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 소설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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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소설 읽기
  • 신문수 서울대 명예교수·영문학
  • 승인 2020.0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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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칼럼]

작금의 우리 정치사회적 상황은 오랜 군부독재를 청산하고 어렵사리 일구어낸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우리 사회가 과연 견지해나갈 수 있을지 회의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정치의 무대에서 민생복리를 위한 선의의 정책 경쟁은 사라진 지 오래고, 엄연한 사실마저도 외면하는 당동벌이(黨同伐異)식 이전투구가 난무하고 있다.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를 여러 번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불통의 하향적 정치과정이 오히려 심화되고 있다. 민주주의 정치제제 유지의 중요한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민생 경제는 이념의 볼모가 되어 급격히 추락하고 있다. 건전한 민주사회의 성취를 목전에 두고 주저앉아버린 남아메리카의 여러 사례가 먹구름처럼 우리의 지평선 너머에 어른거리고 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1987년을 우리의 민주화 원년으로 삼는다면 군부독재의 기간보다 그 이후의 세월이 훨씬 긴데도 왜 이렇게 극단적 이념 대립과 패거리 정치의 현실이 압도하고 있는 것인가? 서구민주주의의 정착이 2세기 이상 걸렸음을 상기시키며 우리 민주주의 역사의 일천함이 종종 거론되어 왔다. 물론 그렇다. 그렇다고 이 혼란상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위안 삼아 체념에 늪에 빠지는 것 또한 용납될 수 없다. 서구의 민주국가들이 선례가 별로 없어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했다면, 우리는 그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현재와 같은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사회 전체가 지혜와 힘을 모으고, 그것을 바탕으로 난경을 헤쳐 나가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나는 우리가 처한 어지러운 현실의 상당 부분이 독서문화의 퇴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 정치 체제의 근본을 되짚어 볼 때 민주주의 사회 건설과 건전한 독서문화의 함양이 긴밀하게 상관되어 있음을 결코 도외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인류가 자유와 평등의 쟁취를 위한 긴 역사의 도정에서 일구어낸 체제이다. 인간다운 삶을 담보하는 핵심적인 가치로 두 이념은 선양되어 왔다. 근대 이후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사회에서는 그것을 사회적 가치로 정착시키기 위해서 법을 만들고 제도를 정비해왔다. 그러나 법적 제도화만으로 민주주의가 온전히 실현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이 미국의 민주주의를 살피면서 일찍이 지적한 대로 민주주의적 가치가 구성원들의 ‘마음의 습속’(habits of the heart)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민주주의는 중우정치로, 혹은 토크빌이 우려한 ‘다수의 폭정’으로 쉬이 전락하고 만다. 역사는 수많은 사례를 보여 왔고 우리의 짧은 역사적 경험 또한 그것을 예증하고 있다.

개개인의 마음속에 내면화되어 사회적 습속으로 자리 잡아야 할 가치는 저마다의 자유와 권리의 존중은 물론 자율적 책임 의식과 관용의 정신이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 주장은 민주주의적 가치로 당연시해왔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책임 의식과 나와 다른 처지의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와 관용적 마음가짐이다. 전자만 내세우고 후자를 방기한다면 민주주의는 사상누각이 되어 와해되고 말 것이다. 근래에 주목받고 있는 시카고대의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Martha C. Nussbaum)은 오늘날의 시장 민주주의 체제가 제대로 운용되기 위해서는 인간을 집합적 존재로서가 아니라 개별적 인격체로 소중히 여기고 각자가 처한 형편을 감정이입을 통해 깊이 이해하는 공감적 상상력이 긴요함을 역설하고, 특히 법과 정치를 비롯한 공적인 삶의 담당에서 이런 공감적 이성 능력이 바탕이 될 수 있도록 문학 작품, 그중에서도 소설의 독서가 교양교육은 물론 해당 전공교육의 일부를 이루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근대 시민사회의 태동과 더불어 등장한 소설은 주체적 삶을 살고자 하는 인물들의 일상적 이야기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는 수많은 다른 시각, 다른 처지, 다른 현실 속에 우리 자신을 투기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고정관념과 편견으로부터 벗어나 삶을 이제까지와는 다른 눈으로 보게 된다. 요컨대 소설은 독자를 다양한 삶의 세계로 안내하여 스스로를 깨우치면서 동시에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자발적 경험의 기회를 제공한다. 소설 읽기는 이처럼 주체적 자아의 함양과 더불어 타인에 대한 공감의 지평을 확대함으로써 민주 시민으로서의 습속의 강화에 기여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우원해 보이지만 근본적이고 점진적이지만 효과적인 방법이다.

아쉽게도 오늘의 디지털 문명은 독서 일반, 특히 문학의 퇴조를 재촉하고 있다. 독서문화의 쇠퇴는 디지털 매체가 제공하는 수많은 잡다한 정보와 시각 이미지를 소비하느라 독서할 시간 여유를 갖지 못해서만이 아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과다 사용으로 인해 사람들이 조급해지고 충동적이고 감정이 메말라가고 있다는 점은 자주 지적되어 왔다. 다시 말해 디지털 환경에서 배태된 심성 그 자체가 문학 혹은 그것이 표상하는 가치를 멀리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파당적 진영 논리에 매몰된 오늘의 정치 현실에서 벗어나 건설적인 민주주의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단순한 지식과 정보의 축적이 아니라 이해와 공감의 능력을 함양시킬 수 있는 건전한 독서문화의 창달이 병행되어야 한다. 미국의 시인 월트 휘트먼(Walt Whitman)은 민주주의를 광신주의와 정치적 편파성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독자들’의 사회로 정의한 적이 있는데, 그의 민주주의관이 오늘날 새삼 상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신문수 서울대 명예교수·영문학

서울대 영어교육과 및 동대학원 영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대(버클리)에서 석사, 하와이대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영어영문학회장, 한국문학과환경학회장, 생태문화연구회 대표를 역임했고, 문학을 통해 생태환경문제를 해결하는 길의 모색에 힘을 쏟고 있다. 주요 저서로 『타자의 초상: 인종주의와 문학』, 『시간의 노상에서』 2권, 『풍경, 혹은 마음의 풍경』, 『묵시의 풍경들』이 있고, 역서에 『문학 속의 언어학』, 『자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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