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쥐고 흔드는 재벌,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무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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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쥐고 흔드는 재벌,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무사할 수 있을까?
  • 박상인 서울대학교·경제학
  • 승인 2022.06.26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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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에게 듣는다_ 『재벌 공화국』 (박상인 지음, 세창출판사, 264쪽, 2022.05)

 

대한민국이 ‘재벌공화국’이라는 자조어린 표현은 대한민국의 실질적인 주인 노릇을 국민이 아닌 재벌 또는 재벌총수 일가가 하고 있음을 꼬집는 것이다. 특정 재벌을 위한 법률이나 규정이 만들어져 왔고, 재벌총수 일가는 일반 국민과 다른 사법적 특혜를 누리고 있다. 재벌 옹호론자들의 주장처럼, 이런 재벌공화국이 국민 다수에게도 좋은 것일까?  

재벌총수 일가에게 유독 관대한 판결로 사법 정의를 스스로 무너뜨린 사법부의 흑역사는 삼성 재벌총수에 대한 사법 특혜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 삼성의 창업주였던 고 이병철 회장은 1966년에 발생한 ‘사카린 밀수 사건’과 관련해 기소도 되지 않았고, 제2대 고 이건희 회장은 1995년 노태우 비자금 사건과 2009년 삼성그룹 비자금 수사 및 불법 세습에 관한 특별검사 수사 결과로 불구속 기소는 되었으나 집행유예만 선고 받았을 뿐이다. 국정농단 사건에서 뇌물을 수수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15년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나, 회삿돈을 횡령해 뇌물을 준 이재용 부회장은 고작 2년 6개월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나아가 문재인 정부는 가석방 형기 심사 기준을 60%로 낮춤으로써 이 부회장을 2021년 8월 광복절에 가석방했다. 삼성 일가 외에도 다른 재벌 총수들도 일반 국민과 다른 사법적 특혜를 누리고 있다. 모든 국민이 법 앞에서 더 이상 평등하지 않고, ‘유전무죄’ 또는 ‘재벌무죄’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입법부와 행정부 역시 재벌들에 의해 포획되어 재벌이나 총수일가를 위한 법이나 규정이 만들어지고 또 이들에게 편파적으로 법규를 적용하고 있다. 이럼에도 언론은 권력에 대한 감시보다 경제권력이 된 재벌과 총수일가에 편승하고 있다. 학계는 침묵하거나 방조하고 혹은 보다 적극적으로 보조하는 역할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재벌이 한국 경제발전에 이바지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정부주도-재벌중심의 발전전략은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상당히 성공적이었고,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는 경제발전과 함께 소득불평등도 개선되었다. 고도 성장기에 이른바 ‘낙수효과’가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재벌중심의 경제발전으로 인해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나아가 경제력 집중은 모방형 경제에서 혁신형 경제로 이행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고, 전속 하도급 거래, 기술 탈취, 단가 후려치기라는 문제의 근본 원인이 되었다. 

기술탈취는 부품 및 소재를 생산하는 중간재 사업자들이 기술혁신에 매진할 유인을 박탈하고, 기술탈취를 통해 고만고만하고 대체가능한 기업으로 전락한 중간재 하청업자들은 또다시 단가 후려치기의 먹잇감이 되고 만다. 따라서 중간재를 생산하는 중소·중견 기업들은 기술혁신을 할 유인도, 여력도 없게 되며 품질이나 기술경쟁력이 아닌 가격경쟁으로만 내몰린다. 단가 후려치기는 최종재를 생산하고 있는 재벌 대기업의 가격 경쟁력의 원천이 되었고, 가격경쟁력과 공정혁신에 기대어 온 한국 경제가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격차,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가 계속해서 유지 및 확대되고 있다.

이런 구조와 현상을 지켜보는 청년들은 공무원이 되거나 공공부문에 취업을 하려고 한다. 이른바 ‘공시족’이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 공공부문 취업을 포기하면 대기업에 취업하려고 하지만, 중소기업을 가기는 정말 싫어하게 된다. 대기업과의 임금 격차뿐 아니라, 임금 격차와 같이 오는 연금이나 복지 혜택의 격차 그리고 이에 따른 사회적 부정적 인식 때문이다. 이런 구조에서 청년실업 문제가 발생하고, 첫 취업 시점은 늦어지고, 결혼도 늦어지게 된다. 당연히 출산율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높은 주거 및 교육 비용과 조기 퇴직 가능성 등을 고려하면 출산을 망설일 수밖에 없고, 맞벌이를 하지 않고서는 생활수준을 유지하고 자녀 양육이 어렵게 된다. 여전히 육아 부담의 대부분을 짊어지고 직장 생활도 지속해야 하는 부담감은 여성들이 결혼을 기피하도록 내몰고 있다. 따라서 불평등의 문제뿐만 아니라, 청년문제, 출산율 문제, 자영업 문제, 노인빈곤 문제도 재벌의 경제력 집중으로 만들어진 경제구조를 바꾸지 않고서는 바뀔 수 없는 것이다.

한국의 재벌총수 일가는 ‘민주적 통제를 받지 않은 경제권력’이 되어버렸고, 이는 재벌에 의한 경제력 집중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특정인이나 특정 집단이 국가의 경제 자원을 상당 부분 통제하게 될 때, 이런 경제적 통제력을 이용해 정치·행정·사법·언론·학계의 주요 인사들을 포획할 수 있게 되고, 이들을 통해서 자신들의 사익을 국가 정책 결정에 반영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재벌공화국은 재벌의 경제력 집중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따라서 민주공화국의 회복은 경제력 집중의 해소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20세기 초 미국에서 거대 기업과 거대 기업집단의 등장으로 경제력 집중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근본적 위협이라는 우려가 생겼고, 따라서 진보적 운동(Progressive Movement)의 일환으로 경제력 집중을 해소하기 노력이 전개되었다. 미국 대법원에 의해 1911년에 스탠더드오일(Standard Oil)은 90개의 독립기업으로 분할됐고, 이후에 대기업 집단이 다시 형성되었지만 뉴딜 정책을 통해 미국의 대규모 기업집단은 사실상 해체되었다. 그런데 21세기에 들어와 금융산업의 거대화와 플랫폼산업의 등장으로 또 다시 시장경제의 오작동에 대한 경고가 미국의 진보와 보수 진영 모두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보수 경제학의 본산인 시카고 대학의 스티글러 센터(Stigler Center)도 경제력 집중의 문제를 다시 본격적으로 제기하면서, 경제 및 정치 권력이 소수의 수중에 집중되는 문제를 막기 위해 “경제력의 집중을 규제(fighting “bigness”)”하는 것에 반독점 규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미국 대법원 판사였던 브랜다이스(Louis Brandeis)의 주장을 재조명하고 있다

1985년 경제안정화 프로그램 (1985 Economic Stabilization Program) 이후 20여 년간 추진된 민영화의 결과로, 이스라엘에서는 특정 가문이 지배하는 거대한 금산복합 재벌이 등장했고, 이에 따라 경제 전반에 경제력 집중 문제가 부각되었다. 이스라엘 정부는 ‘경쟁력강화위원회’(The Committee on Increasing Competitiveness in the Economy)를 구성했고, 이스라엘 의회(Knesett)는 2013년 12월에 “반경제력집중법”(“Law for the Promotion of Competition and Reduction of Economic Concentration, 5774-2013”, 줄여서 통상 “Concentration Law” 또는 “Anti-Concentration Law”라고 부름)을 반대표 없이 사실상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반경제력집중법은 금산분리 규제, 지배구조 규제, 국공유자산 권리 할당 조건 등 3개 분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의 실행을 통해 이스라엘은 경제력 집중 문제를 해소했다.

경제력 집중은 시장경제의 제도적 기반을 허물뿐 아니라 정치 민주주의도 형해화 한다. <재벌공화국>은 민주공화국의 회복을 위해서 재벌의 경제력 집중 해소가 필요함과 이를 위한 개혁 과제로 2층 출자단계 규제, 소수주주동의제, 징벌배상 및 디스커버리 도입 등을 제시한다. 또한 재벌의 경제력 집중 해소와 더불어 법조계·언론계·행정부의 독립성을 강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논의한다.


박상인 서울대학교·경제학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예일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뉴욕주립대학교 스토니브룩 대학 경제학과 조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와 <시장과 정부 연구센터> 소장으로 재임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이스라엘의 2013 반경제력집중법』(2021), 『왜 지금 재벌개혁인가』(2017), 공저로는 『서울대 경제학자 8인이 말하는 한국경제』(2017), 『방송통신 정책과 쟁점』(2011), 『Strategies and Policies in Digital Convergence』(2004), 그 외 다수의 공·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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