그러나 미국화나 서구화를 위해서 필요한 경우 강제력의 행사가 용인되었다. 글로벌 의식 공동체는 자발적인 의식 통합을 강조하는 ‘코스모폴리타니즘 3.0’이다. 다양한 국가 공동체들이 다양성 속의 단결력 강화를 넘어서 글로벌 차원에서 보편적인 의식을 공유해 나가는 것이다. 

세계는 점차 미국과 유럽연합이 민주주의 진영을 형성해서 권위주의적 중국 및 러시아에 대해 압박을 가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를 계기로 민주주의 국가들이 대동단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 의식공동체가 현재보다 분명하게 가시권에 들어온 적이 없다. 그러나 미국이 주도하는 민주주의 정상회의는 미국의 자국우선주의와 중국에 대한 지나친 견제 의도 그리고 관여를 통해 중국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의 부족으로 인해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어려운 형편이다. 민주주의 공동체가 글로벌 의식공동체의 형성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보편적 가치와 규칙에 근거한 국제질서의 형성을 지향하는 유럽연합의 보다 적극적인 역할이 요구된다. 

이 책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세계의 다양한 꿈들이 하나의 ‘의식공동체’로 합쳐지는 것이다. 집단주의는 개인이 중심에 서지 못하기 때문에 생래적인 배타성을 극복하기 어렵다. 유럽연합과 미국이 의식공동체의 중심이 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자유주의 혁명을 거쳤기 때문이다. 극도의 개인주의가 초래하는 문제를 공동체주의로 극복할 인센티브가 강하다. 그러나 개인의 위상이 확립되어 있지 못하면 극복해야 할 개인이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 책에 따르면 한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개인 중심적이고 개인주의의 폐해 또한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그렇지만 공동체 의식의 함양이 필요하지 개인에 대한 억압이나 개성의 말살이 필요하지는 않다. 매력적인 공동체에는 사람, 자본, 기술이 저절로 모여들기 마련이다. 한국이 보편성, 개방성, 자발성에 근거한 멋진 공동체를 만들어 갈 경우, 저절로 글로벌 의식공동체의 중심이 될 것이다. 


최영종 가톨릭대학교·정치학

가톨릭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고려대학교 법대를 졸업했으며,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University of California, Davis)에서 정치학 석사, 워싱턴 대학교(University of Washington, Seattle)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한국국제정치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혼돈의 글로벌 시대, 공동체주의를 말하다』, 『동아시아 지역통합과 한국의 선택』, 『글로벌 한국의 신외교전략』, 『동아시아의 전략적 지역주의: 중-일 경쟁과 중견국가의 역할』, 『현대 국제관계이론과 한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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