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정치적’ 아마추어리즘 4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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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의 ‘정치적’ 아마추어리즘 40일
  • 서유경 논설위원/경희사이버대·정치철학
  • 승인 2022.06.19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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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경 칼럼]

우리는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부활 이후 평화적 정권 교체 방식으로 벌써 여덟 번째 민선 대통령을 맞았다. 그리고 오늘 6월 20일은 제20대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꼭 40일째 되는 날이다. 짧은 기간이지만 많은 일이 있었다. 그러나 무엇 하나 흡족하게 진행된 것이 없어 뒤에서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는 시민들에게 답답함을 느끼게 한다. 

우선 5월 10일 대통령 취임식은 볼품도 없고 딱히 먹을 것도 없는 매우 초라한 잔치였다. 취임식사는 내용이 빈곤했고, 취임식 행사 진행방식도 매우 엉성했다. 청와대 개방 행사에서 마치 베르사유 궁전으로 돌진하는 프랑스혁명의 인민들을 연상시키기라도 하려는 듯 뜬금없이 철 지난 매화꽃을 흔들며 뛰어드는 탐방객이라는 발상도 억지스럽고 무개념했다. 게다가 청와대 개방 기념 열린음악회에 청와대 입성을 거부한 대통령 부부가 객석에 ‘깜짝’ 등장한 것도 한 편의 ‘블랙’ 코미디였다. 

그런가 하면 윤 대통령의 무원칙하고 비성찰적인 인기영합주의 행보도 여러 가지로 어색하고 불편하다. 그러한 사례 하나는 바로 지난 6월 2일 한·브라질 친선 경기의 ‘식전 행사’ 형식으로 손흥민 선수에게 청룡장을 직접 수여한 일이다. 스포츠 메달 수여는 문화체육부 장관의 고유업무인데 대통령이 꼭 그렇게 가로채야만 했을까. 사실 거기 모일 6만여 명 관중 앞에서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 손흥민과 함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자 한 것 말고 다른 해석의 여지는 별로 없다. 그날 손 선수의 골이 침묵한 것이 그 메달 수여식으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이 아니라고 누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이와 유사한 성격의 사례는 여성 장관 인선 방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일차 조각 목록에는 여성 장관이 고작 2명에 불과했다. 취임 기자회견에서 외신 기자 한 명으로부터 왜 여성 장관이 그렇게 적은지에 대해 질문을 받은 윤 대통령은 장관 자격을 갖춘 여성이 적어서라는 비상식적인 이유를 댔다. 이에 대한 후폭풍이 일자 추가 인선 과정에서 무려 4명의 여성을 한꺼번에 무더기로 임명하는 180도 다른 행보로 급선회했다. 이를 두고 대통령의 ‘유연한’ 태도라고 칭찬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무원칙한’ 태도라고 비판을 해야 하는 건지 몹시 헷갈린다. 분명한 것은 윤 대통령이 이런 갈지자 행보를 계속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태의 근본 원인은 아마도 정식으로 정치를 배운 적 없다는 사실과 무관치 않은 듯하다. 모름지기 정치의 제1 원칙은 공사(公私) 구분이며, 그것의 실행 준칙은 공평무사이다. 윤 대통령의 지난 40일 동안의 행보에서는 이 두 가지 정치의 기본 원칙을 찾아볼 수가 없다. 초등학교 동창을 장관에 임명했다가 낭패를 보고, 주요 부처 장관이나 중요한 기관의 장은 자신과 인연이 깊거나 닿는 사람들로 채우면서 능력주의 원칙에 따른 인사라고 강변했다. 대한민국 인구 약 5천 2백만의 절반 이상이 여성임에도 능력 있는 여성이 없다는 무개념한 여성 비하적 변명을 내놓았다. 우리는 이러한 모든 것을 윤 대통령의 ‘정치적 아마추어리즘’, 즉 정치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어눌함으로 관대하게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 아마추어리즘’이 도를 넘는다면, 실질적으로 시민들에게 피해를 준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예컨대 5월 10일 이후 주말마다 연출한 ‘대통령 부부 나들이’는 그의 정치적 아마추어리즘의 전형이다. 백화점 신발 쇼핑, 주말 대통령 집무실 방문, 팝콘-브로커 영화관 나들이 등등의 주인공은 결코 대통령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비공식’을 가장한 ‘공식’ 행보들은 숱한 업보들로 인해 공식 행보에 나설 수 없어 안달이 난 배우자 김건희 씨의 공개 행보를 위한 ‘예열’ 과정이었음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김 여사가 봉하마을 방문을 비롯하여 이순자 여사와 김정숙 여사 방문 등 공개적인 ‘광폭’ 행보로 전격 전환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취임 후 매 주말 심혈을 기울인 ‘김건희 구하기’ 작전이 성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대통령직을 사사화했다고 지적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윤 대통령이 출근길에 펼쳐 보이는 ‘도어 스텝핑’, 즉 출근 시의 약식 기자 문답이 정치권의 방향타로 자리 잡은 모양새다. 이 또한 그의 정치적 아마추어리즘의 또 다른 단면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만 선명하게 제시하고 나머지는 퉁 치고 넘어가기 때문이다. 그는 기자가 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던지면 ‘대통령을 처음 하는 것이라서’라든가 ‘방법 좀 알려주시죠’라며 엉뚱한 임기응변식 답변으로 질문 자체를 희화화한다. 처음에 누군가는 ‘신선하다’라고 했고, 다른 누군가는 ‘어설프다’라고 했다. 그러나 불과 40일 사이 이미 신선함은 사라지고 어설픔만 두드러지고 있어 조만간 사라질 풍경이 아닐까 싶다.

취임 후 첫 번째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장관들이 준비하는 회의 자료를 최소화하고 자유롭게 토론하자’라는 윤 대통령의 발언 이후 국무회의가 ‘깜깜이’ 토론회로 전환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무회의 모두 발언을 정성스럽게 준비하여 그때그때 국가의 현안이 무엇인지를 카메라 앞에서 읽는 방식으로 시민들과 공유했던 것과 딴판이다. 윤 대통령은 자신의 ‘국무회의 형식 간소화’가 우리 시민들의 ‘알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나 있는 것일까. 이 역시도 국무회의를 시민들의 감시와 견제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정치적 아마추어리즘의 또 다른 단면이 아닐 수 없다. 같은 맥락에서 후보 시절 윤 대통령이 공약한 “대통령과 국민이 함께 참여하는 정책 거버넌스 방식의 ‘민관합동위원회’”가 그간 어떻게 축소되고 본래의 약속과 멀어졌는지도 함께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완전히 대조를 이루는 것은, 우리 시민들이 별로 알 필요도 없는 정보가 ‘비공개 행사’임을 가장하여 사적인 루트로 대량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대통령 부부의 주말 이벤트 사진들이 모 팬카페를 통해 주말에 방출되면, ‘주류’ 언론사가 이를 받아 월요일 아침 조간신문의 일면을 장식하는 식이다. 대통령 부부의 주말 사생활 엿보기는 흡사 텔레비전 ‘리얼리티 쇼’를 방불케 하는 말초신경 자극용 오락 프로그램처럼 느껴진다. 예전에 어떤 분이 대중에게는 ‘3S’가 약이라고 했다던가. 그 철 지난 반지성주의적 독재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듯해 기분이 몹시 착잡해진다.

이렇듯 대통령 부부 ‘이미지 메이킹’이 목적인 사건들을 두고 친(親)서민적이라느니 보통 시민들과의 격의 없는 소통 행보의 일환이라고 항변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아마도 정신 나간 얼간이거나 뭔가 반대급부를 노리는 정치꾼임이 틀림없다. 이를테면 김건희 씨의 팬카페 대표인 강신업 같은 사람 말이다. 그는 지난 대선 국면에서 ‘왕초보’ 야당 후보 부인의 요청을 받고 팬카페를 급조하여 선거운동의 전위조직 역할을 하는 ‘고위험’ 베팅을 했다. 그리고 운 좋게 베팅이 성공하자 확실한 ‘비선조직’으로 입지를 굳히려는 듯 공공연히 ‘제2부속실’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다. 그러나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가 누구의 정치를 대신 하는 것인지, 또 왜 그렇게 하는지를. 

김건희 씨는 이제 확실히 정치의 장에 들어서기로 작정한 것 같다. 그러나 그가 정치의 장에 들어가기에 앞서 반드시 처리해야 할 두 가지 선결과제가 있다. 첫째, 김 여사는 자신의 선거 사조직을 해체해야 한다. 그는 대통령직에 선출된 남편의 배우자로서 정치의 장에 들어설 권리가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자기 정치를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둘째, 김 여사는 그가 현재 볼모로 잡은 숙명여대와 국민대 연구윤리위원회에 각각 학위 포기 의사를 밝힘으로써 스스로 결자해지해야 한다. 이는 정치의 장에 들어서는 공인의 기본자세이자 의무이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책임은 선택한 자에게 있다”라고. 


서유경 논설위원/경희사이버대·정치철학

경희사이버대학교 후마니타스학과 학과장 겸 문화창조대학원 미래시민리더십·거버넌스 전공 주임을 맡고 있다. 주요 연구주제는 한나 아렌트 정치미학, 시민정치철학, 한국의 민주화운동과 민주주의 패러다임, 한국의 시민사회와 시민운동 등이다. 저서로 The Political Aesthetics of Hannah Arendt(2017), 『한국 민주주의의 새 길: 직접민주주의와 숙의의 제도화』(공저, 2022), 『문화의 이동과 이동하는 권리』(공저, 2022), 역서로 『아렌트와 하이데거』, 『사랑 개념과 성 아우구스티누스』, 『과거와 미래 사이』 , 『책임과 판단』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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