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한국인의 창의력: 무굴제국 악바르 대제와 악ᄇᆞ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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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한국인의 창의력: 무굴제국 악바르 대제와 악ᄇᆞ리
  •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 승인 2022.06.26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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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

■ 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79)_ 놀라운(?) 한국인의 창의력: 무굴제국 악바르 대제와 악ᄇᆞ리

 

“尺蠖屈以求信(척확굴이구신)” … 자벌레가 몸을 구부리는 것은 장차 뻗기 위함이다.
(사람도 후일 성공하기 위해서는 온갖 艱難辛苦를 참고 견뎌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

 

                       무굴제국의 악바르 대제 초상화(World History Archive/Alamy Stock Photo)   

방송의 힘은 크다. 오늘 막을 내린 모 케이블 TV의 드라마는 배경도 등장인물들과 그들의 삶도 한껏 제주에 초점을 맞추었다.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고참 해녀를 부르는 호칭인 ‘삼춘’이 사람들의 입에 자연스레 오르내리고 있다. 친족 용어 삼촌의 모음을 살짝 바꾸어 사용한 ‘삼춘’이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에게 친근감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진다. 

제주 방언 가운데 가장 정겨운 호칭이라는 ‘삼춘’은 친족 계보를 허물고 촌수의 개념 따위도 무시하고 쓰이는 말이다. 따라서 선배 해녀에게 국한되지 않고 평소 잘 아는 남자 여자 구별 없이 어른은 다 삼춘으로 통한다. 심지어 ‘아무개 삼춘’하고 이름을 붙여 사용해도 무방하다. 계보 상 삼촌은 아버지와 같은 항렬(行列)에 속한다. 본래는 남성에 적용되는 호칭인 것이다. 그런데 제주에서는 여성 간에 더 인기 있는 일상어가 되었다.

한편 태백준령 동편 대관령 넘어 영동지방, 특히 강릉지역에서는 제주에서의 ‘삼춘’과 비슷한 개념의 말로 ‘아재’를 사용한다. 주로 여자들끼리 이 호칭을 사용하는데, 손아래 여성이 연배가 위인 여성이나, 고모, 이모를 아재라 부른다. 내가 자란 충청도에서는 나이가 많지 않은 결혼 안 한 오촌 아저씨를 ‘아무개 아재’라 불렀다.

근래 쓰이는 ‘아재 개그’라는 용어에서의 아재는 고리타분한 아저씨를 달리 부르는 멸칭(蔑稱) 표현이다. 인터넷 용어로서의 아재는 속칭 ‘개드립’을 즐기는 사람을 비하하는 말이다. 정크 푸드(junk food: 인스턴트 식품) 전문업체인 L업체는 2016년 7월 1일 햄버거를 새로 출시하며 이름을 ‘아재 버거’라 했다. 영문명은 ‘AZ Burger’로, ‘좋은 재료의 A to Z(모든 것)’, ‘맛의 A to Z’라는 의미를 담아 AZ 버거인데, 이것을 한국어로 ‘아재 버거’라고 읽는 천부적인 네이밍 센스를 발휘했다.   

내가 궁금한 것은 외딴 도서 제주도 언어의 근간은 무엇이며, 비록 반도로부터 멀리 떨어져 다른 사람들, 그들의 언어, 문화와 접촉할 기회나 가능성이 희박했을 수 있으나, 삼촌이라는 한문 친족용어가 아닌 고유어가 주민들에 의해 사용되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점이다. 강릉에 아재가 있듯 제주에도 뭔가 제주 언어의 독자성을 보여줄 ‘something like 아재’가 있어야 한다. 

어느 언어고 주변이나 외세의 영향을 받지 않고 독자성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어떤 형태든 타 언어와 접촉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동일 언어 속에 동의어가 다수 존재하는 것이 언어 접촉의 결과이다. 세상의 모든 언어는 그 안에 타 언어의 이런 요소, 저런 요소가 섞여 있는 혼용어라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영어 어휘 deadly와 lethal은 의미는 같으나 적용 영역이 다른 동의어다. 후자는 라틴어의 차용어로 로마지배의 흔적을 보여주는 어휘다. 그리고 법률용어로 쓰인다. 따라서 일상용어로 deadly weapon이라고 하는 ‘흉기’를 법정에서는 lethal weapon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인간 사회의 언어생활은 때론 쓸데없이 복잡하다.

아주 오래 전 캐나다에 갔다가 렌트 카의 열쇠를 키호울에 넣고 돌리다가 부러진 적이 있었다. 전화번호부에서 locksmith를 찾아 전화를 걸었고, 즉시 달려온 열쇠공 덕분에 새 열쇠로 운전을 계속할 수 있었다. 영어 단어에 –smith라는 접미사가 붙으면 그 단어는 쇠붙이를 두들겨 물건을 만들어내는 장인(craftsman)을 뜻하는 말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차 키 등 열쇠를 깎아주는 사람은 locksmith(자물쇠 제조공)다. Blacksmith(대장장이, 편자공), goldsmith(금세공인), silversmith(은세공사. brightsmith라고도 함),  coppersmith(brownsmith라고도 하는 구리세공인, 방짜 장인), gunsmith(총기 제작자), arrowsmith(화살촉 제조인), bladesmith(도검장), swordsmith(검제작자), pewtersmith(백랍세공장이) 등 주물(鑄物)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솥, 포트, 후라이팬, 냄비 따위를 수선해주는 사람은 tinker 또는 metalsmith라고 한다. 과거에 그런 사람들은 대개 가난한 순회[떠돌이] 수선공이었다. 방물장수나 봇짐장수와 같은 행상들도 이 마을 저 마을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팔았다. 숫돌에 칼을 갈아주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동서를 막론하고 천민으로 취급받았다. 그러나 세월이 달라져 행상은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물건을 만들어 팔던 사람을 현재는 장인 또는 명인이라 부르며 우대한다. 

우리말에는 사람을 나타내는 접미사가 많다. 부엌데기, 새침데기, 사팔뜨기, 촌뜨기, 시골뜨기, 바리데기 등에 보이는 ‘-데기(-뜨기)’가 그 하나요, 악바리, 발바리, 힘바리, 혹부리 등에 쓰이는 ‘-바리’가 또 하나다. 사람은 아니나 생물체에까지 범위를 넓히면 특수 집단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변말(jargon)이랄 수 있는 심마니 은어에 ‘범’을 가리키는 ‘두루바리’가 있고, 바다 고기 이름에 뻘농어를 지칭하는 ‘다금바리’가 있다. 

임진왜란 때 진주의 논개(論介), 후삼국시대 견훤의 아버지 아자개(阿慈介 또는 阿慈蓋)라는 이름에 나타나는 ‘-개’ 또한 사람의 표지다. 돌쇠, 강쇠에서 보는 ‘-쇠’ 역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먹보, 떡보, 국보, 흥보, 놀보, 울보, 뚱보, 째보, 곰보 등에 나오는 ‘-보’도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이며, 국어학자들은 볻>볼>보의 음운변화를 겪었다고 한다. 물론 내 견해는 이와 다르다. 

장인(匠人)을 뜻하는 공장바치(공장와치), 귀염바치(귀염둥이의 북한 말), 가죽신을 만드는 사람을 지칭하는 갖바치의 ‘-바치’ 그리고 성냥바지의 ‘-바지’ 또한 사람을 의미하는 접사다. 바지의 어근은 ‘받’이다. 말이란 쓰이면서 흔히 사소한 어음 차이를 보인다. 그러다 보면 어느 것이 원형이었는지 분간하기 어렵다. 그래서 말을 연구하는 언어학자들은 작은 차이를 보이는 다양한 변이형 가운데 어느 것을 기저형으로 삼아야 할지 고민스런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장사치, 상인을 가리키는 고어의 변이형은 ‘흥정-바지, -바치, -밧치, -아치, -와치’ 등으로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거간꾼 장쾌(駔儈)를 가리키는 흥정즈름이라는 말도 있다. 장사치는 장사아치가 변한 말이다. 장사아치는 ‘장사’라는 명사에 사람을 뜻하는 돌궐어 접미사 -gachi가 덧붙여진 합성어다.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를 연 북방 유목민족 선비족을 서양인들은 타부가치라 불렀다. 타부는 사슴이고 타부가치라 불린 탁발선비족은 순록유목민이었다. 탁발선비 몽골어 다루가치 우리나라 삼국시대 신라의 관직명에 보이는 각간(角干)은 황제를 뜻하는 돌궐어 카간(Khagan)은 음역어다. 카간은 후일 칸(Khan)으로 축소되었다.

‘식자우환’이라고 한다. 늘 말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어느 순간 우리말 ‘악바리’와 아랍어 ‘악바르’의 소리가 닮은꼴이고 의미 면에서도 두 말이 유사하다고 느껴졌다. ‘악바리’는 ① 성미가 깔깔하고 고집이 세며 모진 사람, ② 지나치게 똑똑하고 영악한 사람을 가리킨다. “악바리 악돌이 악쓴다”는 속담을 보면 악바리는 무슨 일에나 악착같이 제 고집을 세우고 물러날 줄 모르는 고집불통을 가리키는 말이다.

인도대륙에 유목민이 세운 이슬람 제국의 이름은 무굴이다. 창건자는 티무르의 손자로 오늘날의 우즈베키스탄 동북부와 키르기즈스탄 서부 지역에 해당하는 페르가나 분지를 무대로 활약하던 돌궐계 유목집단의 젊은 리더 바부르(Babur, ‘호랑이’)였고, 그의 손자가 악바르(Akbar, 1541~1605; 제위 1556~1605)다. 악바르의 아들 자항기르의 아들 샤자한은 사랑하던 부인 뭄타즈가 14번 째 아이를 낳다가 죽자 아그라에 그녀의 영묘를 지었고, 그것이 건축사에 빛나는 세계 불가사의의 하나인 타지마할이다.

힌두와 무슬림의 통합을 꾀했던 이슬람 황제 악바르는 이름 그대로 위대한 군주였다. 그리고 그의 이름 악바르에서 악바리의 기원을 엿보는 한국인 학자는 학문에 대한 열의만큼은 막강하다.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한국외대에서 영어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명지대에서 중앙아시아사 전공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가톨릭관동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로 그동안 『중앙일보』에 ‘차의 고향’, 『동아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 등에 칼럼 ‘문명의 뒤안, 오지 사람들’, 『교수신문』에 ‘욕망의 음식: 음식문화사’를 연재했다. 저서로는 『문명의 뒤안 오지의 사람들』, 『차의 고향을 찾아서』, 『궁즉통 영어회화』, 『중앙아시아 인문학 기행: 몽골 초원에서 흑해까지』, 『문화를 여행하다: Travel, Culture&People』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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